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공간
2019-01-10
글 : 윤웅원 (건축가)
두개의 집, 열린 공간

멕시코의 현대건축을 좋아한다. 우리가 멕시코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과는 달리 멕시코에는 뛰어난 현대 건축가들이 존재한다. 나는 멕시코의 건축가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외모가, 내가 미국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멕시코 사람들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이 항상 궁금했다. 루이스 바라간, 후안 소르도 마달레노, 마리오 파니, 테오도로 곤살레스 데 레온 같은 잘 알려진 건축가들은 유럽계 백인들처럼 보였다.

인종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크게 백인, 백인과 원주민 혼혈, 원주민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밝은 피부색을 갖고 있을수록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쉽게 경제적 상층부로 올라갈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멕시코의 인종, 정치, 경제 분야의 역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건축가의 ‘외모’는, 어떤 직업은 부유한 계층에 속해야 하고, 이 직업이 발현되는 형식이란 부유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로마>에서 가정부로 나오는 클레오(얄리트사 아파리시오)는 시골 출신의 원주민이고, 주인 가족은 중산층 백인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도시화의 기간 동안, 가난한 시골처녀들이 도시 중산층의 가정부로 일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멕시코에서는 특별하게, 백인 가정의 원주민 가정부라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로마>에는 두개의 집이 나온다. 하나는 로마라는 이름의 중산층 주거지역의 주택이고, 다른 하나는 농촌 지역의 플랜테이션 농장 저택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집이 모두 외부로부터 분리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로마의 주택이 거리로부터 독립된 집을 만들기 위해 중정을 이용했다면, 농장 저택은 높은 담을 쌓아서 외부와 격리된다. 농장 저택에서 높은 담의 존재는 담 안의 지주와 외부 소작농의 세계가 동일하지 않고, 또한 두 세계가 불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어린아이들을 옆에 두고 사격 연습을 한다거나, 기르던 개들의 머리를 박제해서 벽에 진열한다거나, 백인 가족들끼리 송년파티를 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암시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고 있는 로마 지역의 도시주택은 측면과 후면에 중정을 갖고 있고, 측면의 중정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지역 주택들이 건설된 시기와 바닥의 타일마감을 고려하면 원래부터 주차장으로 계획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영화에는 주차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중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구조다. 본채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있고, 도로로부터 사생활 보호가 필요한 침실들과 가족실은 2층에 위치해 있다. 후정 안쪽에는 부속 건물이 있는데, 부속 건물 2층 클레오의 침실은 중정을 사이에 두고 본채의 방과 마주하고 있다. 히치콕의 영화 <이창>(1954)처럼 감시가 가능한 이 조건은, 가정부의 침실 등이 켜져 있는지를 주인집에서 확인한다고 하는 대사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 도시주택이 갖고 있는 독립된 세계라는 형식은, 시골의 농장 저택과 달리 계층적인 차이에 대한 표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정부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부속 건물의 존재는 이 중산층 주택도 여전히 멕시코의 경제적 계층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전망을 확보할 수 있는 건물 옥상이 가정부들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부속 건물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는 옥상은 빨래를 하는 장소이고, 아이들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공간이다. 영화에서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이 비행기로 상징되고 있다면 가정부들에게 더 넓은 세상은 건물의 옥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타일 바닥을 부감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물을 흘려보내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리고 비누 거품이 끼어 있는 물 위로 프레임된 하늘이 반사되고, 그 사이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비행기가 나타난다. 이 장면은 평범한 일상이 벌어지는 마이크로한 세상과 비행기로 상징되는 더 큰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제부터 간략하게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할 생각이다. 그 이유는, 원주민 가정부 클레오가 어떤 사건을 통해서 주인집 가족의 일원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원주민 출신의 클레오는 중산층 백인 가족의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과 개를 돌보는 그녀의 일상은 임신했을지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 남자친구 페르민(호르헤 안토니오 게레로)이 사라진 후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집의 주인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도 남편이 외도로 집을 나간 후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물론, 소피아의 상황이 클레오가 나중에 남자친구에게서 듣게 되는 “더러운 하녀 주제에!”와 같은 종류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클레오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소피아에게 털어놓는다. 남편으로부터 버려진 자신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아니 버려진 여자들이라는 연대감으로, 소피아는 클레오의 출산 준비를 돕는다. 하지만 아기 침대를 사러 간 클레오가 우연히 마주친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를 살해하는 남자친구 페르민의 총구 앞에 서게 되고, 이 충격은 클레오가 배 속의 아이를 사산하는 원인이 된다.

병원에서 돌아온 클레오는 아이들과 떠나는 소피아의 여행에 동행한다. 소피아의 남편에게 자신의 물건을 찾아갈 기회를 주기 위한 여행이다. 휴양지의 해변에서 아이들이 파도에 휩싸였을 때, 클레오는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익사 직전의 아이들을 구해낸다. 뒤늦게 돌아온 소피아와 아이들, 클레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클레오는 자신은 사산한 아이를 원하지 않았었다고 고백한다. 배 속의 아이를 잃은 대신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을 구한 후, 항상 따로 서 있던 클레오는 마침내 소피아의 가족과 하나가 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클레오가 자신의 일터 옥상으로 올라갈 때, 카메라는 클레오를 따라가다 멈추고, 영화는 멀리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영화 도입부의 비행기와는 다르게, 나는 이 장면에서 소피아의 아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을 떠올렸다.

수영을 못하는 클레오가 파도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죽음의 공포와 파도의 일렁임과 익사 직전 아이들의 절망이 느껴지는 해변 장면은 시각예술인 영화의 최대치를 경험하게 한다. 나는 <로마>를 보고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공감되지는 않았다. <그래비티>(2013)가 아닌 <로마> 같은 종류의 영화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잘 만든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의문조차 들었다. 나에게 <로마>는 클레오의 인디오 외모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것이 나의 어떤 감수성을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로마>를 만든 것이 클레오의 아이가 아니라, 소피아의 아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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