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 다름을 드러내고 상처를 위로하는 법
2020-11-11
글 : 남선우
사진 : 최성열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동네를 지나는 기차 소리에 귀를 막곤 하던 세 소녀는 어느 날 그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출한다. 기꺼이 소음에 몸을 실은 이들은 각자짐을 싼 스타일만큼이나 다른 성격을 가진 동급생 강이(방민아), 소영(한성민), 아람(심달기). 집을 떠나 고약한 여름을 보낸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최선의 삶’을 살아보려 애쓰다 서로를 헤집어놓는다. 아직 세상도,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이들 곁에서 동행하며 쓴 듯한 사실적 각본이 섬세하면서도 폭발력 있는 연출을 만나 영화로 완성되었다.

<파수꾼>과 <우리들>이 그랬듯, 깨질듯한 아이들의 세계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 태도가 빛나는 이 영화는 단편 <송한나> <애드벌룬> <서울생활> 등을 만들며 인물의 도약을 지켜봐온 이우정 감독의 첫 장편이다. 임솔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이 작품으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이우정 감독을 만나 강이, 소영, 아람과 함께한 시간에 대해 물었다.

-원작을 어떻게 읽었나. 소설의 무엇을 영화로 다시 보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2017년 초에 이 영화를 제작한 김형대 마일스톤 컴퍼니 대표가 내가 좋아할 거라며 소설 <최선의 삶>을 권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추천한 거였고, 당시 나는 앞으로 영화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이 가진 힘이 너무 좋아 그걸 빌려 영화로 만들고 싶어지더라. 작가가 주인공의 감정으로 깊이 파고드는 능력이 부러웠다. 나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피하며 작업해왔는데, 나와 정반대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책에 매우 끌렸다.

-영화가 소설을 충실히 구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각색에 임할 때 어떤 원칙이 있었나.

=관객이 강이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게 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영화화함으로써 원작의 무언가를 바꾸기보다는 이 이야기 그대로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이 목표였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없는 사람이기에 이렇게라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방민아, 한성민, 심달기 배우가 각각 강이, 소영, 아람을 연기했다. 세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배우와 연결지었나.

=강이, 소영이, 아람이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 이들을 어떤 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심달기 배우는 <동아>라는 단편을 통해 좋아하게 됐고, 원작을 읽고서 아람이는 꼭 달기 배우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인스타그램으로 배우들 사진을 많이 보는데, 한성민 배우가 광고 촬영 중인 사진을 보고는 “어머, 소영이다!” 했고. (웃음) 방민아 배우의 경우, 작품 준비 소식을 들은 방민아 배우 소속사 대표님께서 강이와 민아 배우가 비슷하다고 만남을 주선해줬다. 우리끼리 세명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강·소·아라고 부르곤 했는데, 배우들이 각자 강·소·아가 되어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로부터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빠듯했는데, 민아씨가 강·소·아가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줬다. 서로 언니, 동생 하기보다 강·소·아로서 바로 떠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주도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셋이 노는 걸 지켜보며 ‘즐거운 장면에서 저런 얼굴을 담을 수 있겠구나’ 상상할 수 있었다. (웃음)

-배우들을 관찰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겠다. 그렇다면 이야기 속에서 이 세 사람이 함께 가출을 감행하고, 끈질기게 관계를 이어나간 까닭이 무엇이라 여겼나.

=나의 그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작은 학교에 너무 오랜 시간 너무 가깝게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관계가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슬프게도 하나라고 느꼈던 게 아닐까. 학교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계속 그 관계 속에 얽힐 수밖에 없다. 가출을 통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함으로써 비로소 이들 각자의 다름이 드러난다고 봤다.

-생경한 순간을 빚어 극의 흐름을 달리 만드는 사건도 학교 밖에서 벌어진다. 무더운 여름밤, 강이와 소영이 교감하는 신이 그것이다. 어떻게 찍고 싶었나.

=그 장면은 ‘푸른 밤’이라 불린다. 푸른 밤은 아이들이 서울로 올라온 이후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고, 그걸로 계속 부딪히는 와중에 갑작스레 들이닥쳤으면 했다. 강이의 몸과 마음이 다 약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말이다. 소설에는 적나라한 표현이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강이와 소영의 얼굴만으로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폭력 묘사도 원작보다 옅다. 강이와 소영이 오락실 노래방 부스에서 싸우는 장면은 CCTV 화면으로 대신했고, 공터에서의 싸움은 상황이 끝난 후 강이의 표정만으로 설명했다.

=고민을 많이 한 지점이다. 원작에서는 아이들의 싸우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디테일하게 참 잘돼 있다. 그래서 배우들이 액션스쿨도 다녔고, 공터에서의 싸움 신은 준비된 액션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그런데 꼭 표현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 많이 걷어냈다. 오락실에서도 우연히 CCTV를 발견해서 그 영상을 쓴 것이다.

-CCTV 녹화본 외에도 영화의 초반과 후반에 다른 화면비와 색감의, 마치 다큐멘터리 자료화면 같은 영상을 사용해 시대상을 보여줬다. 2002년에서 2003년 정도의 시점인가.

=맞다. 영화가 시작할 때는 이것이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을, 영화를 맺을 때 역시 강이가 모든 시간을 지나온 후에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싶어 앞뒤로 그런 화면을 배치했다.

-그 밖에도 2000년대 초반의 질감을 살리고자 의상과 소품에 신경을 썼겠다.

=새로 만들기보다 피해야 할 게 많았다. 도로 표지판이나 자동차 번호판 디자인이 다 바뀌어서 현장에서 차를 빼야 할 일이 많았다. 의상의 경우, 소영이를 제외한 모든 인물의 옷이 세탁기에 30번은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고 촬영감독과 이야기나누었다.. 색감이 바래고 보풀도 일어나 있게 말이다. 아마 민아씨가 입고 많이 놀랐을 거다.(웃음)

-영화를 완성한 소감을 듣고 싶다.

=이 작업을 통해 내가 가진 상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동안 피하고 미뤄왔는데 말이다. 내가 이 영화로 힘과 위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관객에게도 그 비슷한 것이 전달된다면 가장 좋겠다.

<최선의 삶>은 어떤 이야기

감독 이우정 / 출연 방민아, 한성민, 심달기 / 제작연도 2020년 / 상영시간 110분 / 뉴 커런츠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강이, 소영, 아람은 함께 가출을 한다. 강이는 늘 구부정히 친구들을 기다리고, 모델 지망생 소영은 아이들을 주도한다. 아람은 언제나 마음 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동반 가출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이후, 소영이 강이를 본격적으로 따돌리면서 이들의 관계는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어그러진다. 이우정 감독은 강이의 시선을 앞세워 얼킨 실타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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