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감독들의 공통점이 있다. 최상의 팀을 꾸리되 팀을 자기가 원하는 형태로 통제하려 들진 않는 것이다. 좋은 멤버들을 자기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데려다놓는 걸로 이미 충분하다. <님아> 시리즈가 순항할 수 있었던 건 각국의 사정과 배경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가운데 사람에 초점을 맞출 줄 아는 좋은 감독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님아> 시리즈의 총괄제작으로서 진모영 감독의 역할은 각국 감독들에게 최대한 연출의 자율권을 보장해주되 <님아>의 취지와 정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끊임없이 피드백을 해주는 일이었다.
가령 일본의 도다 히카루 감독의 경우 사회적인 이슈를 탐사하는 독립다큐멘터리를 주로 찍어왔고 자연스럽게 이와 관련된 인물을 관찰의 대상으로 꼽았다. 한센병을 앓으면서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되어온 하루헤이와 동반자 키누코의 사연은 그렇게 카메라에 담긴다. 동시에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인물 바깥의 사연에 대해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진모영 감독은 각국 감독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촬영이 시작된 후로 한달마다 보내오는 촬영 컷을 보고 의논하는 과정을 열두달 동안 반복했다. 가편집 작업에도 여러 번 피드백을 전달했는데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의견을 좁혀나가는 과정 자체가 기쁨이었다.”(진모영 감독)
소통을 통한 변화의 즐거움을 느끼는 건 각국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키누코와 하루헤이 부부의 사연을 만나기까지 5개월간 일본 전국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 도다 히카루 감독은 키누코와 하루헤이 부부를 설득하고 동참시키는 과정 역시 마음의 빗장을 푸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각국의 베테랑 감독들의 역량이 빛을 발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의 1년을 기록한다는 단순한 구조에 끌렸고, ‘함께 살아간다’는 내 나름의 테마에 도전하고 싶었다.”(도다 히카루 감독) 그렇게 “좋은 의미에서의 잔잔한, 커다란 서사가 아닌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도다 히카루 감독) 취지를 설명하고 오랜 시간 공들여 커플들을 설득한 끝에 각국의 다양한 배경을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운 구성이 완성됐다.
동시에 사람 사는 모양은 제각각일지라도 진심은 닮는 법이다. “자연, 기후, 건축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고, 인물과 문화적 다양성, 차이들이 많아 보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커플들의 사랑의 방식들은 너무나 닮아 있다.”(진모영 감독) 믿고, 기다리고, 교감했던 시간의 결과물. 믿음의 벨트로 묶인 아름다운 관계들은 카메라에 찍히는 사람뿐 아니라 찍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피어난다.
<일본: 키누코와 하루헤이>
감독 도다 히카루
한센병으로 15년간 요양소에 있었던 하루헤이. 그곳에서 일하던 키누코 덕에 그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하루헤이가 아내를 돌볼 차례. 키누코의 몸에 종양이 있다.
“하루헤이와 키누코를 만나고 두분의 따뜻한 인품과 열린 생각에 매료되었다. 자신들의 생활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두분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여쭤봤다. 키누코는 99.9%는 각오가 되어 있고 자신들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이 ‘각오’라는 말에 참으로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의 ‘찍히는 것에 대한 각오’와 ‘보여지는 것에 대한 각오’를 촬영하는 입장인 우리와 작품을 보는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공은 이제 이쪽으로 넘어왔다.”(도다 히카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