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 바퀴를 단 기계가 되어 움직인다. 무려 세계에서 가장 큰 유람선의 두배 크기다. 그리고 7층짜리 거대 도시 런던은 다른 약한 도시를 잡아먹는다. 필립 리브의 소설 <모털 엔진>은 SF 장르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지 새삼 감탄하게 하는 역작이지만, 쉽게 시각화할 엄두가 나지 않는 초현실적 시공간이 묘사된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호빗> 시리즈를 만든 피터 잭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모털 엔진>의 판권을 일찌감치 구입해 2008년부터 각색에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본인이 직접 연출할 예정이었던 <모털 엔진>은 <호빗> 프로젝트가 먼저 착수하면서 연기됐고, 결국 <모털 엔진>은 <킹콩>(2005)과 <아바타>(2009)의 시각효과를 담당했던 크리스천 리버스의 장편 데뷔작이 됐다. 스케줄상 직접 연출이 어려웠던 피터 잭슨이 제작자에 이름을 올린 대신, 초창기부터 <모털 엔진>의 사전 시각화에 참여해 프로젝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동료에게 메가폰을 맡긴 것이다. “25년간 그를 알고 지냈다. 거의 모든 내 영화의 스토리보드를 그가 그렸다. 언제나 내가 어떤 식으로든 장편영화 데뷔를 지원하고 싶었던 사람이다.”(미국 온라인 영화 매체 <콜라이더>의 피터 잭슨 인터뷰)
<모털 엔진>은 프랜차이즈와 속편, 리메이크로 포화 상태가 된 할리우드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로젝트다. 크리스천 리버스 감독은 “관객은 새롭고 흥미롭고 신선한 무언가를 원한다. <모털 엔진>은 새로운 캐릭터가 있는 새로운 우주이며, 지금은 이를 위한 적기처럼 보인다”(<인디펜던트>)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세계, 자신들만의 철학과 종교도 만들어낸 세상을 묘사하는 만큼 가급적 예상 가능한 프로덕션 디자인은 지양하기도 했다. 가령 수천년 전 벌어진 ‘60분 전쟁’으로 멸망한 미래 배경은 자연스럽게 디스토피아물을 연상시키고, 옛것과 새것이 뒤섞인 세계는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적 향수와 기계의 비약적 발전을 다룬 스팀펑크 장르를 떠올리게 한다. 크리스천 리버스 감독은 “<모털 엔진>을 스팀펑크 장르나 후세에 있을 법한 종말론적인 작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정말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미국 온라인 연예 매체 <IGN>)는 의지를 강조했다. 영화가 의외로 어둡지 않고 밝은 색감을 띠도록 일부러 신경 쓴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미래의 런던에서는 무엇이 파괴되고, 무엇이 살아남았는지 상상해야 하는 과제도 남았다. “폐허 사이를 걸어다니다가 문명의 잔재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어떤 중요성을 둘까? 이것이 바로 ‘런던’에 접근한 방식이다. 세인트폴스나 영국 국기, 가장 덜 손상된 사자상을 견인 도시 위에 등장시킨 이유다.”(<인디펜던트>의 크리스천 리버스 감독 인터뷰) 또한 소설의 주인공은 15살 정도의 소년, 소녀지만 <모털 엔진>은 주연 나이대를 20대 이후로 변경했다. 피터 잭슨은 “원작 소설은 꽤 젊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누구도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10대 주인공의 디스토피아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그동안 나이를 먹은 이유가 바로 이거다. 캐릭터들을 보다 어른스럽게 바꿨다”(미국 온라인 영화 매체 <시네마블렌드>)고 각색 이유를 설명했다. 덕분에 “결코 사랑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여성이 혼란스럽고 이상한 세계 한가운데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시네마블렌드>) 기본 스토리의 농도도 보다 깊어졌다. 런던에 맞선 저항세력에 속한 헤스터 쇼(헤라 힐마)는 런던의 지배자 테디우드 발렌타인(휴고 위빙)에게 복수를 하려고 한다. 테디우드를 존경해온 톰(로버트 시한)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온몸이 기계화된 스토커 슈라이커(스티븐 랭)에게 길러진 헤스터와 윗사람에게 복종을 잘하는 톰은 초반에 갈등을 일으키지만, 두 사람은 함께 음모를 파헤치게 된다.
<모털 엔진>은 후속작을 확정하고 제작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후속편으로 연결될 수 있는 몇개의 연결 고리를 의도적으로 남겼지만 이 요소들은 크지 않고, 속편이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본편에 이야기되는 스토리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을 것”(<시네마블렌드>)이라는 게 제작자 피터 잭슨의 입장이다. 이것은 원작의 특징이기도 하다. 필립 리브는 <모털 엔진>을 쓸 때 연작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책이 성공한 이후에야 후속작(<사냥꾼의 현상금> <악마의 무기> <황혼의 들판>)을 집필해 ‘견인 도시 연대기’ 4부작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또한 피터 잭슨은 “전적으로 크리스천 리버스의 의사에 달려 있다. 만약 그가 다른 일을 한다면 그의 의견을 존중할 거다. 사실 나도 연출을 하고 싶고 기왕이면 마지막 편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때까지 크리스천 리버스가 모든 편을 연출한다면 그에게 선택권을 줄 것”(<콜라이더>)이라고 설명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필립 리브가 창조했던 환상적인 에픽을 ‘완결판’ 영화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강력한 여성 캐릭터
거대 도시 런던에 맞서는 암살자 헤스터 쇼는 얼굴 전체에 깊이 팬 상처 자국이 있고, 스카프로 얼굴의 3분의 2가량을 가리고 다닌다. 심지어 그를 연기한 헤라 힐마는 얼굴에 있는 상처가 지금 버전보다 더 크고 진했으면 좋겠다고 분장팀, 제작자들과 상의를 했다. “누군가가 칼로 내 얼굴을 베어버린 것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헤스터가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니어서 더 매료되었다고 전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을 보기가 굉장히 드물다. 아름답다거나 지적이라고 묘사되고, 잘못되거나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지 않나. 헤스터는 충분히 화를 내고 힘들어하는 인물이다.”(호주 온라인 연예 매체 <준키>) 그 밖에도 크리스천 리버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는 멋진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 사실 그런 여성 캐릭터가 멋진 남성 캐릭터보다 훨씬 많다”(<IGN>)고 귀띔하기도 했다. 원작을 이미 읽은 사람이라면 한국계 배우 김지혜가 연기하는 반도시주의자 전사 안나 팽의 활약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비행선 제니 하니버는 원작자가 가장 실사로 보고 싶은 모습으로 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