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뭉클했던 대목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음악상일 것이다. 시상자도, 음악상 후보곡을 라이브로 들려준 오케스트라 지휘자(아카데미 역사상 92년 만에 처음으로 시상식 공연의 오케스트라를 이끈 여성 지휘자 이미얼 눈.-편집자)도, 수상자도 모두 여성인 건 시대의 변화를 요구받은 아카데미의 성의 있는 대답인지도 모른다. <캡틴 마블>의 브리 라슨, <원더우먼>의 갤 가돗, <에이리언> 시리즈의 시고니 위버 등 세 배우로부터 음악상을 받은 <조커>의 음악감독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는 “소녀들과 여성들, 딸들에게 말하고 싶다. 꼭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 우리는 당신들의 목소리 듣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DC 슈퍼히어로 시리즈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인 그가 들려준 <조커>의 음악은, 무너지는 조커(호아킨 피닉스)의 내면에 연민, 슬픔, 동정, 씁쓸함 등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생생하게 불어넣었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는 1982년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첼로 연주에 재능을 보였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연극과 무용 그리고 공연을 위한 곡들을 작곡했다. 벤 프로스트, 나이프, 니코 뮬리 등 유럽의 밴드들과 함께 연주를 녹음했고, 첼리스트로서 솔로 앨범을 5장이나 발표하기도 했다. 다재다능한 그가 영화음악으로 영역을 넓힌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 브리딩> <하이재킹> <톰 오브 핀란드> 등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음악을 작업하던 그가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같은 아이슬란드 출신인 요한 요한슨 음악감독의 눈에 띄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프리즈너스>(2013),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컨택트>(2017),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2018) 등 요한 요한슨 감독의 영화음악 작업에 연달아 연주자로 참여했다.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이 작업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도 비슷한 시기 그가 참여한 작품이다. 하지만 오랜 친구인 요한 요한슨이 세상을 떠나면서 할리우드는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에게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음악감독으로서 그가 인정받은 작품은 <HBO> 5부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이다. 방사선 피폭 소리, 헬리콥터, 자동차 엔진 소리 등 음악인지 음향인지 분간하기 힘든 그의 작업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에 대한 절망감과 불안감 그리고 무기력함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생애 최초로 에미상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입증했다. 이제 겨우 39살인 그가 또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무척 궁금하다.
<조커> 의 음악
첼로 전공자답게 <조커>에서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 음악감독은 스트링과 현장음을 조합하는 데 공을 들인다. 특히 그가 선보이는 첼로는 서사가 전개될수록 하강하는 조커의 심리와 내면에 울림을 던진다. 그건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 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턴 하워드가 조커의 무질서, 혼돈을 극대화시킨 것과 사뭇 다른 해석이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조커>에서 조커가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에 연민과 동정심이 드는 것도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 음악감독이 섬세하게 빚어낸 첼로 연주 덕분이다.
2019 <조커> 2019 <체르노빌> 드라마 2018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2017 <저니스 엔드> 2017 <톰 오브 핀란드> 2016 <오스> 2015 <트랩트> 드라마 2012 <하이재킹> 2011 <더 브리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