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우리' 확장하기②] 난민 이슈를 다룬 영화 15선 Ⅰ
2018-08-08
글 : 장영엽 (편집장)
‘타자’에서 ‘우리’로

<디판> Dheepan

감독 자크 오디아르 / 제작국가 프랑스 / 제작연도 2015년

2015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 스리랑카 내전을 피해 망명한 세 인물이 프랑스에 정착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스리랑카 군부 출신의 디판은 일면식도 없는 여자 얄리니, 그녀가 데려온 부모 잃은 소녀 일라얄과 프랑스에서 위장 가족으로 살아가게 된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직업. 이들에겐 더이상 자신의 것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가 남아 있지 않다. 디판, 얄리니, 일라얄이라는 이름조차 사망한 스리랑카인의 여권에서 취한 것이다. 하지만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 위장 가족에겐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다. 세 사람이 가족으로서의 관계를 형성해갈 무렵, 마을의 폭력적인 마약상들이 디판의 가족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장르적 연출에 능한 자크 오디아르는 등장인물간의 인위적인 관계로부터 진실된 멜로드라마를 이끌어낸 다음,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영화의 주요 배경인 프랑스 근교를 연기 자욱한 내전의 한복판으로 탈바꿈시킨다. 그 한가운데를 야수처럼 배회하는 디판의 모습은 강렬한 이미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테라페르마> Terraferma

감독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세 / 제작국가 이탈리아, 프랑스 / 제작연도 2011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위치한 작은 섬, 마을 주민 대부분이 어업이나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 섬에 언젠가부터 난민들이 찾아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을 돕는 것은 이탈리아 사회에서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바다에서 우연히 난민 몇명을 구조한 필리포는 엄마, 할아버지와 함께 그들을 집에 숨기고 몰래 보살핀다. 하지만 당장 세 사람이 먹고살기도 어려운 집안 사정에 필리포와 가족들은 난민들을 언제까지 머물게 할 수 없다. 이탈리아영화 <테라페르마>는 경제 불황과 난민 문제에 시달리는 동시대 유럽 사회의 딜레마를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이다. 관광객을 한명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피켓을 들고 호객 행위에 나선 시칠리아인들과 바다 한가운데에서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난민들의 모습은 어딘가 많이 닮았다. 바다에 빠진 사람은 무조건 구하고 본다는 “바다의 법”을 따를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에겐 “마른 땅”(terraferma)을 밟을 권리가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제6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신의 나라> God’s Own Country

감독 프랜시스 리 / 제작국가 영국 / 제작연도 2017년

지난해 영국영화계를 뒤흔든 신인감독의 장편 데뷔작. <타임스>는 이 작품을 두고 “요크셔 버전의 <브로크백 마운틴>”이라 평하기도 했다. 영화는 정제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요크셔 초원을 배경으로 두 청년의 원초적이고 농밀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 고령의 할머니를 대신해 농장 일을 돕고 있는 존에게는 꿈도 희망도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탈이란 펍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거나 이름도 모르는 청년과 몸을 섞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부족한 일손을 보충하기 위해 아버지가 고용한 루마니아 출신의 청년 게오르그가 존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양의 출산을 돕고 울타리를 만들며,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신의 나라>는 난민을 희생자 또는 적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피와 살과 감정을 가진 존재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기억해야 할 영화다. 루마니아의 햇살과 꽃, 향기를 그리워하며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연을 닮은 강인한 몸과 마음을 가진 게오르그는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나의 사랑, 그리스> Enas Allos Kosmos

감독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 제작국가 그리스 / 제작연도 2015년

그리스는 난민들이 서유럽에 들어오기 위해 거치는 주요 환승국 중 하나다. 경제 위기로 대량 실업과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리스에서는 사회에 대한 분노의 표적이 난민들에게로 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동시대 그리스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세 가지 에피소드에 담아낸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역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야심한 밤, 그리스의 한 골목길에서 괴한들에게 봉변당할 위기에 처한 다프네를 파리스가 구해준다. 다프네는 시리아 출신의 난민이자 남루한 행색의 파리스를 처음에는 멀리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그에게 점점 더 빠져든다. 한편 그리스에서 난민들을 몰아내자는 슬로건으로 뭉친 과격한 파시스트 집단 필그림은 파리스와 난민들의 아지트를 습격할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터전을 빼앗긴 구세대의 분노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을 때 신세대는 어떤 비극을 마주하게 되는가. 난민과 사랑에 빠진 그리스 여인의 에피소드로 시작해 사건과 관계의 연쇄 작용을 좇는 솜씨가 유려한 작품이다.

<화염의 바다> Fuocoammare

감독 잔프랑코 로시 / 제작국가 이탈리아, 프랑스 / 제작연도 2015년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지금 현재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다큐멘터리스트인 잔프랑코 로시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람페두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전세계가 당면한 난민문제의 딜레마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람페두사에 사는 12살 소년 사무엘이다. 나뭇가지를 꺾어 새총을 만들고 부둣가에 앉아 바다를 구경하는 등 사무엘의 일상은 여느 도시에 사는 아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소년이 사는 이 바닷가 마을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몰려드는 곳이다. 람페두사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 이면에는 육지를 찾아오다가 좌초된 난민들의 시신 수십, 수백구를 매일 바다에서 건져야 하는 해안경비대의 사연이 공존한다. 뱃사람으로서의 운명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노 젓는 법을 배우는 소년과, 소년이 노를 젓던 바로 그 바다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담요를 뒤집어쓴 난민들의 공허한 표정. 도무지 섞여들지 않는 이 두 이미지의 충돌이 어쩌면 세계가 직면한 난민 문제의 딜레마일지도 모른다고 잔프랑코 로시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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