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매미' 윤대원 감독, 관객을 강력하게 리드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2021-07-28
글 : 송경원
사진제공 칸=뉴스1 이준성 기자

올해 칸영화제의 유일한 한국영화 수상작인 윤대원 감독의 <매미>는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서 2등상을 차지했다. 미래의 칸 경쟁부문이라 불리는 시네파운데이션은 전세계 학생 단편영화가 경쟁하는 섹션으로 2009년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이 3등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서울 남산 소월길에서 몸을 파는 트랜스젠더에게 일어난 이상한 사건을 따라가는 이 17분짜리 단편영화는 육체에 갇힌 성 정체성의 균열을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윤대원 감독은 비범한 졸업작품을 통해 허물을 벗은 매미처럼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마친 셈이다. 난생처음 칸영화제를 경험한 그는 영화의 미래와 자신의 바람에 대한 짧지만 묵직한 성찰을 전했다. “영화를 감히 멈출 수 없었던 시대를 기억한다. 영화가 끝난 후의 평가는 있을지언정 진행되고 있는 동안은 막을 수 없던 시대. 영화에 대한 동경과 압도가 존재하는 시대. 칸에 와서 여전히 위용을 자랑 중인 극장의 시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연출자로서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논리가 아닌 체험 속에서 존재하는, 말로 풀어지지 않는 무드와 공간감이 있는 영화. 관객을 숨 막히게 리드하는, 매혹하는 영화.” <매미>를 보고나면 윤대원 감독이 꿈꾸는 미래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매미>

-수상 축하한다. 한국영화 유일의 수상작이 됐다.

=초반에는 무덤덤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의식이 되더라. 초청된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수상이라니 하루 종일 벅차올라 믿기지가 않았다. 칸이라는 작은 도시가 좋은 추억이 되었다. 열흘 정도 머무는 동안 많은 것들을 배웠다. 올해 2월까지는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단편을 적지 않게 찍었다. 지금은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 영화를 계속해나가는 데 있어 은은하게 도움이 될 성과를 거두었지만 기쁨의 순간에 머무를 순 없다. 내가 준비하는 좋은 내용물이 없으면 금방 밀려 사라지는 걸 무수히 보아왔다. 다음을 위한, 영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최선의 것들을 준비 중이다.

-올해 칸에서는 어떤 것들이 좋았나.

=칸에서의 경험은 매일 새롭다. 여행 삼아 영화제 첫날부터 참석했는데 초반에는 영화를 많이 봤고 시상이 가까워진 후반에는 시네파운데이션과 관련한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했다. 인터뷰도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많아 일정이 꽤 많은 편이다. 몸은 피곤하고 정신없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개막작 <아네트>를 보러 들어가는 길, 뤼미에르 극장의 전경들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은 내 영화랑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선 벨기에 테오 데겐 감독의 <더 샐러맨더 차일드>가 이견의 여지 없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너무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동안 두 소년의 테니스 시합을 그린 로맨스 단편 <봄밤>(2019), 청력을 잃어가는 탭댄서를 다룬 <새장>(2020) 등의 단편을 선보였다. 단편만의 매력이 있다면.

=말 그대로 짧은 분량에서만 가능한 것들이 있다. 호흡의 디자인이 좀더 미학적일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길이 덕분에 도리어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할까. 연출적인 상상력과 시도들이 가능하다. 지금 칸에서 본 영화들이 주로 그랬다. 짧은 이야기를 꽉 채운 상상력,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다.

-<매미>도 마찬가지다. 한줄 스토리에 걸맞은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무엇을’ 보다 ‘어떻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용산에서 의경으로 근무했는데 의경들의 무전음어로 ‘매미’라는 용어가 있다. 성매매를 목적으로 도로변에 서 있는 트랜스젠더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소수의 차만 다니는 고지대 도로가에서 일정 간격으로 서 있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당시엔 듣고도 별 생각이 없던 용어였는데, 어느 날 친구의 말을 듣고 그 길을 다시 걷다보니 문득 익숙하던 풍경이 180도 바뀌었다. 나무에 꼭 붙어 있는, 오랜 기다림 끝에 다른 형태로 변태하는 존재라는 게 매우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호러나 스릴러가 연상되는 톤에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선사한다.

=특정 장르를 목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간결하고 선명한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능적으로 재밌는 영화를 좋아한다. 재미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보기 전에 궁금하고, 볼 때 몰입할 수 있는 영화가 좋다. 메시지가 있을 순 있지만 그게 제일 앞자리에서 영화를 덮으면 곤란하다. 보는 동안 빨려들어가서 보게 만드는 요소가 있느냐가 차이를 만든다. 예를 들자면 보아‘주는’ 영화와 보아‘지게’ 되는 영화의 차이. 관객으로서 나는 공을 들여 해석하고 찾아 들어가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창작자로서는 강력하게 리드해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매미>가 아니더라도 성 소수자들의 사정, 성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이미 많기에 메시지를 강조하기보단 어디까지나 영화적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풀리길 바랐다.

-불안을 형상화한 것 같은 이질적인 사운드가 마치 여름날 매미 소리처럼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이번 영화에선 좋은 것, 잘하는 것보다 이상한 걸 시도해보고 싶었다. 촬영도 이상하게, 각도나 공간감도 이상하게, 편집도 이상하게. 연장선에서 음악도 음악감독님에게 장면마다 기능적으로 구상하기보다는 17분 동안 이어지는 하나의 덩어리와 같은 무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렸다. 배경음악이라기보다는 공간음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촬영도 독특하다.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에 더 공을 들인다고 할까.

=지난해 8~9월쯤 3회차 촬영이었다. 전부 야간, 야외 촬영이었고 이동 장면이 많아서 밀도 있는 조명을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전반의 컨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구상했다. 결말부 판타지에 가까운 표현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더 감각적이길 바랐다. 논리적인 설명과 자세한 묘사보다는 직관적이고 더 과감하고 이상하게 다다갈 수 있도록. 이야기로 설득하기보다는 장면의 뉘앙스로 공감시키고 싶었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이번에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차기작으로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것이 남다르게 들렸을 것 같다.

=한국에서 훌륭한 영화감독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픽사 스튜디오에 이런 말이 있다. ‘위대한 애니메이션은 위대한 영화와 다름없다.’ 꼭 형식적인 틀로 둘을 굳이 가르고 구분할 필요가 없다. 본질은 동일하다. 좋은 이야기와 좋은 작품이 중요하다. 좋은 감독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대중적인 성취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는 거기까지 생각할 순 없고. (웃음) 막연한 미래보다 내 손이 닿는 곳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당장은 좋은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니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사진제공 칸=뉴스1 이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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