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주목해야 할 해외스탭들 ⑦] 신뢰 쌓기가 직업 - 톰 퀸
2020-03-12
글 : 김성훈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 대표

<괴물> 북미 포스터
<설국열차> 북미 포스터

오스카 캠페인이 시작된 지난해 8월만 해도 톰 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들인 경쟁작에 비해 예산도 적고 배급 규모도 작지만 CJ와 네온이 힘을 합쳐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오스카 캠페인을 진행했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기생충>이 오스카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완주할 수 있었던 건 톰 퀸 네온 대표의 공이 크다. 잘 알려진 대로 네온은 <기생충>을 북미 지역에 배급한 미국 배급사다. 톰 퀸은 배급사 매그놀리아에서 일하던 시절 <괴물>(2006)과 <마더>(2009) 등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북미 지역에 배급한 인연으로 <기생충>의 배급을 맡게 됐다. 톰 퀸이 이끄는 네온은 캠페인 내내 ‘봉하이브’(Bong Hive)를 앞세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변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다음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았다.

1. 매그놀리아의 시네필, <괴물> <마더>와의 첫 만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태어난 톰 퀸은 농구 코치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유럽에서 보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연기로 바꾸었다.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면서 벨기에 컬트 범죄 코미디 <개를 문 사나이>(감독 레미 벨보·앙드레 본젤·브누아 포엘부르드, 1992) 같은 영화에 심취하며 시네필이 되었다. 하지만 연기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배급사인 새뮤얼 골드윈 필름에 입사해 피터 솔리트 감독의 <라이징 빅터 바르가스>(2002), 모건 스펄록 감독의 <슈퍼 사이즈 미>(2004) 등을 배급하는 데 참여했다.

그러다가 좀더 큰 회사인 배급사 매그놀리아로 옮기면서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톰 퀸은 “당시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괴물>을 보고 곧바로 샀다. 괴수영화였는데, 괴수가 가족의 일원이라고 느꼈다”며“<괴물>은 내 커리어에서 중요한 영화였다. 당시 나는 할리우드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니까”라고 회상했다. 그는 “영국 에든버러에서 첫 공개하는 시사회에서 봉준호 감독을 처음 만났다. 시사가 끝난 뒤 극장 근처에 있는 바에 맥주를 마시러 갔는데, 바에서 사람들이 나오면서 서로 밀치는 걸 보고 봉 감독이 ‘<트레인스포팅>(1996) 같다’고 한마디 하고 갔다.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괴물>이 톰 퀸의 커리어에 중요했듯이, 미국에서 개봉한 첫 영화라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에게도 중요한 작품이었다.

2. ’가위손’ 하비 웨인스타인으로부터 <설국열차> 지키기

톰 퀸은 <설국열차>(2013)를 인연으로 봉준호 감독과 다시 만났다. 당시 하비 웨인스타인이 운영하던 웨인스타인 컴퍼니가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해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 영어권 국가들에 대한 배급권을 가지고 있었다. 톰 퀸 대표는 “당시 웨인스타인 컴퍼니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설국열차> 프로모션을 접하고 구매할지 고려하는 과정에서 내게 의견을 물어왔다. ‘봉준호 감독 어때?’라고 묻기에 ‘그 사람은 한번도 나쁜 영화를 만든 적 없으니 <설국열차> 또한 정말 좋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대답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런데 ‘가위손’으로 악명이 자자하던 하비 웨인스타인 대표는 “<설국열차>의 한국 상영 버전은 분위기가 무거운 SF영화이니 미국 중서부 지역의 저소득층 관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목표로 일부 캐릭터 묘사와 지루한 이야기 전개를 삭제하는 대신 열차에서 벌어지는 액션신과 스릴러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편집하려고 했다. 그때 봉준호 감독이 웨인스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자, 웨인스타인은 이 영화를 레이디어스-TWC에 버리다시피 떠넘겼다. 레이디어스-TWC는 톰 퀸이 맡았던 부티크 레이블로, <설국열차>의 오리지널 버전 그대로 북미 지역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미국 연예 산업지 <버라이어티>와의 대담에서 봉준호 감독, 톰 퀸 대표 두 사람은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말했다. 봉 감독은 “그것은 정말 해피엔딩이었다. 나의 디렉터스컷을 지켰다. 그건 영화감독에게 매우 큰 축복이고, 톰 퀸이 나를 도왔다”고 말했다. 톰 퀸 대표 또한 “우린 정말 운이 좋았다”며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하비 웨인스타인이 내게 ‘<설국열차>를 개봉시키길 원하냐’고 물어와 ‘당연하다. 무슨 일이 있나?’라고 되물었다. 하비에게 우리가 그 일을 할 거면 봉준호 감독이 원하는 대로 편집해야 한다고 말할 작은 결심을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일을 계기로 톰 퀸 대표와 봉준호 감독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다.

3. 계란으로 바위치기, <기생충> 오스카 캠페인

2017년 톰 퀸이 설립한 네온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명수다. 시작은 네온이 북미 지역에 처음으로 배급한 영화 <아이, 토냐>였다. 2017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의 이 영화의 북미 배급권을 따내 성공적인 오스카 캠페인을 펼쳤었다. 이 영화에서 토냐 하딩을 연기한 마고 로비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토냐 하딩의 어머니를 연기한 앨리슨 제니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네온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의 북미 배급을 맡고 싶었고, 봉준호 감독 또한 네온과 함께 배급하고자 넷플릭스를 설득했지만 그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네온은 지난 2018년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시나리오 작업 단계였던 <기생충>의 북미 배급권을 일찌감치 구매했다.

지난해 5월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자마자 톰 퀸 대표는 아카데미 캠페인에 돌입했다. “죽고 싶으면 무턱대고 와이드 릴리즈로 개봉해라. 그 순간 마케팅비만 수백달러를 감당해야 할 것.” 톰 퀸의 말대로 <기생충>은 북미 지역에서 롤아웃 방식의 배급 전략을 선택했다. 롤아웃은 첫주에 적은 숫자의 개봉관에서 시작해 관객 반응에 따라 스크린 수를 차차 늘려가는 방식이다. 2월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최대한 가깝게 개봉하려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배급 전략과 달리 <기생충>은 캠페인이 막 시작된 지난해 10월에 뉴욕과 LA의 3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그 전략은 연이은 매진 사례를 이끌어냈다. 아카데미 캠페인만 전담하는 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어마어마한 홍보마케팅비를 쏟아붓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에 비해 전력이 한참 열세인 네온은 봉준호 감독의 브랜드를 앞세워 SNS를 통해 언론, 팬들과 적 극적으로 소통했다. 덕분에 <기생충>의 아카데미 캠페인은 성공적이었고, 그 기세는 북미 지역의 극장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2월17일 기준으로 스크린 수가 2001개로 전주에 비해 두배나 늘었고, 약 4433만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러한 전략이 역사가 짧은 네온을 할리우드 5대 메이저 스튜디오 다음 자리에 놓을 수 있었던 비결인지도 모른다. 톰 퀸의 선택은 옳았다.

2019 <기생충> 2019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더 롯지> 2019 <허니랜드> 2019 <모노스> 2018 <언프리티 소셜스타> 2017 <아이, 토냐>

*이 기사는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 <뉴욕타임스>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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