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주목해야 할 해외스탭들 ③] 감정과 윤리를 동시에 - 찰스 랜돌프
2020-03-12
글 : 김소미
<밤쉘> 작가, 제작자
<시민 케인>

“그 어떤 여성도 성희롱을 겪어서는 안된다는 당연한 진실을 썼다.” 실존 인물인 앵커 메긴 켈리를 중심으로 <폭스 뉴스>의 성희롱 사건을 파헤치는 영화 <밤쉘>의 작가 찰스 랜돌프는 올해 제72회 미국작가조합상에서 명예상격에 해당하는 파울 셀빈상을 수상했다. 지난 25년간 미국작가조합의 고문변호사를 담당한 파울 셀빈의 이름을 딴 이 상은 헌법상의 인권과 자유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대본을 쓴 회원에게 수여된다. 평생 동안 작가 1인당 1회로 수상을 한정해 그 의미를 높이 기리는데, 미국작가조합은 <밤쉘>을 “도전적이고 의미 있는 우리 시대의 정신을 깊이 있고 매혹적인 인간 드라마로 표현했다”고 평했다. 찰스 랜돌프는 전작인 <빅 쇼트>로 애덤 매케이 감독과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 미국작가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서 이미 각색상을 휩쓴 작가다. 제작자를 겸업하는 그는 데뷔작인 <데이비드 게일>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인터프리터> <러브 & 드럭스> <빅 쇼트> 모두 예산 대비 만족스러운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둬 할리우드 관계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이름이 됐다. <인터프리터> 덕분에 시드니 폴락 감독의 마지막을 함께한 작가로 기억되기도 한다.

랜돌프는 <빅 쇼트>에서 2010년에 출간된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을 기반으로 미국 금융위기 사태의 이면을 리드미컬하게 풀어냈다. 배우 크리스천 베일, 스티븐 카렐, 브래드 피트, 라이언 고슬링 등 여러 인물의 다중시점을 활용해 드라마틱한 국면의 전환을 꾀하는 이야기 전개 솜씨가 발군이다. <포브스>는 이를 “금융위기를 활용해 한탕하려는 일당을 보여주는 초반부에선 유쾌한 케이퍼 무비 같다가 사태의 심각성이 인지되는 중반부터는 시한폭탄을 기다리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감이 조성된다. 이어서 인물들의 깊은 무력감과 감정적 고뇌가 이어진다”라고 요약했다. 장르적 활기와 캐릭터의 인간적 깊이를 고르게 획득하며 재미와 주제를 유려하게 도출해내는 능력이야말로 할리우드가 작가에게 언제나 기대해온 모범적인 능력이 아닌가. <밤쉘> 역시 <빅 쇼트>가 그랬듯 배우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마고 로비 세 배우의 앙상블을 돋보이게 한 주요 공력을 작가 찰스 랜돌프에게서 찾을 수 있다. “<폭스 뉴스>의 진행자였던 메긴 켈리, 그레천 칼슨, 카일라 포스피실 세 캐릭터에 확연히 다른 성향을 강조하고 싶었다. 캐릭터의 복잡한 조합이 곧 폭스 CEO 로저 앨리스와 그의 인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해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을 대변해줄 것이다.”

<시민 케인> 그 이후 …

“<시민 케인> 이후 시나리오작가들은 관객의 쉽고 당연한 접근을 좌절시키는 여러 실존 인물들 이야기를 즐겨 써왔다. 이렇듯 인간의 복잡성을 들여다보는 작가조합의 일원이라 기쁘다.” 찰스 랜돌프는 미국의 온라인 매체 <골드더비>와의 인터뷰에서 <밤쉘>의 미국작가조합상 수상을 감사하며 <시민 케인>을 언급했다. 작가 활동 이전에 철학 교수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작가의 일이란 곧 인물의 무수한 도덕적·윤리적 선택을 결정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간명한 신조야말로 찰스 랜돌프가 실화 기반의 이야기에 뛰어난 이유일지 모른다. 실화란 그 재료가 풍성한 만큼 모순적이고 불완전하기에 작가의 역량이 중요하다. 재현의 정확성과 시시비비를 견주는 눈으로부터 대담한 태도가 요구되기도 한다. 미투 시대에 <밤쉘>을 내놓은 랜돌프는 세 여성의 각기 다른 반응과 선택을 교차하면서 윤리와 감정을 동시에 파고든다.

2019 <밤쉘> 2016 <빅 쇼트> 2010 <러브 & 드럭스> 2005 <인터프리터> 2003 <데이비드 게일>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