논쟁적이라는 수식어가 이 영화 앞에 적절할진 모르겠다. 다만 <버닝>이 올해 칸국제영화제의 뜨거운 감자였던 건 분명해 보인다. <버닝>은 영화제 공식 매체인 <스크린 데일리>의 최고점을 받았고 매체의 호평이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로 경쟁부문에서 무관에 그쳤다. 수상이 작품성의 척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의 간극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대신 영화평론가 및 전문기자들이 선정하는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은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미스터리다. 그 미스터리를 가슴으로 안아주셔서 감사하다”며 소회를 밝혔다. <버닝>은 두고두고 이야기해야 할 숙제 같은 영화다. 그에 앞서 감독 본인은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는지에 대해 물었다. 짧게나마 칸 현지에서 풀어놓은 단상들을 전한다.
-안팎으로 반응이 뜨겁다. 칸 현지에서는 호평 일색의 리뷰들이 쏟아졌다.
=아직 하나도 못 봤다. 칸 반응이 좋다고 주변에서 간간이 이야기해주긴 하는데 현장의 온도를 정확히 알긴 어렵다. 기대 이상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왜 이렇게 좋아하지? 하는 궁금증이 든다. 이 영화에 대해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지 나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순수하게 영화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영화 매체의 순수한 성질로 말을 걸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이 전달된 것 같아 다행스럽다.
-해외 리뷰 중에는 유독 ‘영화적인 영화’라는 상찬이 많았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영화적인 것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버닝>은 한 여자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를 정체불명의 남자를 중심에 놓고 미스터리로 풀어가는 영화다. 미스터리를 다른 층위의 미스터리들과 연결시킨다. 그 마지막 어디 즈음엔 소설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는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소설을 예술 또는 영화로 바꿀 수도 있을 거다. 그 본질들을 묻고 싶었다. 굳이 영화의 순수함을 묻는다면 영화는 비어 있는 것이다. 마치 비닐하우스가 비어 있듯이.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관객은 그걸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 그걸 믿기도 한다. 영화(혹은 이야기)가 과연 무엇인지, 세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진짜 미스터리는 거기에 있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종수(유아인)가 결국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세상을 보며 이야기를 찾으려는 욕망에 빠지는 게 작가의 숙명이다. 그건 감독으로서의 나의 숙명이기도 하다. 재미를 중심으로 영화를 찍는 감독도 있겠지만 나의 출발은 항상 세상에 대한, 세상을 향한 고민의 결과다. 이 영화는 종수가 무슨 소설을 쓸까 하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시대의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영화는? 영화는 무얼 하고 있을까. 종수는 주인이 부재하는 방, 창문 너머 남산타워가 보이는 방, 햇볕도 들지 않는 방에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석을 구체적으로 하고 싶진 않다. 내 견해가 정답도 아니다. 그런 건 없다. 오직 관객이 이 장면들에서 각자의 감각을 일깨우길 바란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상관없다. 영화는 그저 하나의 촉매다. 낯설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고. 다양한 방식의 반응들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배우들에게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고 들었다.
=배우들에 대한 연기연출 방식은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배우들에게 분명한 해석과 표현을 바라지 않는다. 캐릭터를 정의하거나 설명하지도 않는다. 어떤 경우는 자세한 장면들을 만들어갈 수도 있지만 보통은 가능하면 열어두려고 한다. 무언가를 표현하는 걸 업으로 삼는 배우들에겐 그게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껏 찍은 영화 중 사운드가 가장 적극적이다. 마치 하나의 캐릭터처럼 기능한다.
=그동안 철저히 음악을 절제하는 쪽이었다. 음악은 서사 바깥에 있는 소리이고 나의 영화적 방식은 아니다. 이번에는 그 또한 영화라고 접근했다. 다만 감정이나 서스펜스를 강화하는 사운드는 원치 않았다. 원래 음악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음악 그 자체의 독자성을 원했다. 모그 음악감독에겐 화두만 던졌다. 예를 들면 귀가, 공허함, 노이즈와 음악 사이의 어떤 상태 등등. 캐릭터에 따라 음악의 색도 다르다. 가령 벤(스티븐 연)의 공간에는 카페 음악이나 방에 틀어둔 앨범처럼 내재음이 계속 나온다. 반면 종수의 공간에서는 음악이 화면 밖에 있다. 심리의 반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다.
-장르영화, 특히 미스터리 스릴러의 공식과는 다르다. 갑자기 노을을 바라본다든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응시하는 식으로 종종 카메라가 살아 있는 것처럼 고개를 돌린다.
=나는 영화의 즉흥성을 건져내기 위해 항상 애써왔다. 영화는 감독이 신처럼 창조해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눈앞의 현실, 혹은 세상의 모습을 우연히 포착하는 거다. 여기에 커다란 모순이 있다. 영화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즉흥성을 찾는다는 건 충돌하는 행위다. 힘들다. 그 힘겨움 속에서 불꽃을 찾아가는 게 영화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버닝>은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그 즉흥성이 한층 중요했다. 각각의 요소들이 우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그것 자체가 긴장을 만들고 영화 속에 들어와 다른 느낌을 만들어내길 원했다. 사건과 관계없는 새벽하늘, 종수의 달리는 모습, 현실 공간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그렇다. 거기서 피어나는 긴장에 관객이 반응하는 걸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이 올해 칸의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