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72회 칸국제영화제③] <기생충> 봉준호 감독 - 나는 이상한 장르영화를 만드는 사람
2019-05-29
글 : 김현수

봉준호 감독은 지난 5월 22일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열린 <기생충> 공식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장르영화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장르영화를 만드는데 규칙을 잘 따르지 않고 규칙의 틈바구니에 사회 현실 문제를 담아낸다”면서 결국 “기이하고 변태적인 스토리도 배우들의 필터를 거치면 사실적인 영화가 된다”며 영화를 완성시킨 모든 공을 배우에게 돌리기도 했다. 제7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기생충>을 월드 프리미어로 관람한 대부분의 관객이 인종과 국가를 뛰어넘어 자신들이 처한 현실 사회의 문제를 꼬집어내는 보편성에 놀랐을 거라 확신한다. 봉준호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과 한국 기자단과의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 중 최대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기생충>이 뿜어내는 이상하고 매력적인 에너지를 추측해볼 수 있는 질문과 답변을 모았다.

-<기생충>은 빈부 격차가 심한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즉, 계급투쟁에 관한 영화다. 그래서 해외에서도 칸 경쟁부문에 진출한 다른 한국영화들인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 등과 묶어 한국영화의 최근 경향으로 보는 것 같다. 뤼미에르 극장에서의 첫 상영 당시 모두가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기생충>이 감독의 전작보다 더 국지적인 소재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되레 보편성을 획득한 면도 있는 것 같다.

=첫 상영이 끝나고 영국의 어떤 프로듀서가 다가와서는 <기생충>을 영국에서 리메이크하면 좋을 것 같다고, 영국적인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는 말을 했다. 또 어떤 이탈리아 부부는 지금 이탈리아의 상황을 보여준다고도 말했다. 그런 반응을 들으면서 다들 비슷하게 느끼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일말의 희망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실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노래를 한곡 삽입했는데 다들 박수치느라 상영관 불을 켜고 사운드를 꺼버려서 당황했다. 나중에 개봉하면 꼭 다시 확인해달라. 내가 가사를 직접 쓰고 정재일 음악감독이 작곡, 최우식군이 직접 노래한 <소주 한잔>이란 곡이다. 마냥 낙관적인 건 아닌데 분위기나 가사가 묘한 느낌이 있다. 저작권협회에 등록하면 작사가인 내게 저작료가 들어온다는데 나중에 노래방 가면 많이 불러달라. (웃음)

-영화가 굉장히 불균질한 리듬을 갖고 있다. 영화에서 리드미컬하게 편집을 전환하는 연출을 선호하는 것인가.

=한편의 영화 안에서 장르가 뒤바뀌기도 하는데 이를 미리 설계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평소에 많이 받는다. 시나리오 쓸 때나 스토리보드 쓸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바텐더가 칵테일을 섞을 때 배율을 정확하게 하듯이 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벌어지는 상황의 뉘앙스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관객은 장르적 구분에 익숙해 있다. 무서운 장면을 찍어보겠다고 호러 장르를 의식하고 그러지 않는다.

-초기 단편 <지리멸렬>(1994)부터 최근작 <옥자>(2017)까지, 이 영화에는 전작들을 두루 환기시킬 만한 요소들이 많이 담겨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계산하고 만든 건지.

=의도한 것은 전혀 없다. 평소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짜고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늘 좋아하던 배우들과 찍다보니 내 느낌대로 영화가 나온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내가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할 것 같다.

-이야기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생경한 소재들이 눈에 밟힌다. 이를테면 산수경석(공식 포스터에서 최우식 배우가 들고 있는 돌. 이 돌의 정체가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편집자)이나 모스부호, 인디언의 이미지 같은 것들은 어떤 의도로 쓰이게 됐나.

=그런 소재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젊은 세대에 산수경석은 결코 친근한 것이 아니다. 인디언도 그렇지만 산수경석은 이미 죽어있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사실은 죽어 있는 돌인데 자연에 있는 상태에서 꺼내어 진열장에 놓아두는 것이지 않나. 인디언이란 존재도 그렇고. 이러한 것들을 젊은 세대가 다룰 때의 이상한 느낌이 있다.

-극중 충숙(장혜진)은 과거 투포환 던지기 선수였다. 이러한 설정을 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었나.

=정확히는 투포환이 아니라 해머 던지기 선수다. 육상경기의 일종이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완력이 강한 여인,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남편 기택이 체력적으로도 쩔쩔맬 법한 상대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설정이다.

-최근 칸영화제에 초청된 다른 한국 감독들의 영화를 비롯해 2000년대 이후 한국 장르영화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듯하다. <기생충> 역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다루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가 장르적으로 눈부신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장르영화의 발전과 동시에,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의 장르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서 발전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가운데 그 열린 틈을 통해 정치적인 문제, 인간적인 고뇌, 한국인의 삶과 역사가 섞여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장르영화에서 사회적인 묘사가 없는 게 더 낯설게 느껴진다. 1930~40년대 클래식한 장르 규칙을 만들어낸 미국 장르영화의 역사와는 다른 한국영화만의 역사인 것 같다.

-장르영화 안에서 한국만의 색깔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한국의 장르영화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나.

=나 또한 수많은 한국 감독 중 한명이기 때문에 어떤 보편적인 색깔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경우는 분열적인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즉 장르 자체가 갖고 있는 시네마틱한 흥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 따르고 싶지만 그 규칙을 깨부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충돌한다. 그 이후 벌어지는 상황이 내 영화인 것 같다.

-<설국열차>(2013)가 계층구조를 수평의 이미지로 펼쳐놓은 영화였다면 <기생충>은 유사한 주제의식을 수직적으로 펼쳐놓은 것 같다.

=영화 대부분이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중 절반 이상은 부잣집에서 벌어진다. 2층부터 지하실까지 각 공간을 계단이 연결하고 있다. 스탭끼리는 이 영화를 ‘계단 시네마’라 부르기도 했다. (웃음) 조감독들과 각자 제일 좋아하는 계단 장면 하나씩 뽑아오기 같은 놀이도 하곤 했다. 역시 계단 하면 김기영 감독님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작품인 <충녀>(1972)나 <하녀>(1960)를 다시 보면서 김기영 감독님의 계단의 기운을 받으려고 했다. 사실 전세계 영화 역사에서 수직적인 공간을 계급이나 계층을 나타내는 도구로 쓴 경우는 많았다. 대신 우리 영화의 특이한 점은 한국에만 있는 반지하의 미묘한 뉘앙스를 담았다는 점이다. 이번에 자막 작업을 하면서 프랑스어나 영어에 한국말 반지하에 부합하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화제 자막에서는 ‘semi basement’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분명히 지하인데 지상이라고 믿고 싶어지는 공간 말이다. 곰팡이도 피고 눅눅한 공간이지만 또 햇빛이 드는 순간이 있는 공간. 영화가 햇살이 드는 순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서 더 힘들어지면 영화 속 누군가처럼 완전히 지하로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그런 것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 묘한 반지하만의 뉘앙스는 서구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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