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걷는 소년>은 청년의 현실을 고민하던 <내가 사는 세상>(2018)의 최창환 감독, 배우 곽민규의 두번째 협업이다. 인력 사무소에서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 일을 하며 살아가는 김수(곽민규)는 이주노동자 2세로 사회의 차별에 노출된 청소년이다. 폭력을 행사했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사회봉사명령형으로 해안가를 청소하던 중 알게 된 서핑 세계. 제주의 푸른 바다와 파도를 가르는 서핑은 그에게 ‘정상적인’ 사회로 진입하게 해줄 도구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서핑보드 위에서 수가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냉혹하지만, 영화는 작은 희망도 잃지 않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받은 작품으로, 경기 인디시네마 배급지원작으로 선정됐다.
-이번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최창환_원안은 ‘파도 타는’ 부분이 빠진 완전 ‘돌깡패’ 이야기였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사회로부터 차별받는 16, 17살 아이들이 주먹질밖에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겪는 혼란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지금의 <파도를 걷는 소년>의 전사 같은 이야기다. 그러다 제작사(컬쳐플랫폼)에서 영화 제안을 받았다. 감독님 마음대로 만들되 ‘서핑’, ‘청춘’ 두 가지 키워드는 꼭 넣어달라 해서 지금의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이주노동자 2세인 수를 비롯해 차별받는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영화 전면에 부각했다.
최창환_지금 제주는 이주민 문제가 심각하다. 뉴스를 보는데 이주민 2세들은 지표상에 잡히지도 않는다. 1세들은 존재하지만 2세들은 차별이 두려워 자신이 2세임을 드러내지 않는다. 노동력은 물론 결혼할 신부까지 수입하는 나라, 학교 밖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이주노동자 2세들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이 사회가 언제까지 간과할 수만은 없다고 봤다.
-이주노동자 2세로 거칠게 살다 서핑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주인공 김수 캐릭터는 아픔을 반항으로 풀어내는 소년이다. 전작에 이은 협업인데, 캐스팅 과정도 궁금하다.
최창환_처음엔 실제 거리에서 지내는 청소년들을 찾아 리얼함을 살리려고 했는데 연기를 할 수 있는 친구 찾기가 쉽지 않더라. (곽)민규는 캐스팅 담당 조감독이었는데, 후보군을 모두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로 골라 오더라. (웃음) 캐스팅에 고전하고 있을 때 조감독이, “감독님 민규는 어떻습니까” 하니 민규가 바로 “잘할 수 있습니다” 했다. (웃음)
-이주노동자 2세가 처한 심리적 방황과 더불어 서핑으로 균형점을 찾아가는 캐릭터라 준비할 부분들이 많은 역할이었다.
=곽민규_김수 역을 구상하면서 친한 조선족 친구들을 많이 생각했다. 그 친구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점점 자각이 생긴 것 같다. 감독님에게 레퍼런스가 될 만한 캐릭터를 여쭤봤는데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2009) 속 주인공 말리크(타하르 라힘)를 알려주시더라. 인종, 계급이라는 차별 속에 성장기를 거치는 그를 보면서, 거친 가운데 설움과 억울함이 뒤섞인 수의 감정상태에 대해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감독님이 수는 오히려 서핑을 잘 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기본기만 익혔다.
-김수가 부러진 보드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다보면 안타까움과 희망이 동시에 그려진다.
최창환_서핑이 워낙 트렌드라 많이들 한다. 그런데 내가 제주에 살면서 서퍼라는 이름으로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육지에서 가졌던 직업을 다 내려놓고 오로지 파도를 타기 위해 온 사람들,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었다. 수는 이곳이 고향인데, 그런 것들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거기 들어가지 못하는 데 대한 일종의 반감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러다 서퍼인 똥꼬(민동호)와 해나(김해나)를 만나면서 그런 부러움이 뻥 하고 터진 게 아닐까 싶다.
-전작 <내가 사는 세상>의 대구에서 제주로 주거지를 옮기면서 변화도 읽힌다. 갑갑한 도시 생활에서 탈출구가 없던 청년들보다는 한층 밝아졌다.
최창환_제주에 있으면서 생각한 것들이 많이 반영됐다. 도시에 살고 있었다면 더 음울하고 음침한 이야기가 되었을 텐데, 넓은 공간에서 구상하다보니 흑백이 컬러가 되고, 배경도 더 밝아졌다. 자연이, 제주가 주는 힘 같다.
-경기 인디시네마 배급지원작으로 선정됐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던가.
최창환_독립영화로서는 배급지원이라는 것 자체가 개봉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두편이나 개봉하게 된 것도 지원의 힘이고, 작품을 하는 데 엄청나게 큰 힘이 된다. 특히 경기콘텐츠진흥원은 다른 기관의 지원제도와 달리 홍보·배급사가 하는 역할까지 해주니 너무 좋다. 오늘 이렇게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하면서 작품을 알릴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웃음)
-한국영화계의 다양성 발전을 위해 제안을 해준다면.
곽민규_너무 트렌드만 따라가지 않고 다양한 시선을 가졌으면 한다. 비슷한 기획이 계속 만들어지면 그 안에서 곪는 부분이 생긴다. 다양한 기획을 통해 배우로서도 다양한 배역을 만났으면 한다. 관객으로서도 그런 작품을 만났을 때 행복하다.
최창환_민규 말처럼 자꾸 트렌드를 좇는 분위기가 되는 것은 창작자들의 저수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어제 제주에서 가수 김일두 공연을 보고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꾸 주위에서 ‘직업을 가지라’고 한다더라. 그는 노래 부르는 게 직업인데. 나도 영화 찍는게 직업인데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한국의 지원제도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데, 작품 지원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기본 삶에 대한 지원도 병행해서 이루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