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1의 총 6부 전체와 시즌2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그는 김은희 작가로부터 거대한 ‘킹덤’ 세계관의 출발점이 된 <아신전>에 관한 아이디어를 처음 들은 그날의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의 출발점과 종착점을 교묘하게 이어주면서 등장인물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국면을 심어주는 놀라운 이야기였던 까닭에, 그는 주저 없이 “한번 더” 연출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
김은희 작가와 함께 전체 세계관 창조의 출발선부터 함께해온 동료로서, 그리고 장편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으로서도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준 <아신전>의 연출 과정에 관해 물었다. 그는 어떤 제작 계획도 정해지지 않은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자주 내비쳤다.
-<킹덤> 시즌1을 만들 때, 시즌2의 첫 에피소드를 거쳐 <아신전>까지 연출할 거라 예상했나. 혹은 김은희 작가와 언제부터 계획을 짜고 있었나.
=김은희 작가도 첫 번째 시즌을 만들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넷플릭스는 이미 많은 시리즈를 공개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땐 성공 여부를 알 수 없었으니까. 호기심에서 시작한 시리즈 제작이었지만 결과에 만족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작가님 역시 모든 걸 처음부터 구상했다기보다 이야기를 확장해나가는 방식으로 써온 것 같다.
-<아신전>의 구상 계획을 언제 처음 알았나.
=시즌2 제작 초기에 작가님으로부터 “이번엔 엔딩에 등장할 아신이란 인물이 있다. 그가 역병에 걸린 ‘생사역’ 사태의 서막을 여는 인물인데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고 시즌2 촬영 중반 즈음에 5장 분량의 트리트먼트를 받았다. 강원도 인제에서 촬영하던 때였는데 숙소에서 읽다가 깜짝 놀라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당신 천재 아닌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나, 만약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구상하고 있었다면 천재요 쓰다가 도중에 떠올렸다면 그래도 천재요”라고 이야기했다. 흥분됐다고 해야 할까. 김은희 작가 최고의 글을 읽었다고 생각했다.
-시즌제 드라마의 전체 구조 내에서 <아신전>은 ‘아신’의 과거, 즉 생사역의 기원을 다루는 시즌1의 프리퀄임과 동시에 시즌3의 오프닝 이벤트 역할도 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구성을 완성하는 데 있어 연출자로서의 고민은 무엇이었나.
=아직 김은희 작가가 시즌3의 대본을 쓰지는 않았지만 <아신전>을 첫 에피소드에 포함시켜 진행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편을 따로 빼내 시즌3의 디딤돌 역할을 하게끔 구성하면 새 시즌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마음껏 펼치는 데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시즌1, 2에서 생겨난 의문들, 가령 생사역의 기원을 여기서 밝혔으니 이로 인해 생기는 갈등으로 더욱 빠르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야기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미 펼쳐놓은 두 시즌의 내용에서 어긋나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신전>을 ‘스페셜 에피소드’라고 지칭하지만 독립된 한편의 영화이기도 하다.
=나도 용어가 낯설다. 처음부터 70~90분 사이의 분량이 될 거라는 예상을 하고 찍었다. 이전 시즌을 만들 때는 확실히 영화를 만들 때와 다른 호흡이 필요했는데 이번에는 영화를 만들던 때의 밀도와 호흡을 담으려고,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김은희 작가는 대본을 쓸 때부터 아신 역으로 전지현 배우를 염두에 뒀다고 하던데 그녀의 어떤 면이 아신을 연기하기에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나.
=시즌2의 대본 지문에 ‘전사와 같은 여인이 나온다’라고 되어 있었다. 아신은 뜨거운 아픔, 한을 품고 사는 무사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맡아야 했다. 아신은 아픔을 짓누르고 내색하지 않으며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 자신의 분노를 육체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배우여야 했다. 이런 모습을 이미 그는 <암살>의 저격수 안옥윤을 통해 보여줬다.
-어린 아신 역의 김시아 배우도 어려운 감정과 상황을 연기해야 했다.
=시아양과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들은 거의 다 오디션을 봤다. 어린 배우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 연기를 해야 할 수도 있으니, 대본의 설정상으로는 캐릭터의 연령대를 열어두고 20대 초반까지도 고려했다. 그런데 3차까지 진행된 오디션에서 시아양의 연기가 압도적이었다. 잔혹한 현장을 목도하고 복수를 다짐하며 자신의 감정을 거세하고 살아가는 역할을 맡기에 시아양의 실제 나이가 부담이 됐지만 오디션을 통해 그런 불안감을 불식시켰다.
-앞선 두 시즌과 <아신전>은 모두 촬영감독을 제외하고는 기존 제작진이 이어서 작업했다. 고락선 촬영감독과의 첫 작업이다.
=우연하게도 시즌마다 촬영감독이 계속 바뀌었다. 고락선 촬영감독은 <남산의 부장들>이나 <마약왕>에서 숏 길이가 굉장히 길고 느린 호흡의, 장중하고 무게감 있는 장면을 보여줬다. <아신전>에는 그런 힘이 필요했다. 촬영 면에서 시즌마다 각각의 장점이 있는데 이번엔 차가운 북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고 끔찍한 비밀이 내재된 곳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무겁고 어둡게 접근하고 싶었다. 그리고 감독님이 워낙 조명에 조예가 깊기 때문에 색채를 잘 잡아주셨다.
-어린 아신에서 성인 아신으로 전환되는 장면은 멧돼지를 사냥하며 활을 쏘는 역동적인 액션의 순간으로 꾸며졌다. 시나리오에서부터 정해진 장면이었나.
=그 장면은 작가님이 아신이 어딘가로 달려가다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렇다면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성을 줬으면 좋겠는데, 그녀가 달리면 왜 달릴까. 달리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어릴 때는 피하기만 했던 멧돼지를 제압하는 순간의 묘사가 아신의 성장을 함축해서 보여주기에 좋은 이미지였다.
-<아신전>을 보는 동안 시청자가 가장 궁금해할 질문은 ‘그래서 아신의 액션은 언제 등장하는가’일 것 같다.
=아신의 본격적인 액션, 그의 대활약을 언제 등장시킬지는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작가님과 함께 고민했다. 아신의 활약보다 그 상황에 이르게 된, 그의 마음속에 서려 있는 ‘한’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는 것이 이 작품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다만 그때까지 시청자를 사로잡게 할 장면들이 있어야 했기에 서브 플롯에 해당하는 생사역 호랑이와의 사투 장면을 넣었다. 그 이후에 어린 아신이 처한 상황, 그 쓸쓸한 감정에 시청자를 동화시켜야 했다. 오래 응축시켰다가 짧고 굵게 터뜨리자는 계획이었다.
-만약 시즌3가 제작된다면 연출자로서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 이번에도 연출을 맡고 싶나.
=감독으로서 매번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만 시리즈를 만들 때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괜한 걱정이었다. 이전 시즌의 미덕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가 펼쳐질 때 역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원래는 지난해 초에 모로코에 가서 차기작인 <피랍>을 찍었어야 하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미뤄졌고 때마침 <아신전>의 기획이 준비되어 찍을 수 있었다. 우선 <피랍>을 찍어야 하지만 최소한 다음 시즌이 이어진다면 한편은 더 연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