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백작부인>
2019-02-19
글 : 김송희 (자유기고가)
사진 : 최성열
<백작부인>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 김경원 옮김 / 문학동네 펴냄

<백작부인>은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장편소설이다. 작가 스스로도 ‘쓰고 싶은 대로 써내려 갔다’고 설명할 만큼 이 소설에는 영화적 장치가 가득하다. 영화광인 고등학생 지로와 정체불명의 중년 여성 백작부인이 주인공이고, 영화를 사랑하는 주인공의 특성 덕에 아주 다양한 고전영화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또한, 따로 영화 제목이 언급되지 않더라도 특정 영화를 떠오르게 만드는 장면들 역시 여러번 등장한다. 소설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중 기이하게 밝은 에너지가 충만했던 일본이다. 백작부인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요염한 중년 여성이고, 지로라는 어린 남성을 성의 세계로 인도한다.

고급 창부, 전쟁 스파이, 첩의 소생…. 백작부인이라는 명칭 외에는 어떤 설명도 없는 이 여성을 둘러싼 추문은 다양하고 그녀는 이 추문을 이용해 남성을 자신의 뜻대로 주도한다. 성행위와 성기를 지칭하는 다양한 단어들이 쉴 새 없이 출현하고,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지로의 꿈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사건들이 이어지며 소설은 탐미적인 에로티시즘과 자극적 언어 사이를 오간다. 성행위를 가장해 외국인 장교에게 접근해 복수하고, 지로를 비롯한 여러 남성의 남근은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여성으로 인해 짓이겨져 불능이 되기도 한다. 백작부인은 노골적인 바기나 덴타타의 은유이지만 과연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독자마다 해석이 다를 수도 있겠다. 친절한 설명이나 기승전결의 구성, 등장인물의 심리를 정확히 그리는 것은 싫다고 밝힌 작가의 주장대로 해석은 읽는 이의 몫이다. 제29회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했으며 수상 후 하스미 시게히코는 “여든 먹은 사람에게 이런 상을 주는 것이 일본 문화에 한탄스러운 일”이라고 냉소했다.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

“이 배우가 재미있는 건, 틀림없는 가짜가 어느새 진짜 이상으로 진짜답게 보이게 되는 역할에 꼭 어울리기 때문인데, 영화란 게 어차피 진짜보다 진짜답게 보이는 가짜의 매력을 가졌잖니. 그야말로 20세기에 걸맞게 정말이지 수상쩍은 발명품이라고 해야 할 거야. 정식으로 발명된 건 19세기 말이지만.”(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