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공작> 황정민 - 덧대지 않았다
2018-07-31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암호명 ‘흑금성’이라 불린 안기부 스파이 박석영은 여러 얼굴을 가진 사나이다. 퇴역 군인 시절의 박석영, 베이징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북 고위직에 접근하는 대북 사업가 박석영, 안기부 공작원 박석영 등 영화 속 그는 한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변화무쌍하다. 황정민은 그런 흑금성이 “도전인 동시에 오랜만에 연기하는 쾌감을 준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군함도>(2017) 개봉이 끝난 뒤 올해 초 연극 <리차드 3세>를 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줄곧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는 그는 <공작> 개봉을 앞두고 “관객이 대사 위주로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 무척 궁금하다”고 말했다.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 윤종빈 감독을 통해 흑금성 사건을 알게 됐다고.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서 흑금성 사건을 소개한 적 있다. 윤 감독에게서 그 에피소드가 담긴 파일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1997년 당시 북풍 사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흑금성이 누군지 전혀 몰랐던 까닭에 방송 내용이 무척 놀라웠다.

-그렇게 알게 된 흑금성 사건은 어땠나.

=<베테랑>(2014) 속 대사(“어이없네”)처럼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당시 안기부 고위직들이 자신들(의 정치세력)이 살아남기 위해 피붙이(흑금성)를 밖으로 내보내 공작을 시킨 게 아닌가. 한국 사회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금성은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1인다역을 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배우로서 도전이기도 하고, 한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모하는 캐릭터를 잘해냈을 때 드는 쾌감도 분명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보니 덧댈 만한 게 없더라. 할리우드 첩보물처럼 멋을 부릴 수가 없고 사실적인 범위 안에서 말과 행동을 해야 해서 조금은 힘들었다.

-그 점에서 <공작>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첩보물과 다른 스타일을 가진 작품인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를 좋아한다. 배우 게리 올드먼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말하지 않아도 우직함이 담긴 에너지를 보여주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연기는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공작>이 그런 도전을 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관객이 ‘이제 황정민 연기, 지겹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라면 관객을 안 지겹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 없이 대사만 가지고 서스펜스를 쌓아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실화에서도 액션이 없었던 까닭에 액션을 새로 만들 수 없었다. 감독님은 관객이 대사를 액션처럼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사를 액션처럼?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되지? 인물들이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칼날을 주고받는, 현장의 공기가 너무 좋았던 동시에 눈알 하나 돌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감독님도 배우도 이 연기가 정말 좋은 건지 잘 모르면서 찍었다. 모든 장면이 ‘좋은 것 같은데’ 하며 ‘쩜쩜쩜(…)’으로 끝나니까 어려웠다. 최근 출연작 중에서 이렇게 작업한 영화가 없었고, “바닥을 쳤다”는 (이)성민이 형 말처럼 앞으로 연기하는 데 큰 경험과 도움이 됐다.

-만만치 않은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는 박석영처럼 배우로서 매 시퀀스를 뛰어넘는 쾌감이 컸을 것 같다.

=박석영의 공작이 살얼음판을 걷듯이 진행됐다. 개인적으로 평양에 들어가기 전까지 연기하는 게 힘들었고, 평양에 들어가서부터는 ‘죽일 테면 죽여라’라는 마음이 들면서 오히려 편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니 사람이 조금 대범해진 것도 있고. 아마도 실제 흑금성인 박채서 선생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박석영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을 것 같다.

=맞다. 나는 누구일까. Who am I? 박채서 선생이 살아온 삶과 삶을 대하는 그의 생각을 보면 그가 위험천만한 일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꿈쩍하지 않는 바위 같은 면모가 있더라.

-차기작은 윤제균 감독의 4년 만의 신작 <귀환>으로 알려졌다.

=<공작> 찍을 때 윤제균 감독님이 출연 제의를 해 왔다. <국제시장>(2014) 때 윤 감독님이 SF영화 찍겠다며 얘기가 나왔던 아이템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정거장 ‘살터-03’에서 불의의 사고로 홀로 남겨진 우주인을 귀환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SF영화다. 우주정거장에 갇힌 우주인을 연기한다. 12월에 촬영에 들어간다. 이제 백수 생활도 얼마 안 남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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