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쓴다.” 가끔 영화 글쓰기를 하는 이들에게 비평을 왜 쓰는지 묻곤 한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각양각색이지만 이처럼 강력한 동기는 좀처럼 들어본 적이 없다. 김철홍 당선자는 영화비평의 의미와 쓸모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소거법으로 하나씩 지우고나니 자기 옆에 남아 있는 유일한 친구라고. 쓸 수밖에 없으니까 쓴다는 것, 실패할 것을 알고도 펜을 놓을 수 없는 마음은 우리가 왜 이 비생산적인 작업을 사랑하고 매달리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씨네21> 영화평론상에 처음 응모해서 최우수상으로 당선되었다.
=솔직히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당선을 목표로 응모한 건 아니다. 그저 대답이 필요했다. 지인들의 응원과 격려가 아닌 전문가들에게 납득될 만한 인정을 받고 싶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틀리지 않다는, 계속 해도 괜찮다는 확인이라고 해도 좋겠다. 별로 흥미가 없었던 직장을 그만둔 뒤 호주에서 1년 동안 워킹홀리데이를 했는데, 그때 모아둔 돈으로 딱 1년만 온전히 내가 하고픈 도전들을 해보는 중이었다.
-영화평론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방송국 PD를 꿈꿨다. 영화는 취미라고 말할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였는데 PD를 준비하면서 글쓰기는 좀 더 본격적으로 다듬어왔다. 인생에서 꾸준히 하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접거나 못하게 되곤 한다. 그런데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이 영화 글쓰기였다. 작품비평을 쓴 <아워 바디>를 보면 주인공이 달리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달리는 상황이 나온다. 내게 영화비평이 딱 그랬다. 어떤 목표라기보다는 계속 하던 일. 때로 낙담하고 불안해도 끝내 할 수밖에 없는 일.
-영화평론의 영역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는 동력이 무엇인가.
=시기는 상관없었다. 언제가 되더라도 응답을 받고 싶을 뿐이고 예상보다 훨씬 빠른 응답에 솔직히 놀라는 중이다. 왜 영화평론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영화에 대한 목소리를 낼 때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는 기분이다. 지금 개봉 중인 영화에 빗대면 <#살아있다>의 느낌이랄까. 혼자 꾸준히 쓰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도 그런 작업의 연장이다.
-이론비평은 ‘문’을 키워드로 네편의 영화를 꿰어나가는 시선이 흥미롭다.
=이론적인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글들을 접할 때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영화를 포함해 일상에서도 글감을 모으는 편이다. 아무 근거 없이 내게 영감을 준 것에서 출발해서 전혀 엉뚱한 것들이 연결될 때, 바로 그 지점에서 스스로의 가능성도 발견한다. 얼핏 의미 없어 보이는 곳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라고 할까.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기존 평론에서 많이 다루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는 곳, 혹은 일반 관객이 의문을 느끼는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 비평은 일정 부분 대중의 호기심에 답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막막한 순간마다 그런 글들로부터 에너지를 받았던지라 받은 만큼 보답하고 싶다. 희망이 있다면 내가 평론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증거이고 싶다. 비평이라는 혼자 걷는 길 위에서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허점이 많아도 응답하고 싶어지는 글, 어떤 식으로든 다음 대답을 이어나가고 싶게 만드는 글, 좋은 의미에서 싸우고 싶은, 구경거리가 많은 글을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