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기생충> 장혜진 - 산뜻한 카리스마
2019-05-21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이렇게 큰 배역을 연기한 것, 포스터에 이름이 올라간 것, 화보를 촬영한 것 모두 다 처음이라 얼떨떨하다.” 겸손과 달리, 배우 장혜진은 베테랑이다. 연극무대와 여러 영화의 조·단역을 거쳐 최근 <우리들>(2015), <어른도감>(2017)과 같은 일련의 한국 독립영화에서 중년의 초상을 견고하고 생활감 넘치게 그려낸 그녀다. 올해 세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에서 장혜진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이, 그리고 멀리 뛰어올랐다. 가난한 가장 기택(송강호)의 부인인 충숙(장혜진)은 해머던지기 선수였던 이력과는 한참 동떨어진 뜨개질과 피자 박스 납품을 통해 가족의 최소 생계를 유지 중이다. 적어도 끼니는 굶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득바득 소일거리를 찾아나서는 여자, 충숙은 전원 백수 가족의 마지막 안전핀 같은 존재다.

-<기생충>의 1, 2차 예고편 모두 충숙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핸드폰도 다 끊기고… 와이파이도 다 끊기고…”라는 한마디로 기택과 충숙 가족의 어려움이 확연히 감지된다.

=충숙은 해머던지기 전국체전 메달리스트 출신이지만 감독님 말씀에 의하면 금메달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최고가 은메달 정도? (웃음) 전성기 시절에 한번쯤은 금메달을 따고 싶은 단꿈도 가졌을 인물이라는 감독님의 힌트도 있었다. 잘 살고 싶어서 기택과 결혼했지만, 살다보니 돈도 없고 가족이 전원 백수가 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꺼번에 모든 걸 잃었다면 견딜 수 없었겠지만 조금씩 나빠져서 지금의 상황에 빠진 거다. 뜨개질을 하고 피자 박스 납품을 하는 등 소일거리를 끌어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화나 와이파이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충숙은 여러모로 너무나 절실한 사람이다.

-기택과의 관계는 어떤 톤으로 그려지나. 서로 티격태격하는 코믹한 지점들이 예상된다.

=충숙은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간다. 말로 쏘아붙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발로 툭 차는 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본능적이다. 그런 점들이 기택과의 관계에서도 재밌게 표현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는 삶의 퍽퍽함 같은 게 바탕에 있다. 아무리 어렵다지만 그들이라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박자가 어긋나면 코미디가 되고 치밀해지면 비극이 되는 상황이다. 정말 가난한 가족이기 때문에 감정이 과해지면 자칫 신파가 될 수도 있는데 감독님이 절묘하게 완급 조절을 하면서 연기를 여러 방향으로 이끌어가주셨다.

-배우 6명의 앙상블, 잘 쓰인 대사의 묘미도 기대되는 영화다. 처음 캐스팅 제의는 어떻게 받았나.

=가족 여행 중에 감독님의 전화를 받았다. 사실은 17년 전 즈음, <살인의 추억>(2003) 때도 한번 연락을 받은 적 있었다. 당시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로 졸업하고 나서 고향에 내려간 상태였고, 연기를 쉬고 싶었기에 제안도 거절했다. 그 오래전 얘길 듣고 깜짝 놀란 감독님이 당장 다음주에 만나자고 하시더라. 약속 장소인 카페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감독님이 내게 다가와서 바로 이 자리에서 <기생충> 시나리오를 썼다며 재밌어했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 수다만 떨다가 충숙 역을 제안받았다. 살을 아주 많이 찌우면 좋겠다는 주문과 함께. (웃음)

-학교 동기인 이선균 배우와 작품을 통해 조우하게 된 경우이기도 한데, <기생충>은 여러모로 벅찬 경험이었겠다.

=배우로서 나 개인에게는 무척 행복한 기회였기 때문에 어느 순간 <기생충>의 충숙도 조금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폐 끼치지 말자는 생각에 충숙 캐릭터를 어려워할 때, “너를 못 믿으면 너를 선택한 나를 못믿는 것”이라고 다독여준 감독님의 말에 힘을 얻었다. 그러자 충숙과 내가 실은 많이 닮아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그동안 내가 나를 잘 몰랐었구나 싶었달까. 이제 와 생각하면 현장을 즐기지 못한 것도 아쉽다. 너무 자신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좀더 즐겁게 깔깔거리고 놀았으면 좋았을걸.

-이번 표지 촬영현장에서 아들 기우(최우식), 딸 기정(박소담)과 실제로도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두 배우를 만났을 때 내가 먼저 부탁했다. 나이도 많고, 데뷔도 오래전에 했지만 실은 경력이 당신들보다 그렇게 많지도 않고 카메라도 잘 모른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그렇게 식당 앞에서 셋이 끌어안고 같이 잘하자고 그랬다. 신기하게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많은 말 없이도 서로 잘 맞았다. 정말 묘하다.

-이동은 감독의 신작 <니나 내나>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엄마의 편지를 받고 삼남매가 여행길에 오르는 로드무비다.

=11월에 개봉한다. 삼남매의 첫째 미정을 연기했는데, 충숙과는 완전 반대다. (웃음) 이동은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밝고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 같고, 미정은 그냥 나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나와 정말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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