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국제영화제 총결산②] 황금종려상 수상한 <만비키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8-05-30
글·사진 : 이화정 |
[칸국제영화제 총결산②] 황금종려상 수상한 <만비키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만비키 가족>

‘좀도둑’ 가족의 이야기가 결국 칸 심사위원들의 마음까지 훔쳤다. 심사위원장 케이트 블란쳇은 이번 결정을 두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황금종려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시선은 없었다. 다른 선택을 했을 수는 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주었다면 그 또한 합당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수상’이라는 것이 중평이었다.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고, 슬프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희한한 대안가족 이야기는 연신 내리는 비로 쌀쌀했던 칸 크루아제트 거리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가디언>은 칸에서 최초 공개된 <만비키 가족>에 대해 “풍성하고, 만족스러운 영화”라고 평했다.



<만비키 가족>의 시작은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아들 쇼타(조 가이리)의 장난스러워 보이는 슈퍼마켓 털기로 시작된다. 추운 겨울, 훔친 전리품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자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작은 소녀를 만나 집으로 데려온다. 할머니 핫슈(기키 기린)와 오사무의 아내 노부요(안도 사쿠라), 여동생 아키(마쓰오카 마유)까지 누추한 집안은 이미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인다. 늘 쓰던 향기의 샴푸를 가져오지 않았다며 소년을 다그치는 아키의 투정으로 보아 이들에게 슈퍼마켓 털기는 그저 생필품이 떨어지면 으레 행하는 ‘쇼핑’처럼 보인다. 어린 아들까지 내세워 도둑질을 할 만큼 오사무의 집은 어렵다. 할머니의 연금을 주 수입원으로, 오사무는 일용직 노동을 하고 노부요는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하지만 몸에 상처가 나고 멍이 든 소녀 주리(사사키 미유)를 가족 누구도 내몰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녀는 오사무의 가족이 된다.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가족은, 친가족에게 학대받았던 주리의 행방을 찾는 뉴스가 나오면서 급반전의 물살을 타게 된다. 그동안 쇼타는 한번도 오사무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고, 따로 가족이 있는 듯 보이는 할머니의 존재도 사뭇 수상하기만 하다. 이 가족의 비밀은 전반부의 훈훈한 가족 드라마의 느낌을 벗어나 사뭇 섬뜩한 사회파 스릴러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가족의 정체를 의심하며 <만비키 가족>이 찾아가는 건 결국 일본의 현사회에서 숙고해 보아야 할 가족의 의미다. <아무도 모른다>(2004)의 가족처럼 사회에서 소외받은 이 가족은, 혈연을 나누어야만 진짜 가족인가, 라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가 던졌던 질문에 다시 봉착한다. 이 가족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태풍이 지나가고>(2016)의 풍파와 아픔이 지난 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의 네 자매들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따뜻한 구성원일지 모른다. 더불어 마치 <세 번째 살인>(2017)의 법정 장면이 연상되는 후반부의 교도소 장면은 이 영화를 마음으로부터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결속력으로 다가온다. 또다시 가족 이야기로 직조된 이야기로 고레에다가 “너무 자신의 안전지대에서만 머무는 게 아닌가”라는 <리베라시옹>의 평가도 있었지만, 적어도 고레에다의 팬들에게 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특히 캐릭터들의 감정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이를 수행하는 배우들의 클로즈업 컷이 야기하는 울림이 고레에다의 영화 중 가장 큰 드라마이기도 하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만들어진 가족’. 하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온정 아래 꾸려진 이 가족이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이하는 6개월 동안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속 가족에게서 본 애틋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무도 모른다> 이후 고레에다 영화의 전작을 통틀어 보아온 인물과 상황이 촘촘하게 모자이크된 이야기를 통해 <만비키 가족>은 그렇게 고레에다 감독의 최고의 영화가 된다.



<만비키 가족> 상영 후 칸의 리사이딜 호텔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만나 나눈 인터뷰를 덧붙인다.




-‘좀도둑’이라는 뜻의 ‘shoplifters’, 일본어로 ‘만비키’(万引き)라는 제목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가족이 물건을 훔치는 동안 서로의 마음을 훔치고, 결국 관객의 마음을 온전히 훔쳐 이 가족에게 감정이입하도록 한다.



=좋은 감상이다. (웃음) 제목인 ‘shoplifters’는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라는 뜻과 동시에 ‘그들 자신이 여러 곳에서 도둑질을 당한 사람들’이라는 뜻도 있다. 이 가족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편, 죄를 지은 사람들이니 그들을 재판해야 할지 말지, 사랑해도 좋을지 말지를 관객이 두 가지 감정으로 갈리길 원했다. 관객이 그런 고민을 하려고 한 게 나의 의도였다.



-전작 <세 번째 살인>에서는 가족 이야기의 범주 안에서 이야기하는 감독으로 비치기 싫어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의사를 비추기도 했는데, 이번엔 다시 가족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선택이 흥미로웠다.



=그러고보니 그렇게 됐다. (웃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내 ‘관심의 안경’을 좁혀서 가족 드라마를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이가 생기면서 부모가 돼 겪은 실제 내 삶의 변화의 폭이 컸다. 어쨌든 그 모티브가 절실했기 때문에 만들었지만 전작보다는 시점을 조금 더 넓고 깊게 가져오려 했다. 이번 영화는 같은 가족 드라마지만 ‘집 안’에서만 무언가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과 사회의 접점에서 일어나는 일들, 거기서 생기는 마찰을 그리는 시선을 취했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작업하면서는 오히려 가족 드라마로 돌아갔다는 의식은 크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에 착안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



=이야기를 구성한 건 10년이 더 지났다. 가족이 무엇인지, 아버지가 되려는 것, 나아가 소년의 성장담을 엮어보려 했다. 보다 직접적 계기가 된 사건은 몇년 전 일본에서 이미 죽은 부모의 연금을, 법을 속여 계속 받은 가족이 적발되어 크게 비난받은 일이었다. 물론 잘못한 일이지만, 나는 사람들이 더 큰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눈감아주면서 이런 연금 관련 사건이나 좀도둑 문제에 사람들이 훨씬 더 공분하는 걸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가족간 유대를 반복적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위기가 왠지 불편했고, 가족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범죄를 통해 연결된 가족을 통해 이 질문을 한번 탐구해보고 싶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를 그렸던 전작들과 달리 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가족이다. 이 가족의 배경에 대해 말해달라.



=<만비키 가족>이나 <아무도 모른다>의 가족 모두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볼 법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을 가난하거나 낮은 계층의 가족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과거 일본영화에서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그린 사람들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이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범죄 행위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들은 실은 최하위층이 아니라 거기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범죄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다. 물론 위법이지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사람들, 뭔가 한 발짝만 삐끗하면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그려보고자 했다.



-대안가족을 제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 가족이 낙관적인 시점만으로는 전개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함께 살 수 없다 하더라도, 헤어진 후에도 자신들이 가족이라는 걸 깨달을지 모른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지냈던 시간은 그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그 순간 성립한 가족이라는 것은 결코 가짜가 이니었다는 것을 그들 각자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전개시켰다.



-오사무와 노부요가 가족이 없을 때 하는 섹스 장면은 이 영화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멋진 장면이다. 각박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말로도 들리더라.



=만들어진 가족이고, 가족 자체가 어쩌면 ‘페이크’(가짜) 같지만 그들간에 형성된 관계가 모두 거짓은 아니라고 봤다. 이면에 진실한 순간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그 장면도 그런 시선 안에서 그렸다.



-일본영화를 봐도 그렇고, 당신의 전작도 감정을 억제하는 표현법이 많았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전보다 배우들의 감정표현이 강하게 다가왔다. 특히 안도 사쿠라의 클로즈업은 이 영화의 결정적 한 장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하게 다가왔다.



=평소 우는 얼굴을 잘 다루지 않는데, 이번 작품에서 취조실에서의 노부요의 눈물이나 오사무가 쇼타를 쫓는 신 등에서는 감정을 좀더 깊게 보여주었다. 평소에는 ‘오프’로 할 감정을 오히려 토로하는 장면을 작품에 남겼다. 내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감정의 기복이 ‘온’으로 그려진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지금 얘기한 대로 나 역시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꼈다. 촬영하면서도, ‘아 뭔가 특별한 게 찍혔구나’ 하는 생각에 전율이 돋는 걸 경험했다. 정말 훌륭한 재능을 가진 배우다.



-아이들의 연기가 리얼해서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등에서 어린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췄고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야기라 유야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어린 연기자들에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내는 작업방식이 궁금하다.



=<아무도 모른다> 때부터 나는 어린 연기자들에게는 대본을 주지 않고 상황만 설명해준다. 내가 직접 소리를 내서 대사를 전달해주는 걸 기본으로 한다. 물론 내가 소리를 내고 그 의미가 전달되어 결과적으로 연기자들이 대사를 하게 되는 과정이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이번 영화에서 쥬리가 머리를 자른 후에 아키에게 이끌려 거울 앞에 가서 머리를 비교해보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전반만 내가 대사를 주고 후반은 아키 역의 마쓰오카에게 ‘이런 장면을 찍고 싶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랬더니 주리 역을 연기한 사사키와 연기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이끌어내더라. 결과적으로 잘 나왔고, 개인적으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2001년 <디스턴스> 이후 이번이 다섯 번째 칸 초청이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위치에 있는데. 일본영화계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감독의 위치는 어떤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나.



=국제적으로 볼 때 지아장커 감독이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인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나도 일본에서는 메이저가 아닌 인디펜던트 작가다. 감독이 각본을 쓰고 모든 것을 전개해나가는 방식으로만 해도 그렇다(이번 영화에서 고레에다는 연출, 제작, 편집 역할을 했다). 지금 일본 주류 영화시장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고 실현될 수 없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일본영화계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과 나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차기작은 프랑스에서 줄리엣 비노쉬와 같이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아직 소문 단계고 정식으로 결정이 난 건 없다. 아이디어는 몇개 있다. 함께 작업해보지 않겠냐고 관심을 보이는 배우가 프랑스와 한국에 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 앞으로도 그런 도전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언어와 문화를 넘어 과연 어떻게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을까, 한국 배우와 작업하면 승부가 될 수 있을까. 굉장히 어렵겠지만 보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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