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③] ‘정일성 회고전’ 정일성 촬영감독 - 영화의 격조는 촬영이 만든다
2019-10-16
글 : 김현수
사진 : 김종훈 (객원기자)

올해 부산영화제가 준비한 한국영화 회고전인 ‘정일성 회고전’은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의 해라 더욱 의미가 있는 행사다. <화녀>(1971)에서부터 <본투킬>(1996)에 이르기까지 그가 촬영을 맡은 총 7편의 작품이 선정됐다. 1950년대 영화계에 데뷔해 60여년 넘는 세월을 카메라 옆에 서서 무려 38명의 감독들과 작업했던 ‘정일성 촬영 영화’ 중 재발견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영화들이다. 회고전을 소개하는 기자회견에서, 어느덧 아흔살 나이의 정일성 촬영감독은 거의 한 시간 동안 인생 강의를 펼칠 정도로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선정된 영화들이 너무 오래되어 “당시 기억도 더듬을 겸 극장에서 관객과 영화를 다시 보겠다”며 관객과의 만남의 시간을 기꺼이 반겼다.

-회고전에 소개된 7편의 리스트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선정이란 것이 의도치 않게 손해보는 경우도, 덕 보는 경우도 있지 않나. 세상 사는 이치와 비슷하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까. 지난 역사, 정치, 경제 상황 등을 되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을 고른 것 같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와 장현수 감독의 <본투킬>을 제외하면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 유현목 감독의 <사람의 아들>(1980),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김수용 감독의 <만추>(1981),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1986) 모두 1980년대에 작업한 영화들이 선정됐다.

=1970~80년대는 시대가 어두웠지 않나. 프로그래머들은 그럼에도 이런 영화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한 흥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왕성하게 작업하던 시기였다.

-이제는 필름에서 디지털카메라 작업으로 영화 촬영 현장이 바뀐 지 오래됐다.

=영화 촬영장 자체는 예술이 아니다. 필름 현상이란 화학작용을 통해 영화는 또 다른 버전으로, 즉 비전이 바뀌기도 하고 녹음이나 후반작업 과정을 통해 비로소 예술이 완성이 되는 것이지. 나는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다. 촬영감독은 광학을 통해서 영화예술을 디자인한다. 여러 기술적인 문제를 감독에게 끊임없이 제공함으로써 감독의 이미지가 더 진화하고 놀라울 정도의 색채를 발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필름만이 영화의 정수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앞으로 디지털이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지 나도 궁금하다. 불과 몇년 사이에 전국의 모든 촬영 현장이 디지털화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누군가가 ‘다시 영화를 한다면 필름으로 찍겠냐, 디지털로 찍겠냐’고 굳이 물으면 무언가를 참고 기다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필름 현장을 택할 거라고 답하련다.

-앞서 기자회견장에서 김기영 감독의 <화녀>를 ‘색채의 저항이 담긴 영화’,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를 ‘수묵화 같은 느낌의 영화’라고 표현했다. 두 감독이 각각 지향했던 시대의 공기에 따른 차이를 빛으로 표현하려 한 것인가.

=1970년대의 어둠과 1980년대의 어둠이 달랐다. 나는 어쩌면 당시 젊은이들처럼 행동으로 저항하지 못한 비겁한 세대일지 모른다. 그저 소설가가 문학으로, 화가가 그림으로 그 시대를 표현하듯, 나는 촬영으로 그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1970년대는 저항하는 색채로서 억압의 시대를 조롱하고 싶었고 1980년대에는 그러한 저항이 반복되면서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려 했다. 관객이 공간을 읽고 색을 읽어주길 바라며 질문을 던졌던 영화들이다.

-제자들에게 들려준 말 중 “풀숏은 촬영감독의 것”이라 강조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들었다.

=풀숏은 전체 신의 압축이다. 모든 조명과 설계를 통해 관객에게 선입견을 주는 첫인상을 안겨줄 수 있기에 풀숏은 중요하다. 그럼 내 작업 중 가장 좋아하는 풀숏이 있느냐고? 사실 앵글보다는 감독의 해석과 내가 생각한 해석을 일치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실패할 때도 있고 감독의 이미지가 성공할 때도 있지 않나. 영화 제작에 엄청난 재료와 물량이 필요한데 물량은 못 주더라도 재료는 던져줘야지. 물론 광학적인 촬영과 화학적인 현상을 통해 생생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뒤 이 재료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촬영에 있어서는 원칙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적인 촬영의 미학, 나아가 영화의 격조에 대해서 누차 언급했는데 미학적인 접근 차이에 따라 원칙도 달라지는 것인지, 그 촬영 개념과 방식이 궁금하다.

=영화의 격조는 촬영감독이 만든다. 나는 항상 있는 그대로의 리얼리즘 촬영을 추구했지만 그 안에서 꿈이 없으면 한낱 기록영화로 전락해버린다. 그것이 지금껏 고수했던 나만의 원칙이다. 모더니즘 촬영이란, 영화에 포즈(pause)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연속된 긴장 속에서 사실주의만을 좇다보면 영화가 재미없어진다. 예를 들어 촬영 도중 모든 스탭과 배우가 완벽하게 연기를 했다 치자. 그런데 내가 카메라를 건드렸다면? 이럴 때 촬영감독이 한발 양보할 수 있는 것이 포즈다. 내가 늘 완벽한 앵글을 잡아낸다고들 생각하는데 이미지적으로 완벽했다고 해서 관객도 그것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앵글을 약간 흐트러뜨리기도 했다. 다른 촬영감독들에게 저 정도는 나도 촬영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기도 했다. 또 스피디한 촬영 앞에는 반드시 슬로가 있어야 하고, 엄청나게 재미있는 대사가 쏟아지기 전에는 재미없는 액션이 있어야 한다. 김기영 감독 영화에는 굉장히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코믹한 대사와 행동이 꼭 매치된다. 이런 언밸런스한 매치를 통해 공포를 더 공포스럽게 몰아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감독 중에서 모더니즘을 끝까지 추구한 감독 중 하나가 바로 김기영이다.

-다시 한번 현장에 서고 싶지 않은가.

=나는 한국전쟁 종전 소식을 일본에서 들었다. 그때 일본에서 미군이 민주주의 교육을 한답시고 <오케스트라의 소녀>(1937), <퀴리부인>(1943) 같은 영화들을 보여줬는데 문화 충격을 받았다. 민주주의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리고 영화라는 예술로 표현할 수 있구나.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영화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젊은 감독 누군가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불러주면 언제든 현장에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은 영화인들에게 알려달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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