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은 시간 역전(time inversion)과 열역학 제2법칙을 다룬 영화다. 열역학 제2법칙은 19세기 중반 독일의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와 영국의 윌리엄 톰슨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클라우지우스는 열에서 일(물리학에서의 일(work)은 물체에 힘이 작용하여 움직일 때 힘과 변위의 곱으로 주어지는 물리량을 의미한다.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일과 에너지는 서로 전환될 수 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어떤 계의 내부에너지의 증가량은 그 계로 흘러들어간 열과 외부에서 그 계에 해준 일과 같음을 정리한 것으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불린다.-편집자)이 나올 때 항상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기에 윌리엄 톰슨은 열이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외부의 일의 도움 없이 흐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열이 낭비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일이 열로 바뀐 뒤에는 그 열이 모두 일로 바뀔 수 없기 때문에 이 과정은 비가역적(irreversible)이다.
세상을 최초의 상태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클라우지우스와 루트비히 볼츠만은 열역학 제2법칙을 엔트로피 증가라는 수학적인 법칙으로 표현하였다. 엔트로피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배열 혹은 무질서를 나타내는 양으로 우주에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일반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물론 국소적인 범위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더운 한여름에 특정 지역에서 나타나는 얼음골의 시원한 공기는 국소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영화 <테넷>에서는 이런 예외적인 물리 현상을 최대한 활용하고있다. 하지만 우주를 고립계로 보고 계산하면 우주의 전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볼츠만이 제기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볼츠만과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과학자인 요제프 로슈미트는 1876년 비가역적인 엔트로피 증가 현상을 가역적인 뉴턴 역학의 법칙으로부터 유도해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즉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뉴턴 역학에 위배되고 둘 중 하나는 틀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테넷>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세상을 최초의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푸앵카레의 영겁 회귀 정리(Poincaré recurrence theorem)에 따르면 가능하다. 1890년 앙리 푸앵카레는 삼체문제(three-body problem)를 다루는 논문에서 일정한 전체 에너지를 갖고 유한한 부피 내에서 움직이도록 제한된 임의의 역학 체계는 종국적으로 특정한 초기 짜임새로 되돌아온다는 회귀 정리를 발표했다. 이 정리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시간에 따라 무한정 증가할 수는 없고, 언젠가는 초기값으로 되돌아와야만 한다. 막스 플랑크의 조교였던 에른스트 체르멜로도 물리학에서 규정된 모든 계는 원칙적으로 주기적인 모습을 띠며 이런 모습을 띠는 한 순환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하였다.
볼츠만은 푸앵카레의 회귀 정리가 자신의 엔트로피 법칙과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완전히 조화될 수 있으며, 서로 양립 가능하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우선 평형 상태는 단일한 짜임새가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가능한 짜임새의 집단이다. 따라서 특정한 초기 상태로 회귀하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나타나는 것으로 이것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따라서 푸앵카레의 회귀 정리를 받아들이더라도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지니는 유효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도 철학적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영겁 회귀를 주장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85)에서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고 말했다.
<테넷>에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의 거래 이야기도 등장한다. 시간 역전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악마와 거래하여 영혼을 팔아먹은 무기상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는 기후변화와 환경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과거 세계에 개입한다. 이때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신이 미래에서 파견한 선지자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종교적인 분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기에 더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우리는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는가? 현재는 미래와 연락할 수 있는가? 과거로 돌아가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은 가능한가? <테넷>은 이런 문제도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는 시간 여행이 불가능한 이유인 ‘할아버지의 역설’을 피해나가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상황을 바꾸어놓으면 현재 세계의 모든 인과관계는 붕괴되어버린다. 이것을 피해나가기 위해 영화에서는 과거를 변화시키더라도 그것은 될 것이 되는(Que sera sera) 경우 가운데 하나라고 치부하고 있다.
카오스 우주론, 평행 우주론, 양자역학의 다중 세계 해석(many worlds interpretation), 혹은 다중 마음 해석(many minds interpretation) 등은 우리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존 아치볼드 휠러와 같은 과학자들은 우리가 가지 않은 시공간, 즉 실현되지 않은 세계와 시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양자역학과 연결된 다중 세계 해석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각 순간마다 선택된 것으로 무한히 많은 다른 가능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다만 이들 여러 세계들은 서로 연락이 되지 않을 뿐이다.
물리학적으로 가능성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현재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다시 수축하게 되면 시간은 역전될 것인가? 과학자 스티븐 호킹은 이 가능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결국에는 시간 역전과 관련된 자신의 견해를 철회했다. <테넷>에는 시간 역전뿐만이 아니라 물질과 반물질이 서로 만나면 소멸하여 에너지로 변하는 시간 반전 이야기도 잠시 등장한다. 아무튼 물리학 이론에서 나오는 시간 반전과 시간 역전과 관련된 많은 사례가 수없이 삽입된 탓에 관객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테넷>은 여러 장면에서 물리학 이론에 모순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나타나는 시간 역전이라는 물리현상을 신비한 알고리즘이란 비밀로 처리해 통상의 세계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시간 역전이라는 현상은 그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의 양자 컴퓨터와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딥러닝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면 시간 역전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그 세계를 극도로 확대하고 깊이 파고들어 하나의 영화로 만든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