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새로운 비극의 시작을 알린 '킹덤: 아신전' 리뷰
2021-07-26
글 : 김현수
여성 안티 히어로, 피의 복수를 시작하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7월 2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아신전>(이하 <아신전>)은 김은희 작가가 창조한 <킹덤> 시리즈의 거대한 세계관 내에서 독특한 위치에 놓인 작품이다. 총 12부로 이뤄진 두 시즌의 이야기가 진행된 상황에서 <아신전>은 특정 캐릭터의 사연을, 그것도 이전 시즌에서는 한번도 본 적 없었던 미지의 캐릭터의 사연을 별도의 에피소드로 따로 빼내어 구성했다. 주인공은 바로 시즌2 엔딩에 잠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배우 전지현이 분한 캐릭터, 아신이다.

시리즈 드라마의 입장에서는 독자적인 스페셜 편성이지만 사실상 한편의 영화에 가깝다. 구성상의 시도도 새롭지만 그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신전>이 파격적이다 못해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극단적인 캐릭터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생사역 사태의 근원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지만 숨겨진 비밀은 더 있다. 제작 여부가 확정되지는 않은 시즌3를 향한 최선의 발걸음이 아닐 수 없다.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킹덤>의 전체 세계관에 비추어 <아신전>의 위치를 살펴보는 리뷰와 이번 편의 연출을 맡은 김성훈 감독의 인터뷰를 실었다. <씨네21>의 다음호에는 김혜리 기자가 만난 김은희 작가와의 인터뷰도 준비되어 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아신은 누구인가. <킹덤> 시즌2 엔딩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신원 미상의 인물 아신(전지현)은 김은희 작가의 소개에 따르면 “생사초의 비밀과 가장 근접한 인물”이다. <아신전>은 시기상으로 조선의 왕이 생사역에 걸린 괴물이 되기 훨씬 이전 시기를 다룬다. 아신이 아직 어린 소녀이던 시절, 생사역이 조선 땅을 뒤덮기 훨씬 이전, 압록강을 마주하며 조선군과 여진족이 대치하며 살던 때의 일이다.

아신은 조선 땅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여진족 가운데 ‘성저야인’이라 불리던 이들의 자식이다. 이들은 여진족에게도 조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살고 있다. 천한 신분으로 부락을 일구며 백정 노릇으로 먹고살던 이들은 출입을 금한 폐사군 주변에 모여 살았는데 아신의 아버지 타합(김뢰하)은 압록강 일대와 여진족 부락의 치안을 담당하던 민치록(박병은)의 수하에서 밀정 노릇도 하는 인물이다.

아버지 타합이 조선과 여진 사이의 군사적 대립 속에서 곤경에 처하게 되자, 아신은 두 민족의 접경 지역에서 여진족을 핍박하는 조선의 군사들에 둘러싸인 채 어린 몸을 홀로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때 아신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폐사군에서 자라고 있던 생사초라는 미지의 풀. 죽은 자를 되살리는풀, 생사초의 비밀은 그렇게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앞선 두개 시즌에서 이창(주지훈)과 서비(배두나) 일행은 왕과 백성의 목숨을 앗아간 생사초의 비밀을 캐고, 나아가 조학주 대감(류승룡)과 중전(김혜준)의 암투에 맞서 싸우며 왕과 백성의 관계를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왕권 찬탈의 소용돌이에서 한발 물러서 생사초의 기원을 찾아 북녘 땅까지 다다르게 된 이창은 시즌2 엔딩에 이르러 아신을 만나게 된다. <아신전>을 보고 나면 이창과 아신의 만남이 앞으로 어떤 파급력을 갖게 될지, 즉 시즌3에 대한 큰 기대와 의문을 동시에 품게 될 것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시즌에서 뿌려두었던 의문점을 해소하던 순간을 되짚어보자. 시즌1에서 안현 대감(허준호)과 조학주가 손을 맞잡고 작전을 펼치던 상주 싸움은 병들어 죽어가던 수망촌의 백성들을 생사역 괴물로 만들어 왜적에 맞섰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수많은 이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준 상주의 비극은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종묘사직을 위해 백성의 희생도 마다지 않았던 조학주의 야욕이 만들어낸 참상이었다. 생사초의 비밀을 찾아 나선 이창은 조학주와는 다른 선택을 하며 살겠다 다짐하는 인물이며, 나라의 진짜 근간인 백성을 올바로 섬기기 위해서 왕위까지 벗어던진다. 이창의 고민과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아신전>의 아신과 대척점에 놓이게 된다.

아신은 선한 인물인가. 악한 인물인가. 이는 <아신전>에서 다루는 아신의 고통받는 삶을 보고 나면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다. 누군가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액션 히어로 같은 면모를 자랑하는 아신의 모습을 기대하겠지만,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은 이전 시즌에서도 본 적 없는 놀랄 만큼 끔찍하고 처연한 살풍경을 펼쳐놓는다. <아신전>은 쉽게 말해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오랫동안 고통받으며 살아온 아신의 잔혹한 복수극이다. 그녀가 흩뿌리는 피의 방향이 결국 한 나라의 왕에게로 가장 먼저 가닿게 되는 전체 이야기의 얼개가 기가 막히게 짜맞춰진다.

김은희 작가는 <아신전>을 통해 <킹덤>의 전체 세계관을 이루는 핵심적인 주제를 더욱 확장시킨다. 인간의 육체를 탐하는 생사역의 물리적 행태를 민초들의 배고픔에 빗대어 묘사했던 <킹덤>은 역병으로 인해 양반과 백성 사이의 계급 관계, 나아가 종묘사직의 근간이 흔들리는 광경을 보여주며 일종의 쾌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 인간의 복수심이 나라 전체로 뻗어나가는 <아신전>을 갖게 된 <킹덤> 시리즈는 새로운 충격과 비극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성인 아신을 연기한 배우 전지현이 전작 <암살>에서 활극 액션을 통해 보여줬던 액션 배우로서의 면모는 피의 살육전을 선사하는 <아신전>에서 빛을 발한다. <아신전>의 아신은 전지현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안타고니스트의 매력을 보여준다. <킹덤>의 시즌 전체를 되짚어보면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아이의 시체를 삶아 먹여 생사역의 감염 원인을 제공한 영신(김성규)이나 아들의 시신을 훼손할 수 없어 끝내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를 위태롭게 만든 어미, 자식에게 먹이기 위해 곳간을 털었다가 마을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이방 등 모두가 시대가 낳은 비극의 희생양이다.

하지만 아신의 선택을 보고 난 시청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 같다. 생사초의 비밀을 끝까지 밝히고 백성들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창과 조선 땅의 모든 목숨을 해할 복수심에 가득 찬 아신이 만났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아신전>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여진족을 평정한 파저위의 수장 아이다간(구교환)과의 대립까지, 3자 구도가 앞으로 어떤 소용돌이를 가져다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아신전>이 반짝반짝 빛나는 여러 이유 중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여성 안티 히어로의 각성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올여름은 아신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아신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킹덤: 아신전>의 배경이 된 역사적 사실들

사진제공 넷플릭스

생사초의 비밀을 품은 곳, 폐사군

4군(四郡) 6진(六鎭), 폐사군(廢四郡). 조선시대 북방의 여진족을 다스리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나눈 행정구획을 뜻한다. 지금의 압록강 상류 지역에는 4군을, 두만강 하류 지역에는 6진을 두어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는 동시에 이들을 다스리기도 했던 국방상의 요충지다.

조정에서 수십년간 이곳을 다스리다가 ‘폐사군’이라 칭하고 강제적으로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고 폐쇄 조치를 내리는데, 심한 대륙성기후를 띤 곳이며 민간의 출입이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폐사군이 바로 <아신전>의 주요 배경이다. 이곳에 찬 성질을 띤 생사초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극중 여진족들이 조선 땅에 들어와 모여 살던 마을은 ‘번호부락’이라고 불렀다. 번호부락에 살던 아신이 폐사군을 몰래 들락거린다.

아신의 무기, 활

생사역에 걸린 괴물에 대항하는 인물들은 검과 조총을 기본 무기로 활용하는데, 그중 활은 무서운 속도로 접근 가능한 생사역 좀비들로부터 원거리에서 신속하게 자신을 보호하며 공격할 수 있는 무기다. 조선과 여진 땅 어디에도 속해 살 수 없었던 아신은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홀로 습득하여 들짐승을 사냥한다. 몸집이 작고 체력적 한계가 뚜렷한 어린 아신은 활을 수렵과 전투용으로 활용한다. 눈치 빠른 시청자들은 시즌2의 엔딩에 등장한 성인 아신이 등에 메고 있는 길고 넓적한 칼을 보았을 것이다. <아신전>으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뒤의 모습이니, 아마도 시즌3가 만들어진다면 활과 칼을 동시에 쓰는 아신의 액션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파저위의 수장, 아이다간

배우 구교환이 연기하는 아이다간은 만주 지역 여진족을 평정한 인물이다. 몇 장면 등장하지 않지만 거대한 악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인물이다. 김성훈 감독은 캐스팅 단계 때부터 “육체적으로 월등해 보이는 악한 존재라는 상투적 묘사를 비틀고 싶었다”고 말했다. “<꿈의 제인>을 보면서 구교환에 빠져들었다. 여리고 순진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반전의 순간들이 담겨 있었고 알 수 없는 이면을 지닌 아이다간의 면모에 제격이었다.” 아이다간은 이창 일행과 아신이 맞이하게 될 새로운 위기에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될 인물이라 예측할 수 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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