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생충> 비평⑤] 프랑스 현지 개봉 반응
2019-06-20
글 : 김나희 (클래식음악평론가)
"<기생충>이라는 걸작”
프랑스 현지 개봉 2종 포스터. 오른쪽 포스터 귓속말 내용은 “스포일러하면 나, 너 죽인다!”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수상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카날플뤼스>에서 진행하는 칸영화제 폐막을 겸한 시상식 라이브에서, 진행자가 레드카펫에서부터 참석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 잡혔다. 턱시도를 입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를 알아본 그들이 레드카펫 위에서 잠시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기생충>이 얼마나 엄청난 영화였는지, 거의 모든 게스트들의 입장이 끝나자 그들은 한참 동안 이번 칸에서 가장 인상 깊은 영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프랑스 개봉일인 6월 5일이 얼마 안 남았죠. 무조건 극장으로 달려 가야 해요. 이런 영화를 만난다는 건 영화만 보는 우리한테도 흔치 않아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면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좋았다고 한 작품이 못 받을 때가 더 많았어요. <기생충>을 좋아한다는 걸 너무 티내지 말아야죠. 중립적으로 말해야지. (웃음)” “맞아요. 설레발이 될 수도 있어요. 이제 조용히 하고 말을 안 해야 <기생충>이 큰 상을 탈 확률이 높아져요.”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라이브를 진행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진심 어린 애정이 묻어났다. <기생충>의 수상을 바라며 영화에 대한 코멘트와 찬사까지 아끼던 이들은 <카날플뤼스>뿐만이 아니었다.

지하 거주공간을 읽는 또 다른 시선

<기생충>은 봉준호가 선보일 수 있는 세계가 이제 그 밀도와 완성도에서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완벽에 가까운 영화를 만나는 체험은 얼마나 경이로운지 프랑스 언론에서 쏟아내는 찬사들은 그저 눈부시다. 칸영화제 폐막 직후, 프랑스 언론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영화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먼저 전무후무한 역대급 평점으로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프랑스 공영방송 라디오 PD들은 서로 입을 모아 영화에 극찬을 쏟아내며 이번에도 황금종려상이 제대로 수여되지 않는다면 칸영화제는 자멸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는 거라며 지난 몇년간의 불만족스러웠던 수상 결과에 대한 우려를 표출하기도 했다. 개봉 후 알로시네(프랑스의 IMDb 같은 사이트) 기준, 35개 매체 평균 4.7점(만점 5점), 일반 관객 평점은 4.5점을 유지하고 있으며, 프랑스 첫주 관객수 역시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 퀼튀르>의 표현대로 “<기생충>이 <펄프 픽션>(1994) 이후 아주 오랜만에 우리를 찾아온,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황금종려상 수상작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중”이다. 현지 배급사 ‘더 조커스’에 따르면, 첫주(6월 5~9일) 관객수는 25만9천여명으로 <엑스맨: 다크 피닉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등 비슷한 시기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맞붙어서도 밀리지 않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래비티>(2013)와 동시에 개봉하는 정면대결로 파리 일대 상영관을 만석으로 만들었던 전작 <설국열차>(2013)의 종전 기록(첫주 23만5천여명) 역시 깨졌다. <카날플뤼스>는 9분 남짓한 토론 코너를 통해 패널들과 함께 <기생충>에 대한 토론을 나누는 방송을 내보냈다. (스포일러의 제약 탓이겠지만) 오프닝 시퀀스 카메라의 움직임을 좇으며 반지하방에서 다시 한번 아래로 향하는 시선을 따라가던 패널들은 각자 영화가 표현하고자 한 사회적 계층에 따른 수직적 구조에 대한 해석을 이야기했다. 프랑스에는 건축법상 지하를 창고로만 사용할 수 있을 뿐, 한국과 같이 반지하에 거주할 수 없다. 대신 지하라는 공간이 환기시키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의 이미지는 좀더 폭넓게 변주된다. 수십년 전 나치 독일 점령기에 지하실로 숨어들어야만 했던 유대인들, 수년 전부터 밀려드는 난민들이 몸을 숨기는 공간을 쉽게 떠올린 패널들은 봉준호의 이 신작이 현대사회가 지닌 폭력성을 믿을 수 없는 희극적 분위기와 유머를 통해 풀어낸 지점을 가장 높이 샀다. “뉴스나 언론에서 ‘빈곤’을 다루는 건 잠시뿐, 구체적인 실체 없이 경각심을 주지 못한 채 흘러가버린다. <기생충>은 그 빈곤에 처한 가족들,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미디어와 광고 등 넘쳐나는 이미지들이 지워버린 진짜 불편한 풍경과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는 한 패널의 이야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큐나 르포타주가 아닌 극영화임에도 감독의 시선이 왜곡도, 과장도, 장식도 없이 투명하게 머무르며 균형감을 갖췄다는 점, 동시에 극영화가 가져야 할 미장센적 완성도와 압도적인 몰입도 역시 지금까지 그 어떤 시네아스트도 이뤄내지 못한 성취로 평가했다. <기생충>은 풍경화처럼 펼쳐진 두 가족의 대칭적인 풍경 덕분에 언뜻 가족영화 혹은 코미디영화, 블랙코미디영화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놀라운 유연성으로 장르를 변주하면서 그에 머무르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그것이 가상의 세계임을 알면서도, 감독의 손끝에서 밀도 높은 완벽한 만듦새로 창조된 그 가상의 창조물이 결국 더 통렬한 진실을 우리에게 가져온다는 점에서 모두가 입을 모아 <기생충>에 경탄을 표했다. TV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에는 흥분과 고양된 정서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영화가 제7의 예술로 추앙받고 숭배되는 것은 종종 우리가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 <프랑스 컬처>의 앙투안 귀요 PD는 봉준호의 오랜 팬으로서 “너무 오래 기다렸다. 이 황금종려상은 그에게 너무나도 마땅히 주어져야 했던 무엇”이라며 그의 방송 전체를 봉준호라는 시네아스트에게 바치는 헌사로 가득 채웠다. <아르테TV>의 시네마섹션 디렉터인 올리비에 페르는 봉준호를 처음 발견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했던 2006년을 회상했다. “<살인의 추억>(2003)을 보자마자 나는 봉준호가 스티븐 스필버그나 마틴 스코시즈처럼 우리가 오랫동안 추앙하며 기억할 이름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당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던 감독주간에 그의 <괴물>(2006)을 초청했다. 경쟁과 비경쟁에 그가 가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지만 아무도 아시아에서 그렇게 빼어난 괴수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기대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봉준호의 진가를 아직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13년 전, 감독주간에서 처음으로 <괴물>을 상영할 때부터 나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봉준호는 놀라운 영화를 들고 와 우리를 상상하지 못했던 지점으로 데려간다. 당시에도 <괴물> 상영이 끝나자마자 그가 팔을 높이 올려 주먹을 쥐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일찌감치 그의 진가를 알아본 나와 내 주변 프랑스 평론가들은 수줍음 많고 겸손한 성품의 그의 제스처를 우리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가 그렇게나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한방 먹이는 것 같아 통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도 수상이 확정되는 순간 그가 똑같은 포즈를 취하는 걸 보고 그때가 생각났다. 내가 감히 봉준호를 가장 먼저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13년 전 처음 칸에 온 그의 여정이 한 챕터가 끝나고 다른 차원을 향해 또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에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만장일치로, 위대한 작품을 모두가 인정했으니 이제 우리 평론가들뿐 아니라 세상 모두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영화는 이제 겨우 7편이 나왔지만, 그에 대한 헌사를 제대로 바치려면 몇 페이지로는 부족하고 아마도 한권의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에 대한 애정과 탁월함

2년 전 <옥자>(2017)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칸영화제를 찾았던 다리우스 콘지 감독 역시 <씨네21>을 통해 가졌던 인터뷰(1114호, 프랑스 현지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 단독 인터뷰)를 기억하며 축하 멘트를 전해왔다. “황금종려상이 만장일치로 주어졌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행복하고 기뻤다. 봉준호와 <기생충>과 관련된 사람들뿐 아니라 이런 황금종려상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큰 축복과도 같다. 만장일치로 주어진 이 상 덕분에 그 누구의 이견도, 편견도, 논란도 없이 오래 기억될 걸작이 영화를 사랑하는 장애물 없이 모두에게 한결 더 쉽게 다가설 것이다. 봉준호와 함께한 사람으로서, 나는 누구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그의 훌륭함과 탁월함을 잘 알고 있어서 더욱 감격스럽다. 작품을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그 애정과 탁월함이 수면의 파장처럼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듯, 이 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것이다. 영화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봉준호를, 오로지 영화만을 사랑하며 지난 20년간 매번 우리를 경이로움으로 이끌어온 그의 모든 역량이 깃들어 있음을 말이다. 그의 영화들만으로 가능한 황홀한 영화적 경험을 생각하면 수상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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