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기쁜 우리 여름날' 이유빈 감독 - 연애가 사치인 시대의 멜로드라마
2020-11-11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기쁜 우리 여름날' 이유빈 감독

배창호 감독의 1987년작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떠오르게 하는 제목이다. 한 남자(안성기)의 지고지순한 짝사랑을 애틋하게 그려낸 영화였다. 이유빈 감독이 데뷔작 <셔틀콕>(2013)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기쁜 우리 여름날>은 권태기에 접어든 오랜 연인이 어렵게 여름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멜로드라마다. “원래 스포일러를 담은 제목이었다가 좋아하는 멜로드라마인 <기쁜 우리 젊은 날>에 영감을 받아 바뀐 것”이다.

찬희(지수)와 세영(이주연)은 불안정한 현실 때문에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20대 커플이다. 한때 사진작가가 꿈이었던 찬희는 카메라 매장에서 카메라를 판다. 세영은 네일숍에서 일한다. 자신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자가 세영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실을 알게 된 찬희는 세영의 마음을 돌리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함께 여행 갈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여행은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둘은 길 위에서 다투고, 사과하고, 또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연애조차 사치인 시대, 영화 속 젊은 커플은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유빈 감독이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된 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며 20대들이 가진 가치관이나 고민이 우리 세대(1980년대생)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느껴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덥석 뛰어들어 꿈을 향해 돌진했던 우리 때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은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나 많아 모든 정보를 수집해 판단할 만큼 조심스럽고,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며, 그래서 더 소극적이고 도약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제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탓에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상대에게 선뜻 내비치지 못하는 찬희와 세영의 모습이 애잔하고 씁쓸하다.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이나 <여름의 폭풍우>(1944), <언덕 위의 천둥>(1951) 등 멜로드라마를 연출했던 더글러스 서크 감독을 좋아하는데 멜로드라마가 그 시대의 가치관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기쁜 우리 젊은 날>도, 이 영화에도 삽입된 <초우>(감독 정진우, 1966)도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면서도, 또 한편으로 캐릭터(<휴일>의 신성일))만 놓고 보면 시대가 달라도 사람이 생각하고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다. 되돌아보면 찬희는 <기쁜 우리 젊은 날> 속 안성기의 밝은 면과 <휴일> 속 신성일의 비겁한 면모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웃음)”

전작 <셔틀콕>이 이복남매의 첫사랑을 미스터리로 풀어낸 로드무비였듯이, <기쁜 우리 여름날> 역시 젊은 커플이 계속 어딘가로 이동하는 로드무비다.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지만 시시각각으로 충돌하고, 또 봉합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아슬아슬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왜 로드무비에 이끌리는지 생각해보니 서사가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다른 스토리텔링 매체에 비해 남성적인 매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연출자로서 내 스타일은 늘 머물렀고 앞으로 가기 어렵더라. 영화 속 인물을 어딘가로 보내면 앞으로 가게 되니까 로드무비가 내 단점을 상쇄하는 데 적합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는 게 이유빈 감독의 설명이다.

그의 차기작은 이미 준비 중이다. “범죄 장르인데 인물이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다. 좀더 장르적으로 접근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감독 이유빈 / 출연 지수, 이주연 / 제작연도 2020년 / 상영시간 114분 /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