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서 편하게 읽기만 할 때에는 몰랐다. 작가들이 픽션을 쓸 때에는 이야기에 구조부터 만든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소설이란 하나의 튼튼한 건축물이고(물론 부실공사된 소설도 있지만), 그 건축물은 구조를 만들기부터 시작해 점차 살을 붙여나가 완성된다. 그러니 건축물에 설계도가 있듯이 소설에 지도가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나의 오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다 말이 길어졌다. 솔직히 <소설&지도>를 소설의 구조를 지도로 그린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소설&지도>는 이야기의 구조보다는 진짜 소설 속 공간의 지도를 그림으로 표현한 책이었다. 물론 그 역시 재미있는 시도이고 지도와 그림으로 문학을 만나는 것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월리를 찾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월리 찾기에 매번 실패했지만 다행히 <소설&지도>에서는 길을 잃지 않고 수월하게 성의 미로(<햄릿>)에서 해방구를 찾았으며, 섬의 지도(<로빈슨 크루소>)를 보고 모험을 떠날 수 있었다. 인상적인 지도는 <오만과 편견>의 사랑의 행로다.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게임에서 규칙에 따라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도가 가문과 가문 사이의 지도로 표현되었다. 소설 속 공간을 지도로 표현한 책이지만 사실 ‘이야기 구조를 지도로 그렸다’는 나의 오해는 틀리지 않았다. 소설이 작가가 완성한 우주라면 소설 속 관계와 공간, 인물의 감정선을 그린 지도는 그 우주의 조감도다. <오디세이아> <바벨의 도서관>이 어떻게 지도로 구현되었는지,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지도가 궁금하지 않은가.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러스트를 삽입한 책은 많지만 지도로 그린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독창적이며 소설의 지도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오만과 편견
작품의 유명한 첫 문장이 밝히듯, 부는 지위이며 지위는 연애에 필수이다. 이는 단지 비유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와 지위가 연애와 관련 있는 한, 소설 속 인물들은 낭만적 관계를 추구하면서도 항상 지위를 가늠한다.(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