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히 환호하는 팬들에게 열렬히 화답하는 배우를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으로 할리우드의 가장 주목받는 젊은 배우가 된 티모시 샬라메가 <더 킹: 헨리 5세>로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데이비드 미쇼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더 킹: 헨리 5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왕실 밖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할(티모시 샬라메)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잉글랜드의 왕 헨리 5세로 즉위하고, 나라의 분열과 혼돈 속에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더 킹: 헨리 5세>의 데이비드 미쇼 감독은 <애니멀 킹덤>(2010), <더 로버>(2014), <워 머신>(2017) 등을 만든 호주 출신 감독이며 배우 조엘 에저턴과 함께 이번 영화의 각본을 썼다. ‘젊은 왕’으로서 권력의 무게를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어 티모시 샬라메만 한 배우는 없었다는 감독과 “헨리 5세는 여러모로 도전적인 캐릭터였다”는 티모시 샬라메를 직접 만났다.
-두 사람 모두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10월7일에는 공식 일정이 없었는데 뭘 하며 보냈나.
=티모시 샬라메_근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절에도 가고, 한국식 바비큐 식당에도 가고, 정말정말 예쁜 찻집에도 갔다. 다음에 부산에 오면 친구와 가족을 데리고 그 찻집에 가고 싶다. (웃음)
-<더 킹: 헨리 5세>의 티켓이 예매 시작 1분21초 만에 매진됐다. 야외 상영 전 레드카펫 행사에서 티모시 샬라메를 보려고 많은 팬들이 새벽부터 극장 입구에 줄 서 있기도 했다.
티모시 샬라메_감사드린다. 아직 영화라는 예술이 살아 있고 사랑받는 것 같아 감사함을 느낀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설레고 기쁜 마음이 컸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황금기는 지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곳 부산에 와서 아직까지 영화가 사랑받는 예술의 한 형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관객, 특히 젊은 사람들이 영화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두눈으로 보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데이비드 미쇼_조금은 겁이 난다. 낯선 나라에서 나의 새로운 영화가 새로운 관객을 만난다는 게 두렵다. 그런데 부산영화제에서 <더 킹: 헨리 5세>의 티켓이 무척 빨리 매진됐다는 얘기를 듣고는 흥분됐다. 무려 4천석의 야외극장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부산의 열정적인 관객이 곧 이 영화를 보게 될 텐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어딜 가나 주목받는 티모시 샬라메 같은 스타와 함께 다니면 어떤가.
데이비드 미쇼_이 모든 게 나도 신기하다. 이 영화를 만들던 초창기에는 티모시가 이제 막 유명해지기 시작하던 때라 런던에서 같이 길을 걸으면 한두명 정도가 티모시를 알아봤다. 그런데 이번에 부산에 왔을 때 공항에 모인 팬들을 보고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더 킹: 헨리 5세>의 각본을 조엘 에저턴과 함께 썼는데, 왜 지금 다시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를 이야기하려 했나.
데이비드 미쇼_좋은 이야기는 시대와 무관하게 언제든 다시 회자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조엘과의 작업 때문이었다. 우리는 예전부터 좋은 친구 사이였는데, <애니멀 킹덤> 이후에는 제대로 같이 작업한 적이 없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더 킹: 헨리 5세>는 권력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런 주제로 조엘과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게 좋았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이야기의 전체 방향을 정했고, 그다음 각자 세부 이야기를 썼다. 시드니에서, LA에서, 인도네시아 해변에서. 각자가 쓴 이야기를 교환한 다음 합치고 고쳐 쓰는 과정이 있었다.
-<더 킹: 헨리 5세>의 캐스팅 제의를 처음 들었을 때 어땠나.
티모시 샬라메_가장 맡음직한 역할이 가장 나를 두렵게 만드는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캐스팅 제의를 받고 굉장히 설 렜 다. 이건 누가 봐도 도전적인 캐릭터였으니까. 프로듀서 디디 가드너와 제레미 클라이너는 전작 <뷰티풀 보이>(2018)에서도 함께했는데,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역할로 다시 만나게 되어 좋았다. 데이비드 미쇼 감독과의 작업에 대한 기대도 컸다. 감독님 영화 <애니멀 킹덤>도 좋아하고, 그의 영화의 톤을 좋아한다. 다만 두려웠던건 헨리 5세가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는 거다. 영국식 억양을 익혀야 했고, 신체적으로도 훈련이 필요했고,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 요구됐고, 촬영을 위해 영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조엘 에저턴이나 벤 멘델슨과 같은 대배우와 작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렜다. 조엘 에저턴, 데이비드 미쇼, 애덤 아카포 촬영감독이 모두 호주 출신인데, 미국 배우인 내가 호흡이 아주 잘 맞는 호주 서커스단에 합류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웃음)
-역사 속 실존 인물 헨리 5세는 키가 크고 전투에 능한 장수의 이미지가 있다. 어떤 점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이 역할에 적임자라 생각했나.
데이비드 미쇼_그는 매우 젊은 왕이다. 25살에 왕위에 올라 헨리 5세가 되었다. 젊은 남자가 갑자기 엄청난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게 된다. 내겐 이 점이 흥미로웠다. 티모시를 캐스팅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티모시는 젊은 배우고 영혼이 충만하고 감정이 풍부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자유롭던 소년에서 권력을 지닌 남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기에 티모시만 한 배우가 없었다.
-헨리 5세가 아쟁쿠르 전투 직전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연설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티모시 샬라메_배우로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실제로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른 내용을 말한다는 거였다. 또 헨리 5세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중요한 연설이지만, 헨리 5세가 충분히 그 말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전쟁을 해야 하고, 전투라는 목전에 서 있지만, 왕으로서 확신이 서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 연설은 나라의 명예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힘을 내서 싸울 수 있게 격려하는 동시에 헨리 5세가 지도자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두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 앞에서, 일상에서가 아니라 목숨을 바쳐야 하는 전투 직전의 순간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을 수도 있고 그것이 명예로운 죽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왕으로서 말하는 것이다. 당시엔 나라의 통치를 위해 애국주의, 국수주의가 중요하게 동원됐고, 이 장면 또한 그것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한다.
데이비드 미쇼_미리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준비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많은 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모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현장에서의 내 일은 단지 레벨을 맞추는 거였다. 더 키우거나 줄이거나, 더 크게 하거나 작게 하거나, 더 부드럽게 하거나 거칠게 하거나. 그것을 잘 조절하는 게 내 일이었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2019),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편까지 기대 중인 작품이 많은데, 각자의 차기작 계획을 말해달라.
티모시 샬라메_그레타 거윅은 <레이디 버드>(2018)에서도 함께한 좋아하는 감독이자 배우다. 크리스마스에 개봉할 <작은 아씨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대단한 배우들, 메릴 스트립, 밥 오덴커크, 크리스 쿠퍼, 루이 가렐 같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흥분됐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속편 또한 잘 진행중이다. 나 역시 엘리오를 다시 연기할 수 있어 기쁘다.
데이비드 미쇼_아직은 차기작 계획이 없다.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른 채 기회를 열어두고 있는 상황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