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④] 경기도 다양성영화 제작·투자 지원작 '불도저에 탄 소녀' 박이웅 감독, 김혜윤 배우
2020-12-18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용 문신을 한 소녀가 불도저에 오른 까닭은
박이웅, 김혜윤(왼쪽부터).

‘불도저에 탄 소녀’는 비유가 아니다. 배우 김혜윤이 연기한 19살 소녀 혜영은 말 그대로 불도저 위에 올라타 부패 세력들을 깔아뭉개버린다. 팔 한쪽을 용 문신으로 뒤덮은 이 무서운 소녀에겐 세상이 자신에게 부당하게 굴때 우선 주먹부터 날리는 일이 익숙하다. 박이웅 감독의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는 이 대담한 컨셉 하나만으로도 드라마 <SKY 캐슬>의 라이징 스타 김혜윤을 2021년의 여자배우 중 한명으로 호명하게 만들 것 같다. 아버지의 죽음과 그에 얽힌 사기 행각에 맞서 집과 동생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혜영은 대검찰청으로 중장비를 돌진시킨 한국의 포클레인 기사와 트랙터를 몰고 경찰서를 들이받은 어느 미국인 남자의 스토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남은 것은 폭력과 분노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의 절박함 위에 배우 김혜윤이 덧댄 순수가 한없이 궁금해진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그사이 어디쯤 <불도저에 탄 소녀>만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는 박이웅 감독은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제작 지원을 통해 그 꿈에 한발 다가섰다. 지난 7월 촬영을 마치고 곧 완성을 목전에 둔 영화의 주역들을 만났다.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해 중장비를 끌고 관공서에 직진한 사람들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악에 받쳐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시도에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관심을 영화로 불러들인 까닭은.

박이웅 재밌는 이야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그런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에 탁 올라타게 되는 순간이 모두에게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런 과격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 내 주변에 있고 어쩌면 나도 언젠가 불도저 위에 올라타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구상했다. 저 사람들을 자기 키보다 높은 중장비에 올라타게 한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런 역지사지의 과정이었다.

-현실에서 중장비에 올라타고 농성을 벌이는 주체가 주로 중년 남성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 주인공을 19살 소녀로 바꾸었다.

박이웅 모순적으로 가장 연약한 사람을 불도저 위에 태우고 싶었다. 그렇게 19살에서 스무살로 넘어가는 여성 인물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 나이대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이 언제나 훨씬 더 거대하고 부조리할 것이므로 혜영 같은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야 시나리오를 힘 있게 끌고 갈 거라고 봤다.

김혜윤 작품 준비할 때 감독님이 내 키가 딱 불도저 바퀴만 하다고 설명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영화의 정서를 한번에 이해한 것 같다. 혜영과 불도저 사이의 커다란 이질감이 더 큰 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김혜윤을 캐스팅했나.

박이웅 배우가 원래 갖고 있는 면모가 불같은 에너지를 품은 혜영과 비슷하길 바랐는데, 김혜윤 배우가 출연한 이전 TV드라마들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쏟아붓고 터뜨리는 연기를 할 때, 이 사람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달까. 첫 만남 때, 수수한 얼굴로 나타나 시나리오에 이것저것 잔뜩 써와서 내게 열심히 질문을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매사 열중하는 학생 같았다. 사실 내내 <불도저에 탄 소녀> 촬영장에서 함께한 내가 보기에 오늘 혜윤 배우의 화사한 모습은 무척 어색하다. 일부러 작품 이미지와 더 반전이 되게 하려고 한 걸까. (웃음)

-드라마에서 야무지고 톡 쏘는 모습을 잘 보여주긴 했지만 화사하고 발랄한 인상이 더 컸는데, 이번엔 거의 퇴폐에 가까운 모습일 듯하다. 일종의 연기 도전처럼 보인다.

김혜윤 그동안 안 해봤던 캐릭터이고 원 없이 화를 바깥으로 표출할 수 있는 연기여서 끌린 점도 있다. 혜영은 표현에 꾸밈이 없고 무엇이든 즉각 반응하며 행동에 옮기는 인물이다. 보여지는 표현이 큰 만큼 그녀가 품고 있는 내부의 기운은 더 들끓어서 촬영하는 동안 혼자 마음에 품고 있기가 버거울 때도 있었다. 여러모로 그동안의 연기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김혜윤, 박이웅(왼쪽부터).

-혜영의 비주얼부터 무척 강렬하다. 한쪽 팔 전체를 용 문신으로 덮고 있다고.

박이웅 혜영의 용 문신은 혜영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남을 겁주려는 의도도 있다. 그런 점이 오히려 인물의 미성숙함을 잘 보여줄 수 있겠다고 봤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용 문신을 써두긴 했는데, 사실 막상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김혜윤 배우가 워낙 인물을 강하게 잘 표현해줘서 용 문신이 없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김혜윤 (감격한 듯) 오! 신기한 게 그렇게 문신 분장을 하고 있으니 자세부터 달라지더라. 일단 손을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꽂게 되고 의자에 앉으면 다리가 벌어진다. 촬영하는 동안 자세가 몸에 뱄는지 그 시기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날 보고 깜짝 놀라며 왜 이렇게 껄렁해졌냐고 하기도 했다. (웃음)

-김혜윤 배우에겐 데뷔 후 연기 생활 중 가장 적극적으로 몸을 쓰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중장비 운영도 직접 했나.

박이웅 처음에 학원에서 연습할 당시에 크기별로 이런저런 장비를 다 다루게 시켰는데, 자동차 운전도 잘한다더니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느 날은 장비에 올라타더니 주차된 경차를 빼서 나가듯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동 웃음) 편집할 때도 배우의 얼굴과 손이 모두 보이는 장면들 위주로 넣었다.

김혜윤 연습은 대부분 낮에 했는데 촬영은 밤이어서 사실 혼자만의 공포감이 있었다. 게다가 스탭 분들이 대부분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혹시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극도로 긴장했다. 혜영은 겁없고 강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컷 사이사이마다 엄청 당황한 진짜 내 표정이 튀어나와서 감독님이 보시기에 좀 우습지 않았을까 싶다.

-혜영의 불도저가 빌런 격인 최 회장의 콘크리트 빌딩을 부수려 한다는 점에서 신랄한 우화로 읽힌다. 박이웅 감독은 2012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영상팀으로 일하는 등 독특한 사회 참여 이력을 거쳐왔는데, 작품 집필을 자극한 구체적인 경험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박이웅 선거캠프에서 일하면서 정치인 주변을 떠도는 여러 사람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 느낀 건, 정치인 개인보다 그 주변에서 자기 욕망을 대리 실현하려는 집단의 유해함이었다. 이야기에서 악당을 설계할 때도 개인보다는 어떤 세력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아무도 악하지 않은데 집단의 이기심이 모이면 악해지는 모습들을 혜영과 대조하며 써내려갔다.

김혜윤 분노를 파괴적으로 표출하는 인물이다보니 잘 모르고 보면 혜영을 그저 폭력적인 인물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혜영은 순수한 희생양에 가깝다. 억울하게 사기를 당한 아버지와 동생 혜적을 지키려다 보니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디테일에 손이 많이 가는 영화였으리라 예상된다. 제작비를 충당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지원 사업이 물꼬를 열어줬나.

박이웅 투자쪽에서는 배급을 잡아오라 하고, 배급쪽에서는 투자를 먼저 받으라고 하는 상황에서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지원금이 다른 추가 투자를 받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예산만 고려하다보면 다양성영화의 창작 범위가 좁아질 수 있는데, 투자의 마중물이 필요한 중소 규모 프로덕션들도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다. 또 도시와 농촌, 개발과 난개발이 혼재하는 경기지역 특성상 로케이션의 다양성도 훌륭하다. 서울에서는 허가를 받기 쉽지 않은 부촌이나 거리 로케이션도 촬영 지원을 받을 수 있어 프로덕션에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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