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국가부도의 날> 허준호 - 힘을 빼고야 가능했던 어떤 경지
2018-11-13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특별출연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 <인랑>(2018)을 제외하면 <이끼>(2010) 이후 8년 만의 영화계 컴백이다. 허준호는 1990년대, 2000년대 <걸어서 하늘까지> <젊은이의 양지> <아스팔트 사나이> <올인> <사랑과 야망>등 많은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그가 연기한 갑수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마자 회사와 가정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을 위기에 놓인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아 보인다. 허준호는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인물이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땠나.

=제목이 ‘국가부도의 날’이라니, 되게 어색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했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나니 재미있었고, 이렇게 큰 역할을 나에게 줘서 깜짝 놀랐다.

-이야기의 배경인 1997년에는 무엇을 했었나.

=철없는 30대 초반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노는 것을 좋아해 철없이 놀았다. 동시에 작품을 많이 한 까닭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뉴스를 통해 IMF와 관련된 소식을 접했지만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라가 망한다는 얘기는 없었으니까.

-IMF가 터진 다음해 인기 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 출연했는데.

=많은 시청자들이 <보고 또 보고>를 열심히 봤다는데 그 이유가 당시 일자리를 잃어 시간이 많아서였다고 하더라. 나중에 전해 들었다. 시청자들이 촬영에 적극 협조해줄 만큼 큰 인기를 누렸는데, 정작 당시엔 서민경제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1997년은 내 인생에서 아이러니한 해였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갑수는 어떤 남자였나.

=1997년부터 2018년까지 하루하루를 버티고 버텨온 평범한 가장이자 법 없이도 살 옆집 아저씨. 가끔 욕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 지는 남자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갑수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면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맡은 평범한 광부 황윤배가 떠오르는데. 이 드라마는 거친 이미지를 벗어나게 해준 첫 작품이 아닌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배우 스스로가 선입견을 깰 수는 없다. 말이 아닌 연기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마저도 캐스팅이 되어야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 <젊은이의 양지>에 출연하기 전에 멜로드라마에 캐스팅됐다가 잘린 적 있다. 멜로는 안 되는구나 싶어 충격받았다. 그때 <젊은이의 양지>에 출연하게 됐다.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걸음걸이에 유독 신경 썼다고 들었다. 촬영 전 어떤 준비를 했나.

=걸음걸이뿐만 아니라 서 있을 때 갑수가 되어 있어야 했다. 영화에 출연하기 전에 하기로 했던 작품에서 벌크업을 해야 하는 캐릭터를 맡았는데 가만히 서 있어도 자세와 걸음걸이가 문제가 됐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을 못 갈 만큼 허리가 아팠고, 허리에 복대를 찬 채 촬영장에 간신히 걸어가는데 엉거주춤한 갑수의 걸음걸이가 나왔다. 갑수는 매일 몸을 최대한 쭈그린 채 기계를 돌렸을 테니 그에겐 걸음걸이가 중요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감사했다.

-하루아침에 자금난에 몰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갑수의 상황이 공감되던가.

=갑수와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어 갑수에게 공감되는 지점이 있었다. 갑수처럼 죽을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면 버텨야 한다.

-갑수로 지내는 내내 갑갑했을 것 같다.

=그보다 중요한 건 온몸에서 힘을 빼는 거였다. 그렇다고 무표정이 되면 무서운 얼굴이 나오는 걸 잘 아니까 나에 대한 선입견을 스스로 깨야 했다. 결국은 나만 잘하면 됐다.

-<이끼> 이후 6년 만에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충무로에 복귀했다.

=미국에서 살던 어느 날 설경구, 송윤아 부부가 연락도 없이 나타났다. (설)경구는 같이 밥 먹다가도 지지고 볶고 사랑하는 동생이고, 사모님(송윤아)과는 드라마 <러브 스토리>에서 멜로 연기를 함께했었다. 두 사람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 만나러 와서 “허준호, 너 잡으러 왔어”라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후, <인랑>은 김지운이라는 세계적인 감독이 하라는데 어떻게 거절해. (웃음)

-<국가부도의 날>은 배우 허준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작품인가.

=배우로서 나를 다시 깨워준 영화다. 예전에는 배우를 다시 못할 줄 알았다. 내 삶이 내 뜻대로 안 되더라. 언젠가 영화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덕분에 이번에 작정하고 돌아왔다.

-차기작인 <퍼펙트맨>(감독 용수·출연 설경구, 조진웅, 허진호, 김사랑)은 언제 촬영에 들어가나.

=11월 1일 크랭크인했다. 직업이 정말 나쁜, 좋은 형을 맡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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