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종착역' 권민표·서한솔 감독 - 네개의 눈으로 만든 영화
2020-11-11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종착역' 권민표·서한솔 감독
권민표, 서한솔(왼쪽부터).

‘세상의 끝’을 찍어와라. 사진반 동아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여름방학 숙제로 황당한 과제를 내어준다. 중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인 네 소녀는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고 고민에 빠진다. 세상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설사 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각자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 친구가 1호선 전철의 종착역인 신창역까지 가보자는 제안을 하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소녀들은 길을 떠난다. 물론 그곳이 세상의 끝이 아님을 우리 모두 안다. 소녀들도 알고 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납득 가능한 타당한 과정이라는 것을, 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어린 소녀들도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관문이다. 실현 불가능한 과제를 받아들고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어떤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를 묻는 과정. 앞으로 계속 부딪치게 될 통과의례. 끝인 줄 알고 달려갔는데 도착하고 나면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미션들. 삶은 그렇게 철로 위의 열차처럼 처음 만나는 역을 차례로 통과해간다.

그것은 <종착역>을 연출한 권민표, 서한솔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은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동기로 만나 <종착역>이라는 졸업작품을 통해 동행을 시작한다. 서한솔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단국대 지원작으로 선정된 후 학교로부터 공동연출을 권유받았고, 마침 공동연출에 관심이 있던 권민표 감독이 합류하면서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나는 사학과 출신이고 단편 연출 경험도 적어 협업을 하는 게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1학년 때 학교간 교류로 일본의 도쿄예술대학에 가서 일주일간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에게 다미앙 마니벨 감독과 공동연출한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2017)의 제작 과정에 대한 수업을 받고 흥미가 생겼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권민표 감독 역시 그 수업 이후 언젠가 한번은 꼭 공동연출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더라.”(서한솔) 우연처럼 이어진 인연을 필연으로 만든 건 꾸준한 대화였다. “시작하기 전엔 주변에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막상 우리는 거의 트러블이 없었다. 각자의 파트를 나눠서 진행한 게 아니라 완전 합의를 원칙으로 했기 때문이다. 혼자 몰입하면 시야가 좁아질 때도 있지 않나.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되 조금씩 다른 생각들이 부딪치면서 평소엔 보지 못했던 것들까지 보이는 기분이었다. 마치 눈이 네개가 된 것처럼.”(권민표)

<종착역>은 여름날 아이들의 소풍처럼 해맑고 산뜻한 영화다. 동시에 생의 본질에 가닿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지혜로운 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한대씩 들고 길을 떠나는 소녀들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닮았다. 아이들은 밀려오는 노곤함에 낮잠을 자고 갑작스런 소낙비에 잠시 멈춰서기도 하지만 미지를 향한 두근거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삶이란 결국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범주를 조금씩 넓혀나가는 모험이라는 당연한 진실.

91년생 두 젊은 감독이 영화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도 마찬가지다. 재밌고 두근거리는 것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도전정신이야말로 이 영화에 싱그러운 생기를 부여한다. “주변에서 지원해줄 때, 학교라는 울타리가 나를 보호해줄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려 했다”는 권민표 감독의 말에서 기성영화에선 발견하기 힘든 새로움을 제시한 창작력의 비결을 알 수 있다. “대학, 졸업, 취업, 결혼. 종착역인 줄 알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도착해보면 또 다음 역까지 선로가 이어져 있다. 우리 삶이 그런 것 같다. 삶엔 종착역이 없으니까. 다만 사회가 지정해주는 목표와 길은 늘 한정적이다. 이제 졸업이라는 역에 도착했으니 앞으로는 가지 않은 길로 가보려 한다.”(서한솔) 소년 소녀의 모험심으로 반짝거리는 이들이 새롭게 개척할 한국영화의 길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감독 권민표, 서한솔 / 출연 설시연, 배연우, 박소정, 한송희 / 제작연도 2020년 / 상영시간 79분 /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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