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크리스토퍼 놀란①] 국내외 영화 키스탭들이 본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의 매력
2020-09-03
글 : 씨네21 취재팀
사진 : 오계옥
아날로그에 대한 놀란의 집착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인들이 사랑하는 동시대의 영화인,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마땅히 현재 진행형의 거장이라 호명될만하다.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특유의 작업 방식은 필름메이커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며 ‘시네마’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그와 함께 작업했던 <인터스텔라>의 제작자 린다 옵스트와 놀란 감독을 사랑하는 충무로 영화인 김우형 촬영감독·양진모 편집감독·방준석 음악감독에게 놀란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해 들었다.

<인터스텔라> 제작자 린다 옵스트 - 솔직하고, 정확하며, 계획적인 창작자

“크리스토퍼 놀란을 처음 만난 건, 글쎄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웃음) 웜홀 이론을 만든 미국 이론물리학자인 킵 손 박사, 조너선 놀란(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이자 시나리오작가)과 함께 <인터스텔러>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조너선이 감독으로 자신의 형인 크리스토퍼 놀란을 추천했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연출을 요청하니 그는 ‘먼저 계약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가 끝나는 2012년 9월까지 기다려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연출을 맡겠다’고 말한 지 한달이 지난 뒤 곧바로 <인터스텔라>에 합류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새로 썼다. 시나리오를 다시 쓰는 과정에서 우리가 세운 원칙은 ‘이야기가 물리학 법칙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그가 새로운 포인트가 들어간 플롯을 아이디어로 낼 때마다 킵 손 박사와 함께 그 설정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도록 했고,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더 근사한 스토리가 나왔다.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모든 아이디어를 솔직하게 말하고, 의견을 주고받았으며, 감독으로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쓴 모든 시퀀스가 영화에서 어느 정도의 길이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현장에서 시간을 계획보다 넘기는 경우가 전혀 없었다. 한국 관객도 잘 알다시피 크리스토퍼 놀란은 CGI보다 현실적인 특수효과를 더 선호하는데 그가 원하는 블랙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킵 손 박사가 동료 물리학자들, 세계 최고의 특수효과 스탭들과 함께 모델링을 만들어 오스카에서 상을 수상했고, 미국 과학 교과서에도 실린 건 지금도 매우 자랑스럽다.”

방준석 음악감독 - 사람들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음악

“영화 하는 사람들은 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좋아하지 않을까. 한스 짐머 음악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놀란 감독은 음악적으로 얘기할 거리가 산더미처럼 많은 감독이다.

<인터스텔라>의 음악에는 영국의 한 교회에서 오르간 소리가 담겼다. 특정 악기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파이프오르간과 교회 공간 자체를 악기처럼 활용해 우주영화와 궁합이 잘 맞는 소리를 만든 것이다. 스코어의 정의나 범주를 두는 데 있어서도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놀란 감독의 영화는 경험적인 요소가 굉장히 강하다. 그의 영화를 제대로 관람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스크린과 좋은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는 극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해 만들어진다. 놀란 감독은 결국 영화는 사람들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매체라는 점을 재확인시키며, 관객에게도 극장 관람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몇 안되는 감독일 것이다. 특히 영화 경험에서 소리는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음악은 감정 이상의 것을, 원론적이고 본원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가령 영화가 시작할 때 깊고 무거운 소리가 나오면 사람들은 영화가 뭔가 거대하고 진중한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는 걸 받아들이고 작품 관람에 들어간다. 음악이 어떤 심리적 상태를 만들어준 후 영화의 여정에 함께하도록 만드는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를 비롯한 그의 영화음악은 이런 일을 아주 탁월하게 해낸다.”

김우형 촬영감독 - 근거 없는 화면이 한순간도 없다

“감독이나 촬영감독 입장에서는 직접 현장에서 카메라로 모든 것을 찍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찍는 사람도 배우도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프레임 안에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위치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촬영하는 건 어렵고 불안한 일이다.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세트에서 촬영할 때 창밖은 그린 스크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깥 밝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지평선 높이는 어느 정도인지, 밤 장면이라면 건물에 불은 얼마나 켜져 있는지, 구름은 어느 정도에 걸쳐 있는지 등이 모두 방 내부와 인물의 조명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난 놀란 감독이 물리적 구현에 집착하는 것에 크게 공감한다. 아마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그럴 것이다.

아이맥스가 처음 소개됐을 때 사람들은 ‘몰입감은 정말 좋지만 우리가 여기서 극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은 없다’고들 했다. 거대한 화면에 배우의 클로즈업, 잔주름과 솜털까지 보이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 될 거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맥스 카메라는 소음 때문에 대사를 녹음할 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아이맥스 2D의 큰 화면을 고집했고, 대화 신은 동시녹음이 가능한 카메라(아이맥스와 같은 65mm 필름을 사용하지만 세로로 촬영한다.-편집자)로 찍으면서 한 영화에 두개의 다른 화면비율이 섞이도록 했다. 영화 상영 중 화면비율이 바뀌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 역시 우려일 뿐이었다. 관객은 아이맥스의 클로즈업에도, 화면비율의 변화에도 전혀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보란 듯이 아이맥스 포맷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극영화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인터스텔라>는 개인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독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의 끝까지 간 느낌이 든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많은 다른 영화들은 컴퓨터상에서 카메라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과도하게 화려한 카메라워크를 구사한다. 하지만 <인터스텔라>는 실제 물리적인 카메라로 구현 가능한 앵글들로만 이루어져있다. 근거 없는 화면이 한순간도 없는 것이다. 나는 우주에 나가본 적이 없지만, 그가 보여주는 우주를 매우 현실적이라고 느낀다.”

양진모 편집감독 - 독창적인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편집으로 구현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에는 대부분 기억, 꿈, 현실과 비현실 등과 같은 키워드가 있다. 영화 편집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는 꿈이 현실이길 바라거나 빨리 깨어나고 싶기도 하고, 꿈을 꾸고 나서 다른 이에게 얘기할 때 막상 생각나는 건 별로 없고 강렬한 몇 가지 장면만 생각난다. 긴 이야기에서 루스(loose)한 부분을 다 걷어내고 알맹이만 남긴 후 영화적 리듬에 맞춰 재구성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편집이다.

놀란 감독은 기억과 꿈을 영화적인 방법으로 구성하고 그만의 구성 방식에서 상당한 서스펜스를 만든다. 가령 <메멘토>는 시간 순서대로 편집됐다면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가 됐을 텐데, 신의 순서를 바꿈으로써 지금의 결과물이 됐다. <덩케르크>는 가장 발전된 형태의 편집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해변, 바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동시에 인터컷되면 대부분의 관객은 같은 시간대에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예 편집을 통해 시간 개념을 없애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집에 의해 신과 신이,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드라마에서 찾지 못했던 긴장감이 배가 된다. 편집자로서 늘 주인공 캐릭터들의 시선을 관심 있게 보는데, <메멘토> <덩케르크> 등 그의 영화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다시 보여지면서 전혀 다른 의미가 만들어지는 신이 꽤 있다. 가령 <덩케르크>에서 동료 조종사가 바다로 추락하는 장면. 그렇게 긴박함을 보여주는 것이 참 영리하다.

리 스미스 편집자에 따르면 <인터스텔라>는 우주 장면조차 사실은 프로젝션을 해서 찍었기 때문에 CG를 입히기 전과 후를 비교해도 상당 부분이 편집 단계에서 완성된 수준이었다고 한다. 놀란 감독은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카메라에 담겼을 때 느끼는 것을 일반 관객도 똑같이 느낄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는데, 영화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굉장히 존경할 만한 일이다. CG로 전부 창조된 신을 보는 것과 세트를 만들고 거기에서 움직이고 리액션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편집자로서 어떤 장면을 고를 때 배우들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보면서 가장 좋은 것을 택하는데, 사실적으로 찍은 장면에서는 그런 게 더 잘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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