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프렌즈> 그 초강력 ‘프렌드십’의 비밀 [1]
2002-05-03
글 : 김혜리
웃기는 녀석들이 돌아온다!

카페인과 농담, 어리석은 연애에 구제불능으로 중독된 뉴욕의 여섯 친구들이 돌아온다. 케이블 채널 ‘동아TV’(스카이라이프 채널 713)는 현재 미국 에서 목요일 밤마다 방영되는 시트콤 <프렌즈>의 8부를 5월6일부터 방영한다. 8년 동안 갠 날도 궂은 날도 있었지만 폭넓은 대중적 인기와 컬트적 추종을 놓치지 않으며 시트콤의 새로운 장을 연 <프렌즈>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질리지 않는 6중주를 분석한다.


아아, 저 소파에서 뒹굴고 싶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커피 가게 ‘센트럴 퍼크’ 한복판의 길고 둥근 안락의자는, 시트콤 <프렌즈>에 매료된 사람들에게 신화 속 어느 낙원 못지않은 푹신한 이상향이다. 혈연, 동창, 이웃 관계로 얽혀 단짝이 된 여섯명의 20대 백인 뉴요커들이 스크럼을 짜고 진짜 어른의 삶에 들어선다는 단출한 컨셉트의 시트콤 <프렌즈>는 1994년 가을 파일럿 프로그램이 첫 전파를 탄 이래, 평균 2400만명을 웃도는 시청자(미국)들을 텔레비전 앞 소파에 붙들어매고 무명 출연진을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에 진출시키고 주제가를 빌보드 상위권에 밀어올리는가 하면 각종 잡지 표지부터 요리책(<프렌즈와 함께 요리를!>)에 이르는 출판물과 인터넷 사이트, 머그 컵과 티셔츠 가슴팍을 뒤덮으며 미디어 현상, 대중문화 신드롬으로 파장을 넓혔다.

<달라스>류의 끈적한 연속극으로부터 <트윈 픽스> <사인펠드> <프렌즈> <프레지어> <앨리의 사랑 만들기> <섹스 앤 시티> 같은 옹골찬 작품들이 바통을 이어받은 1990년대는 미국의 TV에서 미국영화의 1970년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시대였다. TV를 이유식 삼아 성장하고 영화학교에서 훈련된 인력이 브라운관에 진출해 예술영화에서나 보던 판타지, 블랙 유머,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신을 마구 풀어놓은 이 산란한 황금시대의 열매 중, <프렌즈>는 대중적 영향력과 장르적 완성도, 재미와 정서적인 파워면에서 왕관의 보석이라 부르기에 거리낌이 없다.

“저건 딱 나야”

패거리를 지어 어울려 다니는 젊은이들이 몇몇 아지트를 중심으로 쇼를 끌어가는 <메리 타일러 무어 쇼> <서티섬싱> <치어즈> 같은 미국 TV 코미디의 계보를 잇는 <프렌즈>는 데이비드 크레인, 마르타 카우프만 등 스스로 맨해튼 커피숍에서 죽치는 일이 주요 일과였던 작가들의 펜 끝에서 태어났다. 크레인과 카우프만은 실제로 주변에서 보는 인물 같은 캐릭터로 채워진 시리즈를 원했다. 그들이 만난 X세대는 그런지 유행이 광고하듯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실존적 자문자답으로 소일하는 게으름뱅이들이 아니라 고교 졸업 이후 물심양면으로 자기자신을 부양하고 인생의 낙을 찾기 위해 애쓰는 활기찬 사람들이었고 <프렌즈> 여섯 친구의 유전자는 그렇게 프로그램됐다. 작가들이 열망한 최고의 찬사는 “저건 딱 나야. 저건 딱 내 여자친구야” 같은 반응이었다. 1994년 <프렌즈>를 선보인 파일럿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캐릭터 스케치에 매진했다.

친구들의 응접실 안주인 노릇을 자처하는 모니카는 인생의 카오스를 정돈하려는 가망없는 노력을 결벽증과 정리벽으로 표현하는 아가씨다. 요리사인 그녀는 오빠인 로스에 비해 부모의 사랑을 덜 받은 탓인지 맛있는 음식으로 타인의 애정을 구한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공룡과 화석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 로스는 쿨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모범생 고문관 기질을 어쩔 수 없는 남자. 고교 시절부터 동생의 예쁜 친구 레이첼을 짝사랑한 그는 뒤늦게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전처 사이에 아들 벤이 있다.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신부의 모습으로 <프렌즈> 첫회에 뛰어든 레이첼은 부유한 집안 응석받이 공주의 안전한 삶에서 뛰쳐나와 웨이트리스로 독립의 걸음마를 내딛는다. 쇼핑광에 울보라는 점은 여전하지만. 모니카의 전 룸메이트인 채식주의자 피비는 말도 안 되는 노래를 짓는 싱어송 라이터이자 안마사로 영기를 느끼는 능력도 있다. 다른 별에서 온 듯한 엉뚱한 사고방식과 어휘의 소유자로 모든 상황을 생각지도 못한 각도에서 해석하는 촌철살인이 특기다. 모니카와 레이첼의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로스의 대학동창 챈들러는 조크의 귀재. 날카롭다 못해 스스로를 벨 듯한 그의 조크는 알고보면 불안과 부적응과 수줍음을 가리는 방어기제다. 챈들러의 룸메이트 조이는 잘 풀리지 않는 배우. 상식 결핍증이 심해 누군가 ‘유니섹스’라는 단어를 쓰면 “You need sex”로 알아듣고 “나 며칠 전에 섹스 했어”라고 말할 지경이지만, 섹시한 여자와 샌드위치에 대한 그의 순진한 집착은 경지를 넘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공룡에 대한 로스의 몹시 지루한 수다를 듣고 있는 친구들의 오후 한때를 보여주는 한 에피소드의 오프닝은 <프렌즈>의 선명한 캐릭터 디스플레이 전략을 잘 예증한다. 로스의 강의를 듣는 척하는 다섯 사람의 속마음이 보이스 오버로 깔린다. 모니카 : ‘또 지겨운 공룡 얘기야, 언제나 바닥날까!’ 레이첼: ‘저 진지함, 너무 사랑스러워’ 챈들러: ‘슈퍼맨과 투명인간을 합친 게 나라면 근사할 텐데.’ 조이: ‘디띠리리 띠리띠리 띠리(‘아기 코끼리 걸음마’의 콧노래).’ 피비 : ‘누가 노래를 부르고 있지?’

말이 앙상블이지 제일 잘생기고 매력있는 주인공 주변을 괴짜 캐릭터들이 공전하는 구도에 안착하는 여느 TV 시리즈들과 달리 <프렌즈>는 정육각형의 앙상블을 제공한다. <트래시 컬처>의 저자 리처드 켈러 사이먼이 <‘프렌즈’에 관한 헛소동>에서 지적했듯, 캐릭터끼리의 대비와 보완의 밸런스가 셰익스피어의 로맨틱 코미디 <헛소동>에 비견되는 <프렌즈>의 여섯 남녀는 완벽한 ‘식스팩’이다. 모니카의 거실에 여섯명이 다 모여 있는데 누군가 문을 노크하자 매우 당황하며 자기들의 머릿수를 세어보는 장면이나 영국 태생 에밀리와의 결혼으로 로스가 동아리에서 떨어져나갈지 모른다는 예고가 불러일으킨 패닉은 극중 인물과 시청자 모두 여섯의 공존과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얼마나 자연스런 정상상태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엿보게 한다.

사진제공 동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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