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주목할 만한 시나리오작가⑤] 유영아 작가 - 감정의 통장에서 꺼내 쓴 이야기들
2019-03-20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7번방의 선물> <82년생 김지영> 유영아 작가

“‘글뫼’는 ‘글의 산 혹은 숲’이라는 의미다. 목사인 오빠가 지어줬다.” 인터뷰차 상암동에 위치한 유영아 작가의 작업실 ‘글뫼’를 찾았다. 남편인 정윤홍 대표가 운영하고 유 작가가 대표 작가로 있는 글뫼는 얼마 전 새 단장을 끝낸 상태여서 그런지 무척 환하고 깨끗했다. 거실에 모여서 한창 작업 중이던 후배 작가들의 모습도 밝아 보였다. 유 작가는 컬러풀한 벽지로 도배한 벽을 가리키며 “만날 백지만 보니 이렇게 컬러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인테리어의 취지를 들려줬다. 동료 작가들의 사랑방으로 알려진 이곳에선 매주 1회 스터디도 열린다. 지난해엔 얼마간 에런 소킨을 탐구했다가 최근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강독 중이다. 유 작가는 그사이 <82년생 김지영> (제작 봄바람영화사, 감독 김도영) 각본 작업을 마쳤고, 오랜만에 방송가에 복귀한 드라마 <남자친구>는 tvN에서 방송 2회 만에 시청률 10%대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데뷔작 <웨딩드레스> , 1천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7번방의 선물>, 따뜻한 브러더 코미디의 귀환을 알린 <형>까지 유영아 작가의 필모그래피에선 어둡고 ‘센’ 영화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작가의 타고난 성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최근 ‘나는 어떤 작가인가’ 하고 자문한 적이 있는데 보고 나서 기분 좋은 영화,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싶더라.”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웃음과 눈물의 포인트를 솎아내는 시선이, 그럼에도 지나친 비극을 자제하려는 작가 특유의 희망적 태도가 특징이다. “신파를 의도한 적은 없는데 내가 쓴 대본을 보면서 많이들 우신다. ‘유 작가 이야기는 다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서 울고 있다’라는 반응도 있었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웃음)” 이렇게 사람들의 눈물샘을 건드리는 유영아 작가의 필모그래피는 대표적으로 가족 중심의 이야기로 집약된다. <웨딩드레스>는 모성애를, <7번방의 선물>은 부성애를, <형>은 형제애를 다뤘다. 유 작가는 “가족극은 진부하고 식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본질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많이 소구되었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각도, 어떤 깊이로 들여다보느냐의 문제”라고 정리한다.

가족이라는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화두는 한편으로 유영아 작가의 실제 삶과도 얽혀 있다. 자기 경험을 활용한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일 텐데 유 작가는 “감정의 통장”을 언급했다. “삶에서 겪은 엄청난 기쁨, 슬픔, 분노 등을 잘 묵혀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자는 거다.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고 전체 이야기의 로그라인 정도로 풀릴 수도 있다. 단, 무르익지 않았을 때 섣불리 꺼내면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엄마(송윤아)가 어린 딸(김향기)과 남은 시간을 보내는 <웨딩드레스>는 유영아 작가의 첫 번째 결혼 생활이 막을 내렸을 때, 딸과 둘이서 어렵게 생활하던 날들의 고민에서 출발한 반자전적 이야기다. 그는 작가 데뷔를 준비하던 당시,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이력을 살려 낮에는 학습지 강사로 일하고 저녁에 딸을 재운 뒤 다시 24시간 카페에 가서 새벽까지 글을 썼다. “문득 이렇게 살면 빨리 죽을 것 같고, 내가 죽으면 우리 딸은 어쩌나 싶었다. 근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내가 이미 울고 있는 거다. (웃음)” 배우 송윤아의 노개런티 출연으로 영화화된 <웨딩드레스> 현장에선 동갑내기였던 배우 김향기와 유 작가의 딸이 금세 친해졌다. 작가는 얼마 전 김향기 배우가 주연한 <증인>(2018)의 시사회에서 두 사람이 재회한 사실도 들려줬다. 한편 15년 만에 만난 형제의 좌충우돌기를 그린 <형> 역시 자신의 가족사의 굴곡을 바라보며 성씨가 다른 형제들에 대한 고맙고 애틋한 마음을 녹여낸 작품이다.

<7번방의 기적>이 일군 뜻밖의 성공 이후 갑자기 슬럼프도 찾아왔다. “당시 제작상황이 힘들었던 탓에 굉장히 적은 돈을 받고 일을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 이후로 고료가 가장 많이 올랐다.” 그러면서 작가는 “좋은 점이 고료가 올라간 것이라면, 나쁜 점은 나를 믿게 된 것”이라고 회상했다. 2013년 무렵, 드라마 <예쁜 남자>를 기점으로 스스로 매너리즘을 감지하면서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나 자신이 오만해졌고 작가적 생명력이 끝났다는 생각에 빠져 약 3개월간 칩거했다.”

찬찬히 훑어보니 이제는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 만한 시점인 듯도 하다. 마침 그는 <휴가>라는 신작을 준비 중이다. 마흔 중반을 맞이한 유 작가가 스스로 자기 나이 때 어머니의 삶을 반추하면서 써내려갔다. <러브 픽션>(2011),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암수살인>(2018)의 신영일 프로듀서와 함께 이번엔 처음으로 제작에도 참여한다. 최근 그는 둘째 아이도 출산했는데, 이 경험이 “<82년생 김지영>을 만난 시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내가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갑자기 경력단절의 조바심이 찾아오더라. 출산 후에도 혼자 글을 쓰러 집 밖에 나오면 죄책감이 들었고. 문득 내가 이 사회의 차별과 모순을 겪는 여성 지영이와 비슷한 상태구나 깨달았다.” 소설 원작자인 조남주 작가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밝힌 유 작가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문제의식은 가져가되, 함께 영화를 보는 부모님과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공감과 이해도 끌어내야 한다고 봤다. 그들에게 죄책감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여성, 청춘,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응원하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머니볼>

●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시나리오_ “<코리아> <노브레싱> <국가대표2>까지 어쩌다 보니 스포츠물을 꾸준히 해왔다. 흔히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 않나.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끌리는 것 같다. 특히 <머니볼>(2011)과 <제리 맥과이어>(1996)를 좋아한다. 한국영화 중에선 <퍼펙트 게임>(2011)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 프로야구 에이전트 제도가 합법화된 이후로 이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준비한 지도 꽤 됐다.”

● 시나리오 작업할 때 습관이나 챙기는 물건_ “직접 만든 스토리보드. 색도화지에 신별 내용을 알아보기 쉽게 정리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다. 영화 작업을 할 때는 벽에 포스트잇을 붙이기도 하지만 (호흡이 긴) 드라마 집필엔 이쪽이 더 편하다.”

● 필모그래피 2018 드라마 <남자친구> 각본 2017 <너의 결혼식> 각색(공동) 2016 <형> 각본 2016 <사랑하기 때문에> 각색(공동) 2016 <국가대표2> 각본(공동) 2016 <딴따라> 각본 2015 <좋아해줘> 각본 2014 <상의원> 각색(공동) 2013 <캐치미> 각색 2012 <열한시> 각색(공동) 2013 드라마 <예쁜 남자> 2013 <톱스타> 각색(공동) 2013 <노브레싱> 각본(공동) 2012 <스파이> 각색(공동) 2012 <파파로티> 각본 2012 <7번방의 선물> 각색 2012 <타워> 각색(공동) 2012 <코리아> 각본(공동) 2011 <오직 그대만> 각색(공동) 2010 <친정엄마> 각색(공동) 2009 <웨딩드레스> 각본 2008 <1724 기방난동사건> 각색(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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