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프렌즈> 그 초강력 ‘프렌드십’의 비밀 [3] - 한국제작진 인터뷰
2002-05-03
글 : 황선우
어딘가 모자란 인물들, 그게 <프렌즈>의 매력이다.

감칠맛 있는 우리말 번역은 마니아들 사이에 회자되는 <프렌즈>의 또 한 가지 매력이다. 각각 6부부터의 한글 자막 연출과 3, 4부를 제외한 모든 시즌의 번역을 맡고 있는 동아TV 정현석 PD와 프리랜서 박찬혜 작가가 한국 방송의 숨은 공신들. 71년, 70년생으로 극중 <프렌즈> 주인공들과 또래이기도 한 이들로부터 제작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동아TV는 ‘여성채널’로 출발해 지금은 패션전문채널이 되었다. 영화채널이나 엔터테인먼트 방송사가 아닌데 시트콤을 수입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정현석: 케이블 첫 출범 때는 채널 이름을 알리고 시선을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는데, 그야말로 ‘운좋게’ <프렌즈>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동아TV에서 시청률 1, 2위를 다투며 간판 프로로 자리잡았다.

-5월 초 8부 방영을 앞두고 있다. 95년 첫 한국 방영 이후로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은데.

=정현석: 워너브러더스로부터 테이프를 들여와 자막 연출하고 타이틀 제작하는 일을 한다. 미국에서 9∼10월에 시즌이 시작되고 현지 방영이 끝나면 한국판은 5월경 시작된다. 시즌마다 방영 날짜에 촉박하게 원본이 도착하기 때문에 ‘007작전’ 하듯 한국판을 만든다.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항공우편으로 도착한 테이프를 방송사로 급히 공수하고, 퀵서비스로 번역 보내고, 이메일로 대본 받고… 정신없다.

=박찬혜: 나 자신이 <프렌즈>의 팬이기도 하다. 늘 마감에 쫓기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에피소드마다 ‘뒤로 넘어가며’ 번역한다.

-마니아들이 워낙 많다. 방송이 한번 나가고 나면 여러 가지 단소리 쓴소리들을 전해들을 것 같은데.

=정현석: 좋은 소리는 한번도 못 듣는다. 광팬들이 많아서 예고편이나 타이틀에서 글씨가 배우들 얼굴이라도 조금 가리면 항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작진에 대한 피드백뿐만 아니라 시청자들 서로의 의견 교류도 동아TV 인터넷 사이트에 있는 <프렌즈> 커뮤니티 등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박찬혜 작가 번역 스타일이 우리말로 부드럽게 돌려서 의역하는 스타일인데, 그것에 딴죽 거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개인적으로는 박찬혜 작가가 한국 최고라고 생각한다. (웃음)

=박찬혜: 아유, 번역에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주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게 나름이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가슴이 울렁대서 인터넷 게시판 같은 걸 잘 못 본다. 아무 말이 없는 게 고마울 때가 많다.

-박찬혜 작가의 의역에 감탄하는 팬들이 아주 많다.

=박찬혜: 이전에 번역했던 이나 다른 영화, TV시리즈에 비하면 영어가 특별히 어렵지는 않고 전문용어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의 미국 문화를 그대로 담은 단어, 표현들이 많아 까다롭다. 유행하는 인명, 지명, 제품명 등등은 한 단어, 한줄을 붙들고 다섯시간씩 물고늘어지기도 한다. 등장인물 대사 중에서는 챈들러가 구사하는 썰렁한 농담들에 영어 발음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가장 어렵다. 최근 기억나는 것으로는 수표의 ‘체크’(check)와 체코(Czecho)의 ‘체크’ 발음을 이용해서 “수표(체크)를 왜 유고(Yugo)라고 안 불러?” 하는 농담이 있었다. 고심하다가 우리말의 ‘수’, ‘암’ 접두어를 이용, “왜 수표는 수표라고 하지? 암표가 아니라?” 이렇게 옮겼다. 잘난 척하는 성격의 로스는 친구들의 철자나 어법을 종종 물고늘어지는데, 역시 번역이 힘들다.

-<프렌즈>의 설정과 비슷한 한국 시트콤들이 많이 양산되었는데.

=정현석: <남자셋 여자셋> <세 친구> <연인들> 등 많은 시트콤에서 <프렌즈>의 아이디어를 따간 것으로 알고 있다. <프렌즈>가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많이 부합한다고는 하지만, 한국 문화와 맞지 않는 점도 많아서 설정을 빌려간 부분이 어색하기도 했다. 오히려 <순풍 산부인과> 등 가족을 무대로 한 시트콤들이 신선한 한국식 코미디를 개척했다고 본다.

-<프렌즈>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정현석: 대본을 정말 잘 쓰고, 연기도 잘한다. 그것 이상 없다.

=박찬혜: 캐릭터들이 사실감 있고 개성이 뚜렷하다. 여섯 친구들 모두 주변에 하나둘씩 있을 수 있는 성격이며, 완벽하게 예쁘고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장단점, 빈 구석이 있다. 성격의 결함이 너무 빤하게 드러나는데, 그 모자람에 팬들은 공감하고 정을 느낀다. 어떤 캐릭터 한 사람에게만 인기가 몰리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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