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리 감독의 <블랙클랜스맨>의 심사위원대상 수상은 올해 칸국제영화제가 추구한 경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결과다. 종반이 지나서까지 스파이크 리의 수상을 점치는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블랙클랜스맨>은 매우 재미있고 친숙하지만 장르의 그늘 아래서 조율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형식이나 미학적인 탐구는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차라리 차별의 비이성과 폭력성에 단호히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는 프로파간다 영화에 가깝다. <블랙클랜스맨>은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이하 KKK단)에 비밀잠입 수사를 했던 콜로라도주의 흑인 경찰 론 스톨워스의 실화를 기초로 한다. 론 스톨워스는 2014년 회고록인 <블랙클랜스맨>을 출간했고 이를 발견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손에 의해 경쾌한 톤과 선명한 색감의 영화로 거듭났다.
론 스톨워스(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패기만만한 신참 형사다. 론은 얼마 뒤 블랙파워를 외치는 흑인 단체에 잠입 수사해 정보 수집을 하는 임무를 맡는다. 경찰로서 인정받고 싶던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의욕적으로 일거리를 찾다가 KKK단까지 위장 잠입해 수사를 벌이게 된다. 현지 신문사에 난 KKK단 회원모집 광고를 보고 무심결에 전화를 걸었는데 손쉽게 회원 자격을 얻은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원활한 정보 수집을 위해선 KKK단 내 계급을 올릴 필요가 있었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가 클랜원들과 직접 만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어렵사리 얻은 기회를 날릴 수 없었던 형사팀은 고심 끝에 동료 경찰 플립 짐머맨(애덤 드라이버)을 대역으로 투입한다. 그렇게 론은 전화 통화로, 플립은 직접 대면하며 KKK단의 정보를 수집해나가는 와중에 그들이 무력행동을 계획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블랙클랜스맨>은 정치색이 뚜렷한 영화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영화에 대한 내용보다 흑인에 대한 차별과 분노 범죄가 만연한 미국의 현재 상황을 더 많이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그 사람’으로 지칭하며 직격탄을 수차례 날리기도 했다. 형사의 잠입 취재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블랙클랜스맨>은 기본적으로 1970년대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장르를 뼈대로 형사 버디무비의 장르 클리세를 적극 활용한다. 흑인 형사 론과 유대인 형사 플립이 KKK단에 가입한다는 설정 자체가 거대한 농담에 가깝다. 스파이크 리는 이를 증오에 대한 담론으로 풀어낸다. “KKK단은 흑인 다음으로 유대인을 싫어한다. 그들의 증오는 근거 없고 맹목적”이기에 론과 플립의 콤비 플레이에 여지없이 속아넘어간다. 적절한 음악 배치와 리듬에 맞춘 빠른 편집은 이 영화를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블랙클랜스맨>은 마냥 가볍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맛깔스러운 장르의 껍질을 두르고 있지만, 진정 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차별의 근원을 파헤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프닝과 엔딩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인종차별주의자로 분한 알렉 볼드윈의 다큐멘터리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은 차별의 허상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엔딩에 이르면 1970년대의 사건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현재, 트럼프의 미국으로 연결시킨다. 론과 그의 연인 패트리스(로라 해리어)가 총을 겨누고 문밖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장면은 그야말로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에 도착한다. 다큐멘터리와 뉴스 화면들을 콜라주해 미국의 차별과 증오가 수면 아래 어떻게 유지되어왔는지를 한눈에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다. 스파이크 리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일련의 엔딩 시퀀스만으로도 넉넉히 주목받을 만한 영화다.
다만 온전히 영화적 완성도 덕분에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는 차라리 사회에 직접적인 메시지를 발하는 영화의 역할과 의지에 대한 지지의 의미일 것이다. “올해 칸은 영화보다 정치를 선택했다”는 <리베라시옹>의 평가는 여기에 기인하다. 프랑스 문화전문지 <레쟁록>에서는 “2004년 심사위원장 쿠엔틴 타란티노가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에 황금종려상을 안겼을 때와 같은 상황”이라며 백악관을 향한 정치적 메시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블랙클랜스맨>은 굳이 평론의 안내가 필요치 않은 영화다. 차라리 감독의 직설적인 멘트들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 <블랙클랜스맨>의 기자회견과 스파이크 리 수상소감, 매체 인터뷰를 정리해서 전한다. 이것이 올해 칸영화제가 선택한 메시지다.
-심사위원대상 수상을 축하한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1996년부터 매해 칸에 왔고 올해 드디어 답을 받았다. 브루클린 시민들을 대표해서 이 상을 받겠다. 칸에 오니 많은 이들이 내게 묻는다. “미국에, 그리고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영화 제목 하나를 빌려오고 싶다. <가장 위험한 해>(The Year of Living Dangerously, 1983)!
-버지니아 샬롯 빌 사건(2017년 8월12일 로버트 E. 리 장군 동상 철거를 반대하며 일어난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네오나치들의 폭동. 반대시위자 중 하나였던 헤더 하이어가 돌진한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편집자) 이후 이 이야기를 빨리 꺼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나.
=영화는 샬롯 빌의 비극 이전에 촬영을 마쳤다. 나는 <CNN>에서 그 학살을 목격하고 내 영화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특히 영화에서 자동차가 사람을 덮치고 죽이는 장면을 써도 좋을지 망설여졌다. 그래서 헤더 하이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고 허락을 받았다. 이름조차 이야기하고 싶은 않은 백악관의 그 남자(스파이크 리는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편집자)는 그 사건에 대해 증오가 아닌 사랑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KKK단은 물론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빠져나갈 뿐이었다.
-중간은 70년대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장르를 연상시키는 데 반해 오프닝과 엔딩은 다큐멘터리 같다. 특히 오프닝에서 등장하는 알렉 볼드윈의 연설은 임팩트가 상당하다.
=미국은 원주민들에 대한 민족학살과 노예제도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게 바로 미국이다. 우리는 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지금의 현실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다. 많은 거짓들이 진실로 포장되어 떠돌아다니고 게으른 사람들은 그것을 믿는다. 나는 인종을 초월하여 모두에게 말을 걸고자 했다. 우리는 침묵 속에 머물러선 안 된다. 깨어나야만 한다. 내게 이 영화는 자명종 같은 것이다. 비평가들이 뭐라고 하건 이 영화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블랙클랜스맨>을 연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어느 날 조던 필 감독이 전화해 론 스톨워스의 에세이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흑인 형사인 론 스톨워스가 1970년대 백인 우월집단인 KKK단에 잠복해 비밀정보를 수집했다는 것이다. 그때 몇번이나 되물었다. 그게 진짜라고? 감독으로서 내 역할은 이 역사적 이야기를 현재 우리 시대와 연결시키는 작업이었다. 과거는 단지 지나간 것이 아니며 우리는 목격자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내 경우엔 카메라가 있었다. 이 영화가 샬롯 빌 1주년이 되는 해에 개봉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한다.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가. 그들에게 어떤 희망을 전하고 싶은가.
=나는 귀머거리도 장님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행동해야 한다. 침묵해서는 안 된다. 희망이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떤 비평가들은 내가 영화를 통해 인종차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증오의 연쇄를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이 영화의 목표가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이 문제를 쟁점화하고 토론을 시작하는 거다. 이 영화는 미국인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전세계를 향한 나의 행동이다. 차별은 국경을 넘어 도처에 만연해 있다. 각자 자국에서 이민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모슬렘을 어떻게 대하는지, 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둘러보라. 세계 도처에서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울타리 너머의 일에 관심이 없다. 다시 강조하건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