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⑥] 은영 역 공민정 - 내향은 김지영 외향은 김은영
2019-11-13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엉망진창으로 대답한 것 같아 보충 조금 했어요^^” 자신의 인터뷰를 복기하다 미흡하다 느꼈는지 공민정 배우는 길고 긴 문자를 정성스레 보내왔다. 인터뷰 다음날이 파리한국영화제 참석차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비행기 이륙 전까지 진심어린 답변을 전하기 위한 문자 발송은 계속됐다. 알뜰살뜰한 마음과 진지한 듯 웃음 많은 모습, 할 말은 전하고 마는 모습이 과연 <82년생 김지영>의 은영과도 상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밉지 않게 바른말을 하고 티 나지 않게 가족들을 챙기는 삼남매의 첫째 은영. 오디션 과정에서부터 공민정은 김은영이 되고 싶었다. “감독님이 은영 말고 다른 역할도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내 대답은 주저할 것도 없이 ‘저는 은영이 하고 싶어요!’였다.” 공민정 배우는 김도영 감독의 감수성과 눈물에 대해 이야기하다, 자신의 오디션 도중 감독이 주섬주섬 휴지를 찾아 눈물을 훔쳤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마음까지 모자라 눈물까지 훔쳤던 공민정 배우의 오디션을 김도영 감독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배우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민정 배우가 오디션 때 너무너무 잘했다.”

지영만큼이나 흔한 이름을 가진 은영은 지영만큼이나 평범하면서도 고유한 캐릭터다.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에선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지만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교대에 진학한 은영의 과거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선 은영의 전사나 개별 스토리가 상당 부분 생략되었다. 그럼에도 은영은 적재적소 아귀가 딱 들어맞는 연기로 지영이네 5인 가족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은영의 전사가 기본적으로 내 안에 층층이 쌓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짧게 등장하는 장면이라도 층층이 쌓인 것들이 나와야 한다 생각했고, 최대한 소설 속 은영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담아두려 했다.” 어쩌면 은영에 대한 다방면의 공감이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은영과 비슷한 지점이 꽤 있었다. 엄마한테 ‘별나다, 별나’라는 얘기를 진짜 많이 들었다. 영화에서 막내 남동생 지석(김성철)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실제 8살 차이 나는 남동생에게도 많이 했다. 가사일 분담하고, 엄마 일 좀 거들라는 얘기들. 어려서부터 성역할에 따른 고정관념에 반감이 컸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 같은 말들이 나를 순응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좀더 대차게 만들었던 것 같다.”

재바르고 입바를 것 같아 보이지만, 공민정은 자신이 은영 같기만 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내향은 김지영에 가까운데 외향은 김은영처럼 살아온 것 같다. 나는 지영이기도 하고 은영이기도 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배우는 캐릭터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본다. 공민정 역시 연기의 재미 혹은 매력이 바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말했다. “내 안에 어떤 은영이 있는지 혹은 내 안에 어떤 영신(<한낮의 피크닉>)이 있는지, 나를 솔직히 바라보고 캐릭터와의 접점을 찾는 작업이 매번 흥미롭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끝이 없기에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 공민정의 첫 장편영화 현장은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였다. 이후 수많은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를 통해 시시각각 변모하는 얼굴을 보여주었는데, 홍상수 감독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밤의 해변에서 혼자> <풀잎들>에 연이어 출연하며 활동의 반경을 서서히 넓혀갔다. 드라마 <아는 와이프>와 옴니버스영화 <한낮의 피크닉>도 이름과 얼굴을 알려준 고마운 작품들이다. “사실 어느 한 작품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기보다 모든 작품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 작품이 다음 작품으로 나를 이끌어주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지금도 계단을 쌓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들춰보면 “내성적인 아이”라고 쓰여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지만, 중학생 때 본 연극 <지하철 1호선>과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며 느꼈던 희열이 공민정을 연기의 길로 이끌었다.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은 지금도 변함없다. “농담과 유머를 좋아한다. 밤새도록 농담만 하다가 잠들고 싶다. 나를 웃겨주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행 타지 않는 배우”, “작품에 꼭 필요한 배우”, “울림을 주는 배우”,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배우” 등 되고 싶은 배우의 상은 많기만 하다. 매일 반성 반 다짐 반의 일기를 쓰는 공민정은 매일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11월에 개봉하는 <집 이야기>, 내년 초 개봉예정인 <이장>에서도 공민정을 만날 수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고, 바르샤바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경쟁부문 대상과 넷팩상을 받은 <이장>에서는 긴 호흡으로 공민정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다.

●김도영 감독이 말하는 공민정

“매 장면 만족스러웠다. 삼남매가 함께 차타고 가는 장면 찍을 때는 마치 세 배우가 친남매 같았다. 셋이 한방에 있는 장면도 좋았고, 고모랑 한댓거리하는 장면도 좋았고, 최종적으로 편집돼서 아쉽지만 아프지 말라고 은영이 지영을 안아주며 위로하는 장면도 정말 좋았다. 매 장면 빛이 난다는 생각을 했다. 예정보다 분량이 많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은영이 등장하는 장면을 관객이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은영이라는 캐릭터에는 그런 에너지가 있고, 그건 민정 배우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다.”

●필모그래피

영화 2019 <이장> <82년생 김지영> <한낮의 피크닉> 2018 <라이브하드>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 <두개의 방> <성인식> <풀잎들> <사라진 밤> 2017 <끝내주는 날씨> <의자 위 여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윤리거리규칙> 2016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2015 <병구> 2014 <아빠의 맛> 2013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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