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돌림노래가 지겨웠던 관객에게도, <범블비>의 예고편은 솔깃하다. 액션의 지나친 물량 공세로 피로감을 주던 전작과 달리 1987년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로 무대를 옮겼고, 성인 남성이 아닌 1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접근이 신선하기 때문이다. 여기엔 시리즈 중 처음으로 마이클 베이가 연출을 맡지 않았다는 이유가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대신 애니메이션 <쿠보와 전설의 악기>(2016)를 연출한 트래비스 나이트가 감독을 맡아 <트랜스포머> 세계관의 첫 캐릭터 무비를 책임진다. 그는 <엠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이 거대한 프랜차이즈에 접근하면서 캔버스의 작은 구석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내가 속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라이카는 어둠과 빛, 강렬함과 따뜻함, 유머와 사랑의 예술적인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철학을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녹여내고 싶다.”(<엠파이어>)
<트랜스포머> 애니메이션 및 완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80년대로 무대를 옮긴 것도 여러모로 절묘하다. 앞서 요란 법석한 작품들이 건드리지 않았던 이 공간은 새로운 드라마를 펼칠 여지가 많다. 무엇보다 <트랜스포머>는 과거의 추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시리즈였고, 80년대는 그 본원적 뿌리에 해당한다. 팬들이 시리즈에 열광한 진짜 이유를 건드릴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여기에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자신이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성장영화를 보며 80년대를 보낸 세대임을 밝히며, 그 시절 틴 무비의 정서도 <범블비>에 반영할 것이라 덧붙였다.
<범블비>가 전장에서 가까스로 도망친 범블비와 18살 소녀 찰리 왓슨(헤일리 스테인펠드)이 감정을 나누는 드라마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2017)에 따르면 범블비는 2차 세계대전 중 지구에 있었고 당시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에 참석한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범블비는 사람들과 가장 끈끈한 관계를 맺는 인간적인 캐릭터다. 나는 그의 캐릭터에 매료됐고, 어떻게 범블비가 시작됐는지 알고 싶었다”고 전했다. 같은 자리에서 헤일리 스테인필드는 “삶에서 큰 상실이 있었던 찰리는 주변으로부터 오해를 받곤 하는 전형적인 10대 소녀다. 자유를 갈망하던 그는 범블비로부터 그것을 발견한다”며 둘이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강하다. 많은 사람은 찰리의 지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범블비와 형성하는 놀라운 관계를 증명해낸다”고 부연했다.
아시안계 혼혈 영국인 여성 작가 크리스티나 호드슨이 시나리오를 쓴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영화 매체 <덴 오브 긱>과의 인터뷰에서 “액션이 소년들을 위한 장르라는 것은 일종의 미신이다. 30, 40대 백인 남성이 아닌 나 같은 사람이 영웅이 되는 걸 보고 싶다. 그런 롤모델과 영웅 캐릭터를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범블비>는 소년들이 사랑하게 될 거대하고 멋지고 재미있는 액션영화이지만 소녀들도 영화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정말 특별하고 중요한 일이다.” 또한 타임라인상 ‘트랜스포머’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시리즈의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관객도 부담 없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끔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도 얻었다. 젊은 여성과 로봇의 조합은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가 예전부터 의견을 낸 기획이기도 하다. 또 다른 제작자 로렌초 디보나벤투라는 “그는 이게 굉장한 조합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항상 갖고 있었고, 우리는 그 방향으로 일을 추진했다.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이디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 진정한 변화인 것처럼 보인다”(<엔터테인먼트 위클리>)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스타워즈> 시리즈 등 할리우드 거대 프랜차이즈들이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리즈에 변치 않은 애정을 보여준 팬들에게도 <범블비>는 즐거운 이벤트다. 크리스티나 호드슨은 “팬이라면 보통의 관객은 즐길 수 없는 멋진 이스터에그들을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덴 오브 긱>)고 귀띔했다. 여기에 섀터, 드롭킥, 블리츠윙 등 디셉티콘 캐릭터가 등장해 두 주인공을 추격하고, <트랜스포머>에 등장했다가 영화 마지막에 해체됐던 정부의 비밀정보기관 섹터-7도 <범블비>의 타임라인에서 재등장할 전망이다. 또한 옵티머스 프라임의 목소리를 맡은 피터 컬런의 이름이 크레딧에 올라와 있는 만큼 그의 카메오 출연도 기대해볼 법하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평단으로부터 한번도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적이 없다. 그에 반해 흥행 스코어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최근작이었던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전작이 거둔 월드와이드 수익 평균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뒀다. <범블비>는 언젠가 로봇을 사랑했던 소년, 소녀들이 <트랜스포머>(2007)의 등장에 열광했던 진짜 이유를 돌이켜보되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자 한 의지가 읽히는 기획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범블비>라는 변곡점으로 반전을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처음으로 돌아간 범블비의 디자인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셰보레 카마로 모델로 구현됐던 범블비가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돌아온다. 범블비는 과거 <트랜스포머> 제너레이션1(이하 G1)에서 폴크스바겐 비틀로 묘사된 바 있다. 마이클 베이는 이 모델이 린제이 로한 주연의 <허비: 첫 시동을 걸다>(2005)를 연상시킨다며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심지어 <트랜스포머>에서는 구식 자동차를 놀리는 맥락에서 이 차량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1980년대 캘리포니아 배경에 걸맞고 <범블비>의 80년대 성장영화 같은 풍을 구현하기엔 이보다 적합한 디자인이 없다.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 이번 캐릭터 디자인의 의의를 설명했다. “우리는 빈 캔버스에서 <범블비>를 시작하지 않았다. 10년간 스크린으로 봤던 영화판 디자인이 있다. 하지만 <범블비>는 <트랜스포머>의 20년 전 상황을 그리고, 캐릭터 디자인에 자유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트랜스포머> G1 디자인이 준 감동이 있었다. 미학적 특질, 실루엣, 모양, 언어, 도금, 색감 등 여전히 전수받아야 할 것이 있다. 좀더 현대적인 관점에서 미적 특성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