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기생충> 조여정 - 완전한 충족감
2019-05-21
글 : 김현수
사진 : 백종헌

<워킹걸>(2014)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배우 조여정이 <기생충>에서 맡은 연교라는 캐릭터는 순수해서 남편을 잘 믿고 또 그에 발맞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인물이다. 아이를 향한 맹목적인 교육열을 불태우는 여느 평범한 엄마의 마음을 지닌,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잘나가는 기업 CEO의 교양 넘치는 아내. 물론 이 정도 정보만으로는 그녀가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현재 JTBC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그녀에게 분명히 달라도 뭔가 확연히 다를 거라 예측되는 이번 역할의 분위기를 캐물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어땠는지 궁금하다.

=시나리오가 정식으로 나오기 직전에 감독님과 가볍게 미팅을 했다. 만나자마자 “두 아이의 엄마인데 괜찮겠냐”고 물으시기에 정말 그걸 물어보려고 만나자고 한 거냐고 내가 오히려 반문했다. “저야 당연히 아무 상관이 없죠. 실제로 제 또래 사람들이 학부모인데”라고 답했다. 배려 차원에서 질문해주시니 좋았다. 이후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연교는 내가 여태껏 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캐릭터였다. 시나리오 자체가 흥미진진한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제작발표회 당시 처음 공개했던 제작기 영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봉준호 감독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저쪽인지 이쪽인지 어느 입장에서든 한번쯤은 해봤을 법한 생각,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가졌던 생각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로 하는 생각들, 이런 모습이 나온다.

-연교는 어떤 성격과 배경을 지닌 인물인가.

=연교는 어릴 때 아이를 가져서 사회경험이 전혀 없고, 또 어떤 경제적인 고민도 해보지 않은 채로 두 아이의 교육과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올인하는 여자다. 남편의 성공에 발맞춰서 그에 맞는 자격을 갖춘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예를 들면, 연교의 첫 등장은 영어책을 공부하다 엎어놓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문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함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본인만 자기가 순진한지 모르는, 자기만족이 높은 여자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연교가 영어를 구사한다고.

=그게 바로 연교가 가진 재미 포인트다. (웃음) 연교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유학을 가지 못한 갈증이 있는 것 같다.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지적허영심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집에 과외 선생들이 찾아오면 자기도 모르게 한 단어라도 영어를 쓰는 귀여운 심리를 지닌 인물이다.

-제작보고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원래 <기생충>의 제목이 <데칼코마니>였다고 하더라. 알고 있었나.

=나도 그날 처음 들었다. 두 가족의 닮은 점이 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제목이었다. 감독님의 답변 중에 “악인이 없다는 것”에 대한 문제가 흥미로웠는데 영화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담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최선은 뭘까. 판단은 물론 관객이 하는 것이다.

-봉테일이란 별명을 지닌 봉준호 감독의 현장에 참여하는 데 대해 기대도 있었을 것 같다. 실제로 촬영을 해보니 어떻던가.

=뭔가를 기대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실전에 뛰어든 선수니까. 하루하루가 전쟁터였다. 내가 정말 충분히 준비를 한 걸까, 아니면 현장의 수많은 변수에 대응할 수 있을까, 내가 충분히 고민한 걸까 등등. 모든 배우들이 늘 똑같이 하는 고민을 안고 갈 뿐이었다. 감독님이 촬영을 거듭하는 동안 더 촘촘하고 구체적으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요구하실 때는 솔직히 배우로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배우인데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면서 말이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상류층 사모님을 자주 연기하는 듯 보인다.

=이제 내 나이가…. (웃음) 나는 28살 무렵부터 이미 두 아이의 엄마를 연기했던 터라 어려움이 전혀 없다. 나의 결혼 유무와는 별개로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연기할 수 있을지가 우선 고민이다.

-<기생충>을 마무리하면서 다른 영화를 작업할 때와는 다르다고 느꼈던 점이 있다면.

=보통 촬영을 마무리하면 내가 가진 것을 엄청 쏟아낸 뒤라 좀 쉬고 싶어진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야 또 채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연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아무 데도 가고 싶지가 않더라. 그래서 계속 고민해봤다. 이게 무슨 심리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일방적으로 나를 소모시키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연기가 아쉬울 때도 많았지만 내가 꽉 채워진 느낌이라 행복감을 느꼈다. 배우 하면서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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