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정치 지형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칠 남북한 통일 준비 5개년 계획이 선포된 2029년. 영화 <인랑>이 제시하는 가상의 미래 속에서 배우 한효주가 연기하는 이윤희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홀로 외롭고 처절하게 싸워나갈 인물이다. 임중경으로 대표되는 대통령 직속 경찰기구 특기대와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 그리고 공안부의 대립 속에서 이윤희는 어떤 활약을 보여주게 될까. 한효주에게 남자들로 둘러싸인 세계 속에서 홀로 버티고 선 이윤희의 아픔, 삶의 무게에 관해 물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원작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원작 애니메이션은 20대 때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김지운 감독님이 리메이크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나올 즈음이었나? 그땐 이야기가 좀 모호하다고 느꼈고, 캐릭터에는 자꾸만 연민이 생기더라. 다음날에도 영화의 주제가가 귓가에 계속 맴돌고. 시나리오를 받아 읽고는 내가 연기할 윤희가 참 어렵겠다,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이윤희의 어떤 점이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았나.
=개봉 전이라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복합적인 캐릭터라 여러 가지를 표현해야 했다. 아픔이나 외로움이 깊게 깔린 인물이다. 격동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행동할 때는 또 전혀 다른 모습을 꺼내서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김지운 감독은 이윤희가 어떤 인물이기를 원했나.
=어떤 면에서는 좀 섹시하게 느껴지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감독님은 아마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다른 얼굴을 꺼내려고 노력하신 것 같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면 나의 새로운 면모를 꺼내준 감독님한테 고마워할 것 같다.
-배우 강동원과는 <골든슬럼버>(2017) 이후 두 번째로 함께 작업한다.
=정우성 선배와도 <감시자들>(2013) 이후 두 번째 작업이고, 김무열 오빠와도 SBS 드라마 <일지매>(2008)에 함께 출연했었다. 배우들끼리 전작에서 한번 호흡을 맞추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편하다. 동원 오빠도 나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인랑>의 메시지와 연기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상황을 묘사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남자들만 등장하는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구미경(한예리)과 대면하는 장면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랑> 촬영장은 감독님과 배우들 모두 과묵해서 정말 조용했다. 예리 언니와의 장면들은 촬영 초반에 찍었는데 언니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혼자 있어야 해서 외로웠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상황이 윤희를 연기하는 데 더 맞는 거라 생각한다. 요즘은 현장에 동료 여배우가 있으면 친구처럼 이야기 나누면서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참고한 부분이 있나.
=가끔 시나리오에 표현된 윤희의 감정이 이해가 안 될 때, 원작을 다시 돌려보면서 케이의 대사를 써보면서 마음에 새긴 적이 많다. 그러다 보면 왠지 그녀가 어떤 마음일지 알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인랑>의 윤희는 원작 캐릭터인 케이가 지닌 고민의 깊이보다 더욱 복합적이고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맑고 순수한 얼굴 뒤에 숨겨진 서늘함을 지닌 캐릭터에 끌리는 편인가.
=음. 일단 <인랑>은 연출자를 보고 선택했기 때문에 캐릭터는 뒤늦게 고민했다. 매번 시나리오를 읽을 때마다 다른 포인트에 집중하지만 대개 캐릭터가 어떤 아픔을 지녔는지를 먼저 보게 된다. 그 아픔에 내가 끌리나 싶기도 하다.
-배우 한효주에게 <인랑>은 어떤 영화가 될까.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김지운 감독님이 나의 새로움을 꺼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작업이어서 찍으면서도 불안하고 이게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가 감독님을 믿고 거침없이 연기한 것 같다.
-<인랑> 이후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시나리오는 계속 보고 있는데 아직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최근의 <택시운전사>나 <1987>처럼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의미 있는 영화에도 출연해보고 싶다. 장르에 대한 부담감도 없어서 더 나이 들기 전에 액션영화도 해보고 싶다. (웃음) 아직은 안 해본 영화가 더 많으니까 열어두고 생각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