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감독 켄 로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가 자신의 은퇴작이 될 거라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하지만 그가 이 작품을 완성한 뒤 전세계적으로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불평등과 착취적인 노동환경은 자본주의사회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온 이 거장 감독에게 또 다른 영화적 영감을 제공한 것 같다. 택배회사에서 임시 계약직으로 일하는 남자와 그 가족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명하는 <소리 위 미스드 유>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긱 경제(필요에 따라 사람을 구해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형태의 경제 방식)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불행으로 몰아넣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개인의 문제가 집단의 문제로 확장되는 과정을 조명한 켄 로치와 그의 오랜 협업자 폴 래버티의 시나리오는 정서적인 면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보다 더 강력한 파장을 가지고 있다.
-<소리 위 미스드 유>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켄 로치_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찍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다가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급하는 자선 푸드 뱅크에 갔다. 거기서 파트타임 노동자들, 계약직 노동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왜 가족을 먹여살릴 만큼의 여유가 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나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푸드 뱅크를 취재하다보니 ‘일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 래버티_ 이 영화에서 중요했던 건 새로운 방식의 고용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계약직 노동자들은 자신이 소유한 차로 직접 택배를 배달하지만 자유롭고 효율적이기보다 거의 전투적으로 업무에 임한다. 그들에게 택배를 나르는 차는 거의 감옥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휴일에도 택배를 날라야 하고, 택배 상황을 끊임없이 체크해야 한다. <소리 위 미스드 유>를 취재하며 들은 이야기 중에는, 당뇨병 환자였는데 업무를 대체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 크리스마스 전날 엄청난 양의 택배를 나르고, 결국 이듬해 1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사연도 있다. 그처럼 긱 경제(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해 일자리를 만드는 고용 형태.-편집자)는 사람을 착취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보는가. 긱 경제를 통제하지 못한 정부인가 아니면 노동자를 착취하는 탐욕스러운 기업인가.
켄 로치_ 나는 문제가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에 의해 경제가 운영된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비즈니스적으로 경쟁을 해나갈 것이다. 더 싸게, 더 효율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것이다. 특히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비용 말이다. 한 기업이 그러기 시작한다면 다른 기업도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경쟁의 본질이다. 이를 타개할 유일한 해결책은 국영기업에 운송 시스템을 맡기는 거다. 문제는 시스템 안에 있다.
-이 작품을 준비하며 어떤 접근방식을 취했나.
켄 로치_ 굉장히 심플하고, 경제적인 촬영을 지향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 영화가 다루고 있는 상황 자체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폴 래버티의 시나리오와 더불어 이 영화에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적합한 배우를 찾는 것이었다. 완전히 역할에 몰입해 진짜 가족처럼 보일 수 있는 배우들을 찾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 맞는 사람을 찾기만 하면 영화를 만들기는 쉽다. 그저 이야기와 인물을 따라가면 되니까.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운송업체를 찍는 장면에서 진짜 택배기사들이 출연한다. 그들은 운송업에 종사했거나, 지금 현재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택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들에게 전달되는지, 이 업계의 룰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섭외하면 일은 수월해진다.
폴 래버티_ 시나리오 집필 과정에서 중요했던 건 주인공 리키 가족의 특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모든 가족은 그들 나름의 특징이 있다. 이 특성이 현실적으로 보이되 영화의 드라마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부부 관계, 아빠와 딸, 그리고 엄마와 아들. 각각의 가족 구성원과 그들 각자가 맺고 있는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주력했다. 특히 중요했던 건 극이 전개될수록 리키의 변화가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영화가 시작할 무렵만 하더라도 그는 운송업을 시작하면서 조금만 고생하면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는 희망을 가진 긍정주의자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점점 자신이 틀렸다는 패배감에 젖어들어간다. 리키의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캐슬은 감독이 촬영지로 선호하는 장소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뉴캐슬에서 촬영했다. 이 도시에 어떤 매력을 느끼나.
켄 로치_ 영국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이곳은 고유한 개성을 지닌 장소다. 다른 도시와 떨어져 있으며, 사회적 투쟁의 역사가 길다. 이곳은 원래 광산업과 조선업의 도시였는데 이 두 가지 유형의 산업이 급격하게 쇠퇴했고 다시 회복되지 못하며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우 상처받기 쉬운 상태다. 뉴캐슬을 영화의 배경으로 정한 까닭은 외부로부터 고립된 이 도시가 사회구조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에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정서적으로 매우 강력한 엔딩 장면을 가지고 있다.
폴 래버티_ 감독님과 처음부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얘기했다. 가장 중요했던 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리키라는 인물을 몰아가는 것이었다.
켄 로치_ 그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를 멈출 수 없게 하는 이 광기의 시스템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람을 14시간 동안 차 속에 가둬두고 거의 녹다운 상태로 몰아가는 이 시스템은, 우리가 직접 물건을 거래하는 것보다 정말로 더 나은가? 사람을 이런 압박 속에 놓아두는 업무 환경을 원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장은 우리의 삶의 질에 관심이 없다. 그저 돈을 버는 데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