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북한영화⑤] 한국영화 속 북한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는가, 휴전 직후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2018-06-27
글 : 송경원
잔인한 적에서 형제로

혼란스러운 현실 반영과 가능성들

한국전쟁 직후 자연스레 냉전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반공영화가 확산되었다. 일차적으로는 반공 의식 강화에 목적을 두고 있었지만 본래 영화라는 게 딱딱한 틀로 고정하려고 하면 비죽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1960년 이전의 반공영화들은 이데올로기의 고취보다는 전쟁의 비극과 부조리를 조명하는 데 좀더 집중한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재현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제한된 상황에서 휴머니즘적인 접근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영화들이 다수 눈에 띈다. 이 시기 영화들은 북한을 적대국가로 설정하면서도 같은 민족, 같은 사람임을 잊지 않고 있다.

<피아골> 1955·감독 이강천

휴전 후 지리산에서 게릴라 활동을 이어간 빨치산 부대 내부의 갈등을 그린 영화. 잔혹한 빨치산 부대장 아가리(이예춘), 온갖 만행을 지켜보며 공산주의 이념에 회의를 느낀 철수(김진규)와 그를 연모하는 애란(노경희), 동료를 겁탈하고 다른 이에게 누명을 씌워 살해하는 만수(허장강)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면면을 다뤘다. 토벌대의 영웅적 업적 대신 빨치산들의 인간적인 고뇌를 다뤘다는 이유로 용공논쟁을 불러일으킨 한편 반공법 위반으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으며 마지막 장면에 태극기를 오버랩으로 삽입한 후에야 극장 개봉을 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이념적 갈등보다 애정 문제 등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않은 시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관련 영화★ 시점의 차이_ <나는 고발한다>(1959) 감독 김묵

한국전쟁 때 납북된 남한 인사들의 북한 강제수용소 탈출기. 빨치산과 정반대의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절박한 상황에서의 멜로드라마를 축으로 하는 등 골격은 <피아골>과 유사하지만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북한의 비인간적인 만행을 집중 조명한 반공 드라마의 전형.

<7인의 여포로> 1965·감독 이만희

북한군 장교가 한국전쟁 중 포로가 된 간호장교 7명을 호송한다. 그 과정에서 중공군이 여포로들을 겁탈하려 하자 이를 막아서며 중공군을 해치운다. 북한군 장교는 한 민족이라는 생각에 일을 저질렀지만 이대로 포로를 호송하면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받을 거란 생각에 갈등하고 결국 여군들의 설득 끝에 남한으로 귀순을 결심한다.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논란을 일으켰다. 1962년 영화법 개정 이후 검열이 강화된 탓에 이만희 감독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감상적 민족주의, 무기력한 국군 묘사, 북한 괴뢰군 찬양, 양공주의 과장된 묘사가 구속의 근거였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그만큼 정확하게 시대상을 반영한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

★관련 영화★ 시대고발_ <오발탄>(1961) 감독 유현목

전후 서울의 피폐한 풍경을 그린 <오발탄>에서 노모의 “가자, 가자”라는 대사가 북으로 가자는 말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됐다. 유현목 감독은 <7인의 여포로>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춘몽>(1965)이 외설 혐의를 받는 등 고초도 겪었다.

반공의 장르화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62년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반공영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1966년 제작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동시에 정권의 입맛에 맞춘 검열이 강화되며 감독들과 지속적인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제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색을 녹여낸 영화들은 꾸준히 나왔으며 반공영화가 전쟁, 첩보, 멜로드라마 등의 장르와 결합해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

<운명의 손> 1954·감독 한형모

반공 첩보물의 효시로서 이후 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북한의 간첩 정애(윤인자)는 우연히 고학생 영철을 구해주고 정성껏 치료한다. 그 과정에서 애틋한 마음이 생기지만 영철이 실은 방첩 장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사랑과 임무 사이에서 갈등한다. 멜로드라마를 기반에 둔 첩보물. 특히 여주인공 정애가 시대의 부조리를 꿰뚫고 있는 똑똑한 신여성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분단 상황 자체를 장르적 갈등요소로 풀어낸 스타일리시한 작품. 클로즈업된 손의 몽타주로 문을 여는 오프닝,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 등 여러모로 파격적이고 과감하다.

★관련 영화★ 첩보영화 제작 붐

반공 오락영화의 두축 중 하나인 첩보물은 1965년 <007 위기일발>(1963)의 개봉을 기점으로 크게 유행한다. 실제 첩보원이었던 김동현 원작으로 화제를 모은 <8240 KLO>(감독 정진우, 1966), 남편의 복수를 위해 첩보 활동을 하는 여성간첩을 그린 <죽은 자와 산 자>(감독 이강천, 1966), 한·홍 합작영화로 국제첩보조직을 다룬 <스타베리 김>(감독 고영남, 1966) 등 다채로운 소재와 결합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감독 이만희

반공 오락영화의 나머지 한축인 전쟁영화는 한국전쟁 직후엔 대규모 촬영이 불가능해 현실적으로 제작이 어려운 지점이 많았다.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 이대엽 등 당대 스타들을 총동원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해병들의 전우애를 그리고 있다. 한국영화 최초의 대규모 전투 장면을 선보이며 이후 전쟁영화 제작에 물꼬를 텄지만 이 영화가 기억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군인들의 영웅적 면모보다 처참한 전장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적 고뇌를 부각해 보편타당한 인간애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와 국방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이 영화에는 실제 탱크와 제트기가 동원됐고 3천여명의 해병대가 직접 출연했다. 특수효과 총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 실탄을 사용하는 등 또 다른 차원에서의 리얼리티가 넘친다.

★관련 영화★ 전쟁영화 전성기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상업적 성공으로 <빨간 마후라>(감독 신상옥, 1964), <피어린 구월산>(감독 최무룡, 1965), <남과 북>(감독 김기덕, 1965) 등 여러 장르와 결합한 형태의 전쟁영화들이 쏟아져나오며 반공영화의 폭발적 증가의 한축을 담당했다.

<똘이장군: 제3땅굴편> 1978·감독 김청기

1970년대 전방위로 시작된 반공교육과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국책영화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매체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바로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오늘날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대표적인 반공만화영화 <똘이장군>(1978)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붉은 수령을 돼지로, 수하들을 여우와 늑대, 박쥐로 그리는 등 노골적이고 직관적인 묘사가 눈에 띈다. 공산당 붉은 수령의 생일을 위해 산삼을 캐오라는 명령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악당들에 맞서 숲속에서 자란 똘이장군이 숲속 친구들과 함께 제3땅굴을 파내려가던 북한 괴뢰를 무찌르는 과정을 담았다. 고된 노동으로 인민들을 착취하는 모습, 아편 밀수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북한 특권층의 부도덕, 끊임없이 남한을 노리는 북한의 야심 등 민감한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이란 완충지대를 빌려 서슴없이 묘사한다. 김정일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여타 애니메이션이 많지 않았던 것이 흥행의 이유이기도 하다. 인기에 힘입어 속편 <똘이장군: 간첩잡는 똘이장군>(1978)이 제작됐다.

의심과 균열

반공영화의 장르적 효용은 사실상 1960년대에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1970년대에도 반공영화는 꾸준히, 아니 적극적으로 제작되었다. 정권유지 차원에서 반공을 국시로 내건 이후 대대적인 제작에 들어간 반공영화는 국책영화라는 이름을 빌려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직접 제작하는 형태로 명맥을 이어간다. 그런 만큼 검열은 더욱 엄격해졌고 선전, 선동의 성격이 한층 짙어졌다. 한정된 표현의 자유 와중에도 시대와 부딪치고 창작의 틈새를 기어코 찾아낸 영화들도 있다. 이후 1990년 냉전해체 이후 반공에 대한 색은 옅어지고 자연스레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로 축을 옮겨가게 된다. 여기서는 그 대표적인 두 작품을 소개한다.

<짝코> 1980·감독 임권택

“내가 제일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짝코>에서 거의 주제와 닿고 있는 데가 잘려나갔단 말이오. 짝코(김희라)와 송기열(최윤식)이 갱생원에서 탈출 전에 텔레비전에서 6·25기념 방송이 나오고 있는데 전쟁 평론가들이 좌담하는 프로를 보고 있는 거예요. 요지는 결국 6·25가 열강들의 대리전쟁 격이었다는 이야긴데…. (중략) 두 사람이 거기서 알아차린 거요. 자기들이 피해자였다는 것을.” 임권택 감독은 정성일 평론가와의 인터뷰집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권에서 진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시나리오 검열에서는 통과한 그 장면이 영화에서는 삭제되어 본질이 훼손당했다는 것이다. <짝코>는 30년 동안 쫓고 쫓기던 두 남자가 갱생원에서 만나 마지막을 함께하는 이야기다. 빨치산이었기에 평생을 도망쳐야 했던 남자와 빨치산 토벌대였지만 그를 놓친 탓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또 다른 남자의 삶은 한국전쟁이 남긴, 잘 드러나지도 않아 곯아버린 상처다. 분노와 비애로 지난 한국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는 이 영화는 실은 외화수입쿼터를 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제작한 반공영화이며 이제는 역사의 뒷길로 사라진 대종상 우수반공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은 정확히 반공을 반대하는 영화라 불러 마땅하다. 부정적으로 그려지던 북괴의 모습을 탈피해 분단이 서로에게 남긴 상처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나뉘고 대립했던 관계를 인간이라는 동등한 위치에 놓고 섞은 뒤 통찰한다. 이후 찾아올 분단영화의 전조라고 할 수 있는데, 시류에 편승한 게 아니라 감독 스스로 걸어온 삶의 역정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관련 영화★ 국책영화의 표본_ <증언>(1973) 감독 임권택

<들국화는 피었는데>(감독 이만희, 1974), <울지 않으리>(감독 임권택, 1974), <태백산맥>(감독 권영순, 1975), <낙동강은 흐르는가>(감독 임권택, 1976) 등 1970년대는 정부가 지원한 초대형 반공영화들이 쏟아져나왔고 그 선두에 <증언>이 있다. 당시 1억2천만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 과정을 잔혹하게 묘사한다.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로서는 손색없지만 시선이 편향되어 있음은 어쩔 수 없다. 반대로 이 영화의 노골적인 편향성이 당대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쉬리> 1999·감독 강제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을 탄생시킨 영화로 당시 전국 관객 150만명 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사라져가던 분단이라는 소재를 다시금 전면으로 끌어올리며 이른바 새로운 분단영화의 문을 열기도 했다. 스펙터클한 전투와 실감나는 시가전, 멜로드라마적인 감성과 스릴러의 긴장을 갖춘 종합엔터테인먼트 무비다. 무엇보다 북한을 단순한 악의 축으로 그리지 않고 첩보원 이방희(김윤진) 등에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하며 분단 상황의 비극을 강조한 것이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 찬반양론이 쏟아졌지만 이후 북한을 다룬 영화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공한다.

같은 눈높이에서

<쉬리>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시대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라 해도 좋겠다. 남북 화해 무드 시기에 나온 영화들은 남과 북을 한민족으로 묶어 인간애를 부각시켰고, 냉전 모드로 들어간 뒤로는 북쪽의 첩보원에 대한 영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비극적인 분단 현실이 장르적으로 소화되던 1950~60년대로 다시 돌아간 모양새라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 가깝고 친숙하지만 여전히 장막에 가려진 이미지들. 영화는 그 틈새를 비집고 어떻게든 북한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 2000·감독 박찬욱

멜로드라마를 통해 인간미를 강조했음에도 <쉬리>는 여전히 전문 요원들의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에 반해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북한군도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일반인의 눈높이로 끄집어 내린다. 판문점에서 일어난 북한 초소병 의문사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남북 군인들의 우정을 그려낸 이 영화는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와 한장의 이미지로 보이는 것 이상의 진실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북한군의 사랑을 받는 초코파이에 대한 재미난 묘사를 통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영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남북 화해 분위기에 맞춰 민족의 화합을 그린 영화나 북한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는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됐다.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2005)은 전쟁과 동떨어진 강원도 산골 마을을 무대로 이념과 대립을 넘어 남북 군인들을 하나로 묶는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선보인다. 안판석 감독의 <국경의 남쪽>(2006)은 북에 연인을 남겨두고 온 탈북민의 절절한 사연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새삼 일깨운다.

<간첩> 2012·감독 우민호

표현의 영토가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 알아보기 가장 쉬운 장르는 호러와 코미디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코미디 장르가 추가되기 시작한 건 그만큼 익숙하고 유연한 영역에서 대상에 대한 풍자와 해석이 가능해졌다는 신호일 것이다. 우민호 감독의 <간첩>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생활밀착형, 생계형 간첩들을 통해 거리감을 좁힌다. 남파된 지 오래된 고정간첩들은 이제 자신이 간첩인지 남한 주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암살지령을 가지고 온 엘리트 간첩은 고민거리일 뿐이다. 오랜 남북 대치가 빚어낸 기발한 상상력이자 어쩌면 현실적이고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관련 영화★ 웃길 수 있다!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 이후 남파 간첩에 대한 스펙트럼은 극적으로 넓어졌다. 북한에 대한 친숙함의 정도가 반영된 결과라 해도 무방하다. 딱딱하고 진지하고 비극적으로만 받아들였던 현실은 분단 상황을 코미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만남의 광장>(감독 김종진, 2007)처럼 점차 유연해져 생활눈높이까지 내려오는 중이다.

<의형제> 2009·감독 장훈

송강호가 하면 뭐든 생활이 된다. 해직된 국정원 요원과 남파공작원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서로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이 형제처럼 친밀해진다는 구조 자체는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흥신소로 생계를 유지하는 국정원 요원의 밥벌이의 서러움이나 훤칠하고 어린 남파공작원의 콤비는 참신한 면이 있다. 북한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는 다소 준 대신 버디무디, 액션, 판타지 코미디 등 장르색이 강해졌다. 평화와 냉전 모드를 오가며 교착된 사이 분단 상황의 규모를 늘리는 대신 우회로를 찾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관련 영화★ 잘생긴 북한 첩보원과 생계밀착형 남한 요원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 2013), <공조>(감독 김성훈, 2016), <용의자>(감독 원신연, 2013)의 공통점은 잘생기고 능력 있는 북한 첩보원과 생계밀착형(혹은 비리형) 남한 요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의형제> 이후 하나의 전형처럼 자리잡은 이러한 관계는 무능하고 부패한 남한 정부와 보수정권이 들어선 후 교류가 줄어들며 한동안 신비주의 장막에 가려진 북한에 대한 현실인식의 반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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