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감독에게 이 프로젝트를 넘겨야 할까? 안 돼, 그러기엔 내가 이 작품을 너무 사랑하는데….” 지난 2011년 <콜라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이렇게 말했다. <알리타: 배틀 엔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제임스 카메론의 드림 프로젝트였다. 유키토 기시로가 1990년 출간한 만화 <총몽>에 완전히 매료된 카메론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이 작품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실사영화를 반드시 만들겠다며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다녔다. 그 작품이 바로 <알리타: 배틀 엔젤>이다. <아바타>(2009)가 전세계 박스오피스 역대 1위를 달성하고, 몇편의 속편 제작이 확정된 뒤에도 제임스 카메론은 <알리타: 배틀 엔젤>을 완전히 접거나 다른 감독에게 섣불리 넘겨주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한대로 연기될 것 같았던 <알리타: 배틀 엔젤> 프로젝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씬시티> <마셰티> 시리즈의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합류하면서부터다. 제임스 카메론이 사전 제작한 애니메틱스와 아트워크에 매료된 로드리게즈는, 카메론이 창조한 세계를 존중하며 거기에 자신의 비전을 덧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카메론에게 입증했다. 수년 만에 제임스 카메론이 찾아낸 적임자, 로버트 로드리게즈로부터 <알리타: 배틀 엔젤>은 시작됐다.
유키토 기시로의 만화 <총몽>과 마찬가지로, <알리타: 배틀 엔젤>은 빈부 격차가 심한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고철 더미 속에서 발견된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로사 살라자르)의 여정을 다룬다. 사이보그를 고치는 의사 이도(크리스토프 발츠)의 도움으로 의식을 되찾은 알리타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살았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한편 알리타와 이도가 살고 있는 고철 도시에는 흉악한 사이보그 범죄자들이 출몰한다. 알리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들과 맞서는 과정에서 자신의 숨겨진 힘을 깨닫는다.
낯설지만 매혹적인 세계와 신묘한 캐릭터들, 화려한 액션. <알리타: 배틀 엔젤>은 매 작품을 통해 오직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창조해온 제임스 카메론의 인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앞서 공개된 예고편과 소수의 영화 관계자들에게 공개된 20분가량의 푸티지 영상을 통해 제작진이 구현한 고철 도시의 압도적인 스케일, 인간의 육체와 기계를 결합한 사이보그 캐릭터들의 다채로운 액션 시퀀스를 만나볼 수 있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배우들을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게 하는 대신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 트러블메이커의 야외 촬영장 부지를 늘려 2700여평의 세트장에 파나마시티와 세계 각지로부터 영감을 받은 고철 도시를 직접 제작했다. 고철 도시의 황폐하고 비루한 풍경과 대비되는, 공중도시 자렘의 화려한 모습도 관전 포인트다. 거대한 궤도 엘리베이터를 통해 땅과 이어진 공중도시 자렘의 모습은 뉴질랜드 디지털 시각효과 업체 웨타 디지털이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스펙터클한 영상보다 더 중요한 <알리타: 배틀 엔젤>의 핵심은 ‘감정’이라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말한다. “제임스 카메론의 시나리오에는 늘 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다. 이 작품에서도 훌륭한 러브 스토리,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든 기억을 잃고 낯선 세계에서 깨어난 알리타를 아버지처럼 보살피는 과학자 이도, 고철 도시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거리의 소년 휴고(키언 존슨)와의 관계는 알리타의 모험을 더 풍성하게 만들 예정이다.
인간의 마음과 기계의 몸을 가진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는 강력한 파워와 인간적인 면모를 겸비한, 영락없는 제임스 카메론 스타일의 여전사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 <인서전트>(2015) 등의 액션 대작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라틴계 미국 배우 로사 살라자르가 알리타를 연기한다. “라틴계 여배우가 스케일이 큰 영화를 이끄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대로, <알리타: 배틀 엔젤>은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2017) 등 화이트워싱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앓았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여타의 할리우드 SF 대작들과 다른 길을 간다. <007 스펙터>(2015),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등의 작품에서 개성 있는 악역으로 눈길을 끌었던 크리스토프 발츠가 부성애 넘치는 과학자 이도를 연기한다는 점이 흥미로우며, 영화 출연 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 키언 존슨의 활약도 궁금하다.
제작비가 2억달러에 육박하는 <알리타: 배틀 엔젤>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본격 블록버스터 데뷔작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스파이 키드> <씬시티> <마셰티> 시리즈 등 독창성이 돋보이는 중급 규모의 프로덕션에서 장기를 발휘해온 로드리게즈에겐 이 영화가 더 확장된 세계 속에서 자신의 비전을 펼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종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제임스 카메론이 완성된 영화를 본 뒤 ‘내가 찍었어야 하는 건데’라고 말하는 거다.”(로버트 로드리게즈) 제임스 카메론의 세계관과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비전이 만난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은 과연 새 시대의 <아바타>가 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얻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혹성탈출> 시리즈보다 진보한 모션 캡처 기술
<알리타: 배틀 엔젤>의 예고편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건 풍부한 감정을 머금은 알리타의 표정이다. 제작자 존 랜도에 따르면 이 작품은 <혹성탈출> 시리즈의 모션 캡처 기술에서 한발 더 나아간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혹성탈출>의 시저는 얼굴이 털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얼굴의 세세한 움직임을 전부 표현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알리타의 경우 얼굴 전면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입과 입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표현하려면 내부의 움직임까지 들여다봐야 했다.” 표면적으로 볼 수 있는 얼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표정을 짓게 하는 피부 밑 근육의 움직임까지 포착하는 모션 캡처 기술을 선보이는 경우는 <알리타: 배틀 엔젤>이 처음일 거라고 존 랜도는 말한다. 제작진은 배우 로사 살라자르의 실제 흉터와 잔주름, 근육의 움직임을 캐릭터에 그대로 반영해 알리타의 얼굴에 리얼리티를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