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위도우>에서는 나타샤의 어떤 면을 보여주려고 했나. 전작에서는 감춰졌던 이야기인데.
스칼렛 요한슨 영화의 초반 나타샤는 진정으로 혼자가 된다고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이 말했다. 나타샤는 레드룸의 피해자로서 원치 않았던 일에 가담한 적 있다. 그런 다음 쉴드의 일원이 되고 어벤져스 멤버가 되었는데, 언제나 조직의 구성원으로 존재했던 그녀가 갑자기 어딘가로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숨 막히게 느껴질 때 즈음 나타샤의 과거와 관련된 인물인 옐레나가 나타난다. 나타샤는 의지를 갖고 그의 과거와 대면하는 일에 뛰어든다. 나타샤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우리는 한번도 나타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잖나. 그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기 좋은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타샤는 <블랙 위도우>에서 의심과 회의로 가득하다.
-나타샤의 이런 복잡한 맥락은 일찍이 우리가 보지 못했던 면이다. 특히 <블랙 위도우>의 나타샤는 성적으로 대상화되지도 않는다. 나타샤와 옐레나가 블랙 위도우의 시그니처 포즈를 두고 농담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에게 할 질문 같다. (웃음) 나는 블랙 위도우의 포즈를 각인시키는 데 10년이 걸렸는데 플로렌스는 단 몇초 만에 그걸 찢어놓고 가져가버렸다. 아주 채를 썰어서 쿵쿵 밟아버렸다. (웃음)
플로렌스 퓨 잠깐만, 옐레나가 포즈를 따라하는 걸 나타샤도 좋아했고 가끔 웃어줬잖나!
-플로렌스 퓨는 옐레나가 나타샤와 관련된 인물이란 걸 관객에게 납득시키면서도 나타샤와 상관없이 독특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옐레나를 각인시킨다. 옐레나란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나.
플로렌스 퓨 대본에서부터 명백하게 표현돼 있었다. 두 캐릭터 사이에는 연결점이 있고, 둘의 관계도 명확했다. 옐레나에 몰입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감독은 옐레나가 어떻게 움직일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방식으로 사고할지에 이미 알고 있었다. 옐레나는 레드룸에서 빠져나와 이제 막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인물이다. 그녀는 레드룸의 유니폼이 아닌 그녀만의 옷, 주머니가 많이 달린 조끼를 입고 굉장히 좋아한다. (웃음)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옐레나가 스스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발전해간다.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과 플로렌스 퓨는 훌륭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처음 촬영한 장면은 무엇이었나.
플로렌스 퓨 부다페스트 은신처에서 두 캐릭터가 싸우는 장면. 나는 촬영 첫주에, 스칼렛은 촬영 2주차에 이 장면을 찍었다. 이 시퀀스는 심지어 내 첫 촬영, 첫신이었는데 스칼렛을 벽에 던지는 장면이었다. 스칼렛은 내 얼굴을 싱크대에 처박았고. (웃음) 스칼렛과 서먹한 관계를 트는 데 바닥에 드러누워 레슬링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웃음)
스칼렛 요한슨 그 장면이 아이스 브레이킹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들 알겠지만 플로렌스는 정말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다. 플로렌스는 춤을 춘 이력이 있다(플로렌스 퓨의 어머니는 댄서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춤을 춰왔다.-편집자). 플로렌스는 모든 액션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고, 액션 연기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나타샤와 플로렌스가 싸우는 신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감정을 동반한 싸움이다. 어떤 목적이랄 게 없이 두 사람이 불만을 표출하는 행위이자 일종의 권력 투쟁이고 상대에 대한 진심어린 애착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레이철 바이스는 예측할 수 없고 복잡한 캐릭터인 멜리나를 연기했다. 멜리나는 선했다가 악했다가 어떨 때는 선악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로서 복합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레이철 바이스 나는 여성감독이 연출한 여성 서사를 사랑한다. 극중 ‘레드 가디언’ 알렉세이의 서사도 물론 사랑하지만 무엇보다 <블랙 위도우>가 좋았던 건 세명의 복합적인 강한 여성들의 이야기란 점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멜리나는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라고 느꼈다. 20년이 흐른 후 가족이 다시 모인 장면이 등장한다. 어쩌면 정말 기뻐야 해야 하는 장면인데 멜리나는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유머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모습을 보인다.
-알렉세이는 반대로 엄청나게 웃긴 캐릭터다.
데이비드 하버 알렉세이의 개성 넘치는 모습은 과거 그가 내린 선택으로 인한 슬픔과 회한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보여주는 코미디는 결국 그의 자아에서 나오는데, 그의 코미디는 회한의 감정을 막기 위해 쌓아올린 방벽 같은 것이다. 그는 뭐든 과장해서 이야기한다. 그가 자초한 실패들에 대한 감정을 멈추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다. 이 가족의 관계도 재밌는 것 같다. <블랙 위도우>에는 전통적인 식탁 숏이 등장하는데, 아버지는 식사 때 가장 늦게 나타나 식탁의 상석에 앉는다. 막내딸과 엄마가 나란히 앉고, 장녀는 맞은편에 자리 잡는다. 전통적인 가족 내 역할 분담 클리셰를 이용한 장면인데, 이는 재회 신에서 한번 더 변주된다.
-공통 질문이다. 어벤져스 히어로 중 누군가와 팀을 이뤄야 한다면 누구를 택하겠나.
데이비드 하버 나는 팔콘을 정말 사랑한다. 팔콘을 연기하는 배우 앤서니 매키를 정말 좋아한다. 지금 팔콘은 캡틴 아메리카의 슈트를 입었고, 알렉세이는 캡틴 아메리카 슈트를 입은 사람이면 누구든 싫어할테지만 팔콘과 팀을 이루겠다.
레이철 바이스 헐크.
플로렌스 퓨 오 노, 내가 헐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레이철 바이스 미안.
플로렌스 퓨 제발 헐크를 함께 나눠주면 안되나.
레이철 바이스 그럼! 그를 제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최종 병기가 될 것이다.
플로렌스 퓨 멜리나라면 헐크를 제어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퇴장했다는 점이 <블랙 위도우>를 연기할 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스칼렛 요한슨 맞다. 솔로 영화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나온 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찍고 있을 때다. 우리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다음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연이어 마무리를 했다. 솔로 영화를 구상할 때 이미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나타샤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다. 우리는 나타샤가 과거로 돌아가 그녀가 활동할 공간을 만들어줘야 했다. 그녀의 삶을 찾아서 버리고 떠난 바로 그곳(레드룸)으로 돌아간 나타샤가 그곳에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나타샤의 이야기는 프리퀄로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연기하는 건 말도 안되는 기묘한 방식이란 걸 알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는 <블랙 위도우>를 만들기 전까지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에 출연한 적이 없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촬영 당시) 지금 연기가 실은 미래에 속하는 일이고, 과거의 반영이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블랙 위도우를 연기해온 스칼렛 요한슨은 팬들이 블랙 위도우란 캐릭터를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나.
스칼렛 요한슨 포즈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플로렌스가 집어치워버렸지만. (웃음) 블랙 위도우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스스로에 대한 호기심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호기심이 그녀를 눈에 띄는 슈퍼히어로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랫동안 블랙 위도우를 연기하면서 발견한 그만의 빼어난 가치는 그의 호기심이었다. 물론 블랙 위도우만의 포즈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웃음)
-블랙 위도우가 스칼렛 요한슨이란 배우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게 있다면.
스칼렛 요한슨 나는 오랫동안 이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블랙 위도우를 연기하기 전인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두려움이 덜 느끼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내 삶을 긍정적으로 꾸릴 수 있게 됐고, 과감하게 뛰어들고 위험을 감수하는 걸 어렵지 않게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