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좀비영화와 다르다. <방법: 재차의>(이하 <재차의>)의 되살아난 시체들은 날렵하게 달리는 건 물론 카 체이싱 액션까지 펼친다. 이들은 주술사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말도 할 수 있는 시체다. 이들의 이름은 재차의(在此矣), 풀이하면 ‘여기 있다’는 뜻이다. 고려 문신 한종유가 출세하기 전, 손과 발을 검게 칠한 뒤 초상집을 찾아가 죽은 자인 척 “아재차의”(我在此矣)라고 말해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는 이야기에서 전해지는 존재로, 되살아난 시체를 총칭하는 조선식 표현이다.(<용재총화>)
<재차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전작 tvN 드라마 <방법>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이어간다. 사람에게 저주를 걸어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방법사 백소진(정지소)과 그가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기자 임진희(엄지원) 듀오는 영화에서도 끈끈한 관계로 등장한다. 어느 날 진희 앞에 신원 미상의 남성이 나타나 승일제약 임원 세명에게 살인사건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고한 뒤 흙처럼 부서져버리는데, 진희는 그가 주술사의 조종을 받는 재차의라는 걸 알게 되고 이번 사건 역시 영적인 문제임을 깨닫는다.
“위계사회의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연상호 작가는 결재 서류의 서명 순서대로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상황을 떠올리면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추는 이야기를 탄생시켰고 김용완 감독은 연출을 맡아 속도감 있고 독특한 재차의들의 움직임을 창조해 영화에 오락성을 더했다. 첫 살인이 예고된 현장에 재차의 100여명이 나타나 ‘칼군무’에 가까운 액션을 펼치는 모습은 <재차의>만의 독창적인 액션 시퀀스다.
소진과 진희처럼 짝을 이뤄 협업하는 김용완 감독과 연상호 작가는 드라마 <방법>이 막을 내린 지 1년3개월 만에 <재차의>를 내놓았다. <재차의> 개봉에 앞서 김용완 감독과 연상호 감독을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이 <방법> 유니버스 속에서 더 펼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협업하는 방식은 어떠한지 물었다
-엄지원 배우가 <방법> 촬영이 끝날 때쯤 <재차의>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하던데, 영화 시나리오를 언제 집필한 건가.
연상호 <반도>를 준비할 때 <방법> 대본을 썼고, <반도> 후반작업을 할 때 <재차의> 시나리오를 썼다.
-드라마가 끝난 뒤 바로 영화 제작에 들어간 셈이다.
김용완 배우와 스탭 모두 영화가 드라마 시즌2와 같다고 느꼈다. 영화 대본을 바로 받고 각색 작업 등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갔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무속신앙과 굿이 핵심이었다면, <재차의>에서는 재차의의 몹신이 중요했다.
김용완 드라마 촬영 때 조민수 배우가 굿 신 연기를 너무 잘해서 내 인생에서 더이상 굿 신을 못 찍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영화에서는 드라마와 비슷한 무언가가 아니라 새로운 볼거리가 나와야 했다. <용재총화>에 등장하는 재차의를 작가님이 영화에 맞게 이미 흥미롭게 설정해뒀다. 재차의는 손과 발이 검고, 주술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말도 할 줄 알고 운전도 할 수 있다. 이 점이 기존 좀비와 다르다. 시나리오 초고에는 일반 사람들처럼 다양한 옷을 입은 것으로 묘사됐던 재차의에게 똑같은 의상을 입힌 건 내 아이디어였다. 이들이 같은 옷을 입고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면 압도적인 비주얼을 표현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상호 본래 부두교에서 나온 좀비는 주술사가 살린 시체들인데, 주술사가 농사일을 시켜서 농사도 짓던 존재다. 우리가 영화에서 본,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과는 다르다. 재차의는 어쩌면 그동안 좀비물이 아닌, 부두교의 좀비 원형에 가깝다.
-재차의는 <용재총화>에 짧게 서술돼 있던데, 어떻게 상상을 덧대어나갔나.
연상호 <용재총화>와 <어우야담>에 재차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 서술방식이 독특했다. 저자는 재차의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걸 알리겠다는 투로 써두었다. 왜 다른 기묘한 설화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서술해놓고 재차의에 대해선 가짜란 투로 썼을까 궁금했고, 혹시 재차의가 외국 미신이라고 들춰내려고 그런 게 아닐까 상상했다. 그렇다고 아이티의 부두교가 그 옛날 조선에 전해졌을 리도 없다. 본래 시체를 살리는 건 흑마술의 일종이라 아시아 내 흑마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찾아보니 인도네시아에 두꾼이란 흑마술사가 있었다.
-<방법> 마지막회에서 소진은 자신과 같은 이누가미 악귀에게 씌인 진종현 회장(성동일)을 제거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배트맨이 일을 마치고 자취를 감추는 것 같은 퇴장이었다.
연상호 <방법> 세계관에서 현재 진행형인 질문은 ‘소진이 선한 존재냐, 악한 존재냐’는 것이다. 소진은 드라마 초반 사람들을 죽였다. 물론 그 상대가 나쁜 사람이지만, 죽임을 당할 정도로 나쁜 사람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그랬던 소진이 진희를 만나 어떤 기회를 얻는다. 소진이 사망하면서 드라마를 결론짓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우리가 선택한 건, 일종의 유보였다. 그리고 <재차의>는 그 유보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간이 흐른 뒤 소진이 귀환하는 이야기다.
-3년간 떠돌다가 돌아온 소진은 중국에서 악귀를 이용할 여러 방술을 배워왔다.
연상호 드라마에서 무당 진경(조민수)은 배운 게 많고 재능보다 노력으로 성장한 노력파라면, 소진은 재능을 타고난 아이였다. <재차의>의 소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지식을 연마한다는 점도 재밌다.
-소진이 결계를 칠 때 중국의 스승으로부터 얻은 나뭇가지를 사용한다. 중국 설화와 관련이 있나.
김용완 코로나19로 해외에서 촬영을 못하니까 국내 로케이션 중에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들도록 촬영했다. 극중 소진이 진희와 재회해서 결계를 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스승에게 받은 도구를 쓰면 좋겠다 싶어서 작가님에게 제안했다.
연상호 시나리오를 위해 조사하던 중 알게 된 건데, 서점에 가면 부적과 관련된 도서가 매우 많았다. 흔히 만화 캐릭터가 선보이는 결계 손동작을 기술한 책도 있었다. 소진이 결계를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손동작을 어떻게 표현할까 감독님과 많이 논의했으나, 결계를 한국 영화 관객이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여서 나무를 이용해서 그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용완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배우가 직접 결계 손동작을 해봤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연상호 애니메이션 <나루토>에서는 되게 멋있는데…. (웃음) 이 세계관이 깊어지면 나중에 손동작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진희에게도 변화가 많았다. 메이저 언론사 <중진일보>에서 나와 독립언론을 차린 것으로 묘사된다.
연상호 <방법>의 세계관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많이 나온다. 이런 현상을 사회가 얼마나 받아들일지 생각해보면, 완전히 수용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진희가 <중진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인정받지 못하고 대기 발령 수준의 대우를 받아 구석 어딘가에 책상 하나만 놓고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보다는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독립적인 선택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전작에도 등장했던 도시탐정 김필성(김인권)과 연합해서 조그마한 독립언론채널을 꾸린다는 설정이 생겨났다. 사이비 기자 취급을 받으면서 회사를 나오게 됐다는 건 김용완 감독님이 준 설정이다. <방법>의 진희가 일반적인 사람이었다가 갑자기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게 된 인물이었다면, <재차의>의 진희는 의심의 과정을 다 겪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 믿는 상태에서 활동적으로 움직인다.
카 체이싱과 재차의 군단의 몹신
-카 체이싱 액션 시퀀스는 승합차를 운전하는 진희와 돌진하는 재차의 군단이 책임진다. <반도>의 SUV, 덤프트럭 신에 이어서 이번엔 승합차다. 연상호표 카 체이싱은 SUV, 승합차 등 대형차량쪽인 것 같다.
연상호 매끈한 스포츠카로 카 체이싱 액션을 펼치는 것보다 큰 차량으로 둔탁하게 질주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웃음) 왠지 한국적으로 느껴진다.
-터널에서 펼쳐지는 카 체이싱은 로케이션과 세트 촬영을 섞은 것으로 알고 있다. 비율이 어느 정도였나.
김용완 재차의가 무리지어 등장해서 달려오는 숏부터 터널로 빠져나오는 마지막 숏까지, 12분쯤 되는 이 시퀀스를 관객이 보면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쭉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실제 촬영 공간은 여러 군데로 쪼개져 있었다. 재차의가 달려오는 장면은 서울 마곡에서 찍고 터널 진입 전까지는 인천에서, 터널 내부는 창원에서 촬영했다. 전체의 80% 이상이 로케이션이고 터널 내부에서 재차의가 차량에 올라타는 위험한 장면만 세트장에서 찍었다.
-재차의가 맹렬하게 달려드는 숏은 카 체이싱으로 끝나는데, 몹신과 카 체이싱 중 어떤 장면이 더 까다로웠나.
김용완 둘 다 어려웠는데,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재차의가 달려오는 장면이다. 우리가 만든 재차의는 좀비와 달리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차의의 움직임이 좀비와 달라야 했고, 뛰는 자세도 다르고 팔동작도 달라야 했다. 이에 대한 정답이 없다보니 전영 안무가, 최봉록 무술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디테일을 만들어갔다. 레퍼런스가 될 만한 영상을 일주일에 서너개씩 주고받으면서 두달간 지난하게 짜낸 움직임이다.
연상호 기본적으로 <재차의>의 재차의는 <부산행>의 좀비와 완전히 다르다. <부산행>에선 좀비들이 어떻게 튈지 모르는 게 포인트였다면 재차의는 똑같이 움직이는 게 포인트다.
김용완 칼군무다. (웃음)
연상호 사실 독특함과 새로움과 우스운 건 정말 한끗 차이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우습지 않고 독특한 움직임을 만들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는 게 힘들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공포스럽다고?’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존 작품과 비슷하게 안정적인 길만 선택하면 관객에게 새롭다는 인상을 남길 수 없다.
상상마당에서 시작된 인연
-두분의 협업이 계속되고 있는데, 언제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궁금하다.
연상호 예전에 KT&G상상마당 대단한단편영화제에서 심사를 한 적 있다. 그때 내가 김용완 감독에게 감독상을 드렸다. (웃음)
김용완 내겐 은인이시다. 2014년 제8회 대단한단편영화제에서 <이 별에 필요한>이란 단편으로 상을 받았다. 당시 작가님에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인사드리고 6년간 서로 연락처도 모른 채 지냈다. 그러다가 변승민 클라이맥스 대표님이 작가님과 나를 연결해줬다.
연상호 대본을 본 김용완 감독님이 “이렇게 연출하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해줬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짚어서 좋았고, 이분이 연출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방법>에서 주봉 역의 이중옥, 소진 모인 석희를 연기한 김신록 같은 보석들이 많이 등장했다. 드라마 때부터 두분이 함께 캐스팅했나.
김용완 대본을 보고 “이 배우 어떨까요? 저 배우 어떨까요?”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중옥 배우는 연 작가님이, 김신록 배우는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작가님이 제안도 많이 하시지만, 캐스팅의 최종 권한은 내가 갖고 있다고 존중해주신다.
연상호 감독님이 단편 때부터 쌓아온 배우들과의 인연이 많다. 김신록 배우의 경우는 사실 나는 전혀 몰랐던 분이다. <방법>을 보면서 김신록 배우에게 너무 빠져서 <지옥>에 캐스팅했는데, 함께 작업하면서 정말 좋은 배우라고 느끼고 있다.
-<방법> 시즌2는 언제 볼 수 있나.
연상호 결재하는 분들의 오더가 떨어져야 한다. (웃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방법> 시즌2는 아니지만 <재차의>에서 이어지는 세계관을 가진 티빙 오리지널 <괴이>(연출 장건재)가 다음달 촬영에 들어간다. 내년 상반기 공개 예정이다. <괴이>는 <재차의>에 나온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새로운 인물들이 극을 이끄는 새로운 이야기다. 진희가 쓴 책 <혐오와 주술>을 파헤치는 어떤 고고학자 부부의 이야기다. 이 캐릭터들이 <방법> 시즌2에선 진희와 소진을 조력하는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방법> 세계관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두분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믿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상호 내가 내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안 믿는다기보다 관심이 없다. 내 머리로 생각해봐야 답이 나올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김용완 나는 아무래도 인정하는 쪽인 것 같다. 초자연적인 부분이 존재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방법>의 주제처럼 이를 맹신하지 말자는 게 내 신조다.
드라마 <방법>을 안 본 이들을 위한 <방법> 유니버스 트리비아
방법 謗法
사람을 저주해서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는 것. 방법을 당한 사람은 팔과 다리, 목이 관절 반대방향으로 꺾여 죽음에 이른다. 방법사(謗法師)는 방법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방법사 소진은 저주하고 싶은 사람의 신체와 직접 닿으면 방법을 할 수 있는데, 상대의 손가락을 붙잡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 있다. 상대가 멀리 떨어진 경우, 그의 소지품과 한자 이름과 사진만 있으면 방법을 걸 수 있다. 그렇다고 소진의 방법이 100% 통하는 것은 아니다. 저주를 걸 상대가 귀신 들린 물건을 곁에 둘 경우 방법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악귀 이누가미
일본에서 건너온 악귀인 이누가미는 ‘개신’이라고도 불린다. 개를 잔혹하게 죽여서 만들어낸 악귀이기 때문이다. 이누가미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개가 머리만 내놓을 수 있는 만큼 땅을 파고 개를 묻는다. 입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며칠 동안 굶주리게 한다. 그런 다음 개의 머리를 쳐서 죽음에 이르게 한다. 괴롭게 죽은 개는 사람을 저주하는 한 많은 악귀가 된다. 무당의 딸 소진은 이누가미에 씌어 어머니보다 신통한 아기동자였다.
<방법>의 악당들, 진종현 회장, 무당 진경, 무당을 돕는 주봉
IT 기업 포레스트의 진종현 회장은 소진의 어머니 석희에게 굿을 잘못 받아서 악귀가 됐다. 진 회장이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시절에 사업상 어려움을 겪자, 그의 어머니가 무당인 소진 모에게 굿을 받도록 했는데 그 과정에서 소진의 이누가미가 그에게 들어갔다. 석희는 딸의 이누가미를 진 회장에게 옮겨버릴 목적으로 진 회장을 속였으나, 굿이 실패하는 바람에 소진의 이누가미도 그대로 존재하고, 진 회장까지 악귀에 씌어버렸다. 진 회장은 무당 진경과 작당해 자신을 속인 석희를 살해했다. 드라마 후반부에 진경과 진 회장이 소진의 방법에 의해 사망하고, 진경을 돕던 소시민적인 인물 주봉만이 살아남아 <재차의> 쿠키 영상에 깜짝 등장한다.
도시탐정 김필성
흥신소 ‘도시탐정’을 운영하는 필성은 스스로를 전직 경찰이라고 소개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진 회장을 방법하기 위해 진 회장의 물건을 훔쳐오는 일을 맡으면서 필성은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남다른 기억력과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 그는 진 회장을 둘러싼 수사에 큰 도움을 주면서 결론적으로 진희, 소진에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 된다. <재차의>에서 필성은 진희와 합심해 독립뉴스채널 도시탐정을 설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