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의 두만이 시대의 공기를 담는다면, <기생충>의 기택은 이 시대의 환경을 담는다.” 인터뷰 내내 송강호는 ‘환경’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조건, 그것이 환경이라면 <기생충>은 부자를 부자로 만들고, 빈자를 빈자일 수밖에 없게 하는 한국 사회 속 서로의 욕망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기묘한 동선을 이야기하는 영화로 짐작된다. 송강호는 <기생충>에서 가족 전체가 백수인 집안의 가장 기택을 연기한다. 살아남기 위해 어떤 환경에든 적응할 수 있는 “연체동물”의 유연함을 배운 기택은 봉준호 감독이 생각하는 ‘지금, 여기’의 환경을 표상하는 인물일 것이다. 동시대의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으로 돌아온 송강호를 만났다.
-<기생충>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살인의 추억>(2003)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나 구성이 비슷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영화다. <살인의 추억>이 떠오른 건, 봉준호 감독이 그 작품 이후 16년 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환경에 대해서 집요하게 탐구했기 때문인 것 같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살인의 추억>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지금, 여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참여한 건 당신도 마찬가지다. <마약왕> <택시운전사> <밀정> <변호인> 등 최근 몇년간 시대극에 주로 출연해왔다.
=좋은 질문이다. 시대극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기생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을 얘기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외적으로 두 가족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주는 자존감과 상실감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흥미도 있지만 영화적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거다.
-극중 가족 전체가 백수인 집안의 가장 기택을 연기한다. 기택을 ‘연체동물 같다’고 묘사했는데.
=기택은 무기력한 현대인의 모습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지만, 그런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사람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경의 지배를 받는 기택을 보며 이런 환경에도 흡수되고 저런 환경에도 흡수되는,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연체동물이 생각났다.
-가족으로 출연하는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아내로 출연하는 장혜진씨는 <밀양>에서, 딸로 나오는 (박)소담이는 <사도>에서 짧게 만났다. 아들 역의 (최)우식이만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건데, 영화를 보면 느끼시겠지만 팀워크가 좋았다. 같이 찍는 장면도 많았고. 기본적으로 이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능력과 인성이 훌륭했다.
-<마약왕> <택시운전사> <밀정> <변호인> 등 오랫동안 타이틀롤을 맡았다. <기생충>은 가족간의 앙상블이 중요한 영화이다보니 어깨의 짐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이전까지는 혼자서 작품을 힘들게 이끌어왔다. 보람도 있었지만 그에 수반되는 책임감과 피로감 때문에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기생충>은 봉준호라는 거장이 그 짐을 함께 나눠 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현장에 오면 핑퐁처럼 서로 예술적 자극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기분이다. 봉준호 감독, 그리고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짐을 나눠 지니 한결 가볍고 홀가분하고, 신나기도 했다. 즐거운 자극이 됐다.
-봉준호 감독은 “내가 어렵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배우”라고 당신을 설명하더라. 이번 영화에서 그런 시도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
=이 영화는 시대의 공기를 어떤 특정한 대사나 상황보다 배우들의 눈빛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특별히 기능적인 요소가 필요했다기보다는, 연체동물처럼 어떻게 이 영화를 흡수하고 전달할 것인지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차기작은 <나랏말싸미>다.
=7월 24일 개봉예정이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다룬 영화다. 지금까지 봐왔던 사극과 호흡, 진중함이 사뭇 다를 거다.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있어서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진정성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