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도쿄올림픽 스페셜] 아신, 호크아이, 메리다… 스크린 속 활 쏘는 여전사들 베스트 5
2021-07-26
글 : 김소미

2020 도쿄올림픽 소식으로 떠들썩한 요즘, 활 쏘는 여자들의 위엄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금메달 9연패를 달성한 여자양궁의 기념비적 성과가 K-스포츠의 정점을 찍은 덕분이다. 여유만만하지만 압도적인 실력으로 “한국 여자양궁의 통치(domination)는 계속될 것”(AP통신)이라는 예언도 날아들었다. 올 여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매김한 여자들의 ‘정조준’을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도 찾아봤다. 배우에서 진짜 양궁선수가 된 할리우드의 지나 데이비스, <킹덤: 아신전>의 전지현, 2세대 호크아이로 등극한 헤일리 스테인펠드까지. 이제 대세는 총보다 화살이다.

<킹덤: 아신전>

전지현의 아신

전지현이 연기한 궁수 아신이 특별한 건 그가 기존 <킹덤> 시리즈의 세계관 바깥에 존재하는 이방인이어서다. 여진족 주인공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불러들인 <킹덤: 아신전>(2021)은 세자 창을 필두로 한 기존의 등장 인물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거칠고 야생적인 에너지를 아신의 활 끝에 불어넣었다. 일찍이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에서 저격수로 활약하는 독립군(안옥윤)을 연기했던 전지현은 이번에 장총을 내려놓고 그보다 훨씬 육중한 석궁을 잡았다. 황량한 북방을 누비며 <킹덤> 세계관의 주춧돌을 쌓아 올리는 아신은 가족을 위한 복수의 서사를 밟으면서 생사초의 기원도 하나 둘 풀어가는 <킹덤> 서사의 열쇠같은 존재다. 액션 스타가 되기 위해 타고난 듯한 신체에 철저한 자기관리까지 더해, 넷플릭스에서 원숙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전지현은 "생사역들과 몸으로 부딪치는 장면보다는 활로 한 방에 처단하는 장면이 많아서 보기보다 액션이 힘들지는 않았다"라고 명사수인 아신의 면모를 설명했다. 전지현은 현대적인 활과는 다른 원시적인 장비가 배우로서의 호기심을 더 돋구었다는 후문도 전했다.

드라마 <호크아이>의 케이트 비숍 캐릭터 컨셉아트(트위터 @andyparkart)

헤일리 스테인펠드의 호크아이

한편 마블은 어벤져스 세계관 내 최고의 명사수 자리에 세대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4의 새 드라마 <호크아이>에는 제2대 호크아이가 새롭게 등장한다. 배우 헤일리 스테인펠드가 연기할 케이트 비숍은 코믹스에서 영 어벤저스 소속의 청소년 슈퍼히어로로, 클린트 바톤의 제자이자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궁수다. 스테인펠드는 1세대 호크아이 제레미 레너와 끈끈한 우정, 그리고 결속을 보여줄 예정이다.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2011)와 <헝거 게임>에서 몸쓰기의 기술을 다졌던 스테인펠드는 <킬러 인 하이스쿨>(2015)에서 비밀 조직에 의해 철저히 훈련된 킬러를 연기하면서 본격적인 액션 커리어를 열었다. 최근 다수 유출된 현장 사진 속에는 보랏빛 코스튬 위로 석궁과 화살통을 둘러멘 스테인펠드의 모습이 코믹북 속 케이트 비숍과 꼭 닮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드라마 <호크아이>는 디즈니+ 채널에서 올해 하반기에 공개된다.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제니퍼 로렌스의 캣니스 에버딘

헤일리 스테인펠드가 Z세대를 위한 미국의 차세대 궁수라면, 원조 밀레니얼 궁수로는 제니퍼 로렌스가 있다. 제니퍼 로렌스가 스크린 스타로 발돋움한 결정적 계기였던 <헝거게임> 시리즈는 수잔 콜린스의 판타지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로렌스가 연기한 가상 인물 ‘캣니스 에버딘’은 여성 청소년들의 롤모델로 등극할 정도였다. <헝거게임>은 미래의 북미 대륙에 건설된 독재국가 판엠에서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헝거게임'에 참가한 10대들의 운명을 묘사한다. 천재적인 활 쏘기 실력의 소유자로서 ‘불타오르는 소녀’라는 별명을 가진 캣니스는 판엠을 뒤엎을 혁명의 불씨로 자리잡는다. 로렌스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2012)<헝거게임: 캣칭 파이어>(2013)<헝거게임: 모킹제이>(2014)에 이어 2015년 4편인 <헝거게임: 더 파이널>을 끝으로 전설적인 궁수의 자리에서 은퇴했다. 제니퍼 로렌스는 이 당시 “나는 요리도, 청소도, 바느질도 못하지만, 활을 들고 화살을 쏘는 것만큼은 잘한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그라치아>)

<메리다와 마법의 숲>

켈리 맥도날드의 메리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에서 메리다(켈리 맥도날드)가 보여준 재능은 '정확도' 면에서 오늘의 등장 인물들 중 단연 선두주자다. 활시위를 벗어나는 화살의 움직임을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정교하게 구현한 아름다운 슬로우모션이 이 영화에 있다. 2013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말타고 활쏘는 것을 좋아하는 중세 스코틀랜드의 공주 메리다가 전통적인 '공주 수업'을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마법의 헤프닝을 담았다. 왕자가 아닌 양궁에 푹 빠진 공주의 몰두와 고집스러움이 시대의 변화를 선명하게 체감케 한다. 여자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도록, 몸 쓰고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돋우기에(empowering) 충분한 픽사의 명작.

1999년, 시드니 국제 양궁 대회에서 지나 데이비스

그리고 지나 데이비스!

지나 데이비스의 경우, 이건 영화가 아니다. 할리우드의 배우 지나 데이비스는 41살이 된 1999년에 “열심히 해서 전국 랭킹에 올라갔다”라고, 마치 신작 촬영을 끝냈다는 어투로 양궁 선수로의 데뷔를 범상하게 알렸다. 1996에 애틀랜타 올림픽을 TV로 지켜보다가, 그 해 21살의 나이로 두 개의 금메달을 거머쥔 캘리포니아 출신의 선수 저스틴 휴이쉬에게 매료된 것이 계기였다.(<뉴욕 타임스>). 1997년부터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한 데이비스는 2000년 오스트레일리아 올림픽을 위해 양궁 종목에 출사표를 낸 약 300명의 미국 선수들 중에서 24위를 기록했으며, 미국 내 양궁 랭킹에서 최고 13위까지 달성한 전적이 있다. 영화 <우연한 방문객>(1986)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델마와 루이스>(1991)로 스타덤에 오른 지나 데이비스는 영화 <그들만의 리그>(1992)에서 프로야구단 선수로도 분하기도 했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양궁 사랑, 그리고 <델마와 루이스> <그들만의 리그>와 같은 작품 선택 행보에 관해 “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는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다. 야구를 하는 남자의 여자친구가 되느니 차라리 야구를 하겠다는 것이 내가 밀어붙인 운영 원칙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