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를 꽉 채워 만들지 않는다 관객 속에서 완성될 수 있도록
2021-07-28
글 : 송경원
사진제공 SHUTTERSTOCK

황금종려의 잎사귀는 다른 영화에 돌아갔지만 올해 칸을 가장 아름답게 빛낸 영화는 누가 뭐라 해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다. 북미 언론의 최고 평점이나 프랑스 평단에서 쏟아진 찬사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라는 행위’의 뿌리가 쓸려나가고 있는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세파에 휩쓸리는 일 없이 오직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증명한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올해 제74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뿐 아니라 <휠 오브 포춘 앤드 판타지>로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도 수상했다.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최고작 기록을 경신 중인 “하마구치의 또 다른 최고작”(<데드라인>)인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내를 잃은 남자와 어머니를 잃은 여자, 두 사람이 차 안에서 함께 나눈 여정을 따라간다. 한없이 위태롭기에 도리어 온화해 보이는 그 시간 속엔 풍성하고 아름다운 침묵, 언어 바깥의 언어(어쩌면 영화)의 아름다움이 아른거린다. 칸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하자마자 <씨네21>과의 인터뷰에 응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목소리를 통해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의 연출 비결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각본상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소감에서 원작과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감사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과 이를 잘 구현해준 배우들에게 준 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각본상이라 더 각별하다. 단편소설을 긴 영화로 만든다는 데에 고민이 없지 않았는데, 3시간을 들여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준 것 같아 기쁘다.

-올해 베를린과 칸에서 각각 수상했다. 일본 내 반응은 어떤가. 수상 이후 앞으로 영화 작업을 이어가는 데 달라진 것들이 있나.

=매우 선명하고 분명하게, 축하가 이어지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일단 개봉 시점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기쁘기 그지없다. 다만 지나치게 일희일비하진 않으려 한다.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은 결국 일회성으로 지나가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저 내가 변하지 않았으면 싶다. 영화제를 가면 관객의 반응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즐거워하거나 재미있게 보는 얼굴들이 하나하나 잘 보인다. 나도 사람인지라 관객이 행복해할 내용을 다루고 싶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들뜨지 않고 지금껏 해왔던 방향을 유지하며 작업을 이어나가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각색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 영화화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지인의 추천으로 원작 소설을 읽었다. 소설 속 연극에서 진행되는 배우들의 연기라든지, 좁은 차 안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설정 등 그동안 내가 다뤄왔던 작품들과 비슷한 테마가 있다. 특히 자동차는 움직이는 연극 무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어 공감이 갔다. 서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다 한두 마디 대화로 물꼬가 틔고 결국엔 친밀해지는 경험 말이다. 주인공 가후쿠 유스케(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이야기는 단편에서 명확하게 완결이 나지 않는다. 캐릭터의 전사와 뒷이야기를 혼자 상상해보며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는 헐거운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루시아 야마모토 프로듀서가 무라카미의 다른 소설을 영화화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왔다. 그 작품보다는 <드라이브 마이 카>가 더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역으로 프로듀서에게 제안했다.

-<해피 아워> <아사코> 등 전작을 보면 배우가 가진 본래의 속성에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발견하여 새롭게 그려나가는 데 일가견이 있다. 유스케 역의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사키 역의 미우라 도코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20대 무렵에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서 언젠가 같이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키워왔다. 그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사코>에 대해 칭찬한 기사를 읽고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무라카미 소설의 주인공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서 있는 자태랄까. 말수가 적어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감정적인 공기를 주변에 두르고 있다. 내 연출 스타일과도 잘 맞다. 난감했던 건 미사키였다. 원작을 읽을 때부터 떠오르는 인물이 없어 난감했다. 미우라 도코는 <우연과 상상>(2021) 캐스팅을 할 때 처음 봤다. 그 영화에선 다른 배우가 캐스팅됐지만 마침 <드라이브 마이 카>도 진행하고 있던 터라 그가 적임자라고 느꼈다. 그녀는 매우 총명하고 섬세하면서도 정제된 언어를 지녔다. 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한 답변을 주는, 매우 드문 사람 중 한명이다. 한 가지 문제는 운전면허가 없었는데 캐스팅할 거라고 하자마자 바로 연습해서 따오더라. (웃음)

-자동차 안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대화의 핵심은 대사, 대화보다 침묵, 혹은 비언어적인 수단들이다. 대화와 대화 사이의 공백, 비어 있는 시간들이 매우 아름답고 동시에 복잡미묘하게 이어진다. 쿨하게 보이지만 내면은 아마도 지옥도일 유스케의 심경처럼.

=정확한 표현이다. 평안해 보이는 외면과 내면의 고뇌. 그 낙차를 관객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지가 이 영화의 전부다. 3시간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면 아래 상처를 숨긴 사람들이 만나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영화 초반 유스케와 미사키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친밀해진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때의 침묵은 전혀 다른 성질의, 누군가 말하길 풍요로운 침묵이다. 이런 정서적인 허락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배우들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시간이 나의 무기다.

-<바냐 아저씨>처럼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아온 연극들이 가지고 있는 요소를 대담하게 가미했다. 영화에서 연극의 형식이 이야기와 중층적으로 서로 호응한다.

=기본적으로 원작에도 나오는 연극이니 당연히 차용했지만 그 이상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유스케가 바냐 역을 연기하는데 바냐의 대사를 빌려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했다. 내면 심리를 서술하기 위해 독백이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직접적인 방식은 피하고 싶었다. 유스케가 바냐에 몰입할수록 화면을 이중인화하듯 유스케와 바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안톤 체호프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원작자나 다름없다. <바냐 아저씨> 같은 작품은 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우리가 들어도 위화감이 들지 않을 텍스트의 힘이 있다.

-안톤 체호프의 연극 <바냐 아저씨>에 출연하는 인물로 한국인 배우 안휘태가 캐스팅됐다. 그 밖에도 한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독일 등 무려 9가지 언어가 교차하는 다국적 캐스팅이 눈에 띈다.

=안휘태 배우는 <바냐 아저씨>에서 아스트로프 역을 맡았다. 쏘냐 역을 맡은 박유림 배우나 연출을 보좌하는 역의 진대연씨도 생각난다. 다들 오디션을 통해 적합한 역으로 캐스팅했다. 특히 박유림 배우는 무대 위에서 수어(手語)를 쓰는데 정해진 수어가 아니라 어느 정도 지어내면서 즉흥적인 연기를 부탁했다. 수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그의 연기를 보면 마치 언어가 아니라 아름다운 율동 같았다. 다국적 캐스팅은 언어 너머의 언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오디션을 진행할 때 배우 각자의 사적인 사연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적인 측면에 흥미를 느끼곤 한다.

-러닝타임이 3시간이다. 처음 계획대로인가. 사실 원작의 이야기가 그리 방대하진 않다. 그럼에도 “3시간의 러닝타임이 모자랄 정도로 농밀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3시간이 넘는 분량을 용납해줄 프로듀서는 많지 않다. (웃음) 프로듀서의 강력한 건의에 따라 처음엔 2시간20분을 목표로 했고 스스로도 이해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마주하다보니 필연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령 직접적인 대사나 서술이 거의 없는 이 영화에서 원작에선 한두줄이었던 차 안의 분위기나 침묵 속에 잠긴 인물의 상태를 납득시키려면 최소한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현장에서 배우들을 재촉하지 않고 사실적인 연기가 나올 수 있도록 풀어둔 채 기다리는 편이다. 사전에 캐릭터마다 시나리오랑 별개의 서브 스토리를 따로 써서 배우에게 전달한다. 배우들이 캐릭터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고 몰입할수록 잘라낼 수 없는 순간들이 발생한다. 어쩌면 내 연출은 그 우연한 순간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마침내 만나는 게 전부다. 그러다보니 등장인물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시간도 길어진다. 한명 한명 소중하고 궁금하니까. (웃음) <해피 아워> 때는 러닝타임이 5시간이었는데 오래 지켜본 만큼 분리되지 않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인물의 감정과 상태에 대해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3시간의 러닝타임은 인물, 상황, 감정, 최종적으로는 영화를 납득시키기 위한 최선, 최적의 상태인 셈이다.

-시노미야 히데토시 촬영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나와 동갑이다. 그게 자랑스럽다. (웃음) 우리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촬영감독이라 생각한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를 보고 영상미에 반했다. 영화 속 연극 무대를 찍을 때 딱 하나 요구한 게 있다. 프레임 때문에 배우를 1mm도 움직이게 하지 말라는 거였다. 필요하면 카메라가 움직여달라고 했고, 배우들의 즉흥연기와 약속되지 않은 동선을 놀라울 정도의 감각으로 잡아주었다. 배우와 카메라 사이 거리를 잡아나가는 감각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작 <해피 아워>와 <아사코>는 동일본 대지진의 상처, <스파이의 아내>에서는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다. 마치 공기처럼. 메시지라고 부를 건 없지만 이번 작품에도 사회적인 배경이 담겨 있을까.

=솔직히 그런 걸 의식한 적은 없다. <해피 아워>는 인물들의 상황에 따른 자연스러운 배경이었고, <아사코>는 각본을 쓴 다나카 사치코의 의지가 반영됐다. <스파이의 아내>는 시대 배경이 전쟁 말기였으니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읽고자 하면 사회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연출자로서 내 포커스는 늘 다른 지점에 가 있다. 영화는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고, 관객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애초에 만들 때부터 꽉 채우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굳이 말한다면 내 관심사는 배우다. 정확히는 배우가 캐릭터에 감응하는 방식이다. 배우가 표현한 것을 내가 포착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고, 캐릭터가 느끼고 있는 것을 관객이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연출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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