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메타버스와 영화, 상상력이 필요해
2021-08-24
글 : 송경원
가상공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창조된 또 하나의 세상에 대한 오래된 미래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온통 메타버스 이야기다. 메타버스와 미래를 쉽게 연결 짓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불과 얼마 전 모든 매체와 스피커의 관심사를 비트코인이 집어삼켰을 때가 떠오른다. 비트코인이 처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만 해도 미지와 불안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트코인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비트코인을 한다. 정확히는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기술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적 현상으로 우리 주변을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메타버스에 포위당했나.

메타버스, 가상을 초월하기 위한 조건들

비브스튜디오스의 단편영화 <더 브레이브 뉴월드>. 지난 7월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국: 입체적 상상 전시’에서 전시 상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메타버스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발명품이 아니다. 차라리 오래된 미래에 가깝다. 1980년대 SF 콘텐츠에서 쏟아져 나온 상상력들이 있다. 가상공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창조된 또 하나의 세상에 대한 가능성과 우려들이다. 메타버스는 초월(meta)과 우주(universe)의 합성어다. 사전적으로는 현실과 가상공간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창조된 또 하나의 세계를 뜻하는 이 단어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이 발표한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사용됐다. 개념적으론 <매트릭스>에서 선보인 가상세계, 전자정보로 구축된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대중적으로 뜨겁게 떠오른 건 2020년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우리 미래는 메타버스에 있다”라고 선언하면서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업체다. 엔비디아가 극적인 성장을 이룬 것은 GPU를 활용해 그래픽 카드 자체의 연산능력을 올리면서부터다. 간단히 말해 영상 시각효과(VFX) 분야에서 구현 가능한 이미지의 수준을 극적으로 향상시켰다고 보면 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히어로들의 대규모 전투, <아이리시맨>에서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를 젊게 만든 장면 등에서 엔비디아의 기술이 사용됐다. 그런 엔비디아가 미래와 메타버스를 연결지어 말했을 때,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현실이 되었다. 요컨대 중요한 건 개념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그것을 구현 가능하게 한 물리적인 기술력이다.

가상(virtual)의 세계는 단지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가상현실이 상상을 초월하여 메타버스로 자리 잡기 위해서, 메타버스가 추상의 용어에서 실재로 접어들기 위해선 몇 가지 물리적인 작용이 동반되어야 한다. 가령 2018년 선보인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가 3차원 아바타를 기반으로 한 여타 게임들, 대표적으로 <마인크래프트>나 <심스> 시리즈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외적으로 이들은 모두 아바타를 이용해 가상의 데이터공간을 체험하는 형태다. 하지만 제페토의 핵심은 여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실시간 피드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현실 속 사회관계망을 그대로 겹쳐 적용할 수 있다. 이것이 메타버스의 첫 번째 조건, 사회적 요소다.

지금 메타버스를 간판으로 내걸고 몸값을 불리고 있는 서비스 중 상당수는 사실 게임 산업의 관점에서 봤을 땐 이미 오래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엄밀히 말해 3D 아바타를 만들어 돌아다닌다고 해서 메타버스라고 말하긴 어렵다. 메타버스에 물리적 실체를 부여해주는 키워드는 바로 돈, 그러니까 경제의 구축이다. 그 안에서 경제적 활동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 활동이 현실로 확장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제페토의 경우 가상화폐를 이용해 가상세계 내에서 실제와 다름없는 것들을 구입할 수 있고, 제페토 내에서 얻은 가상화폐는 실제 현금으로 환전할 수도 있다. 가상의 데이터 공간에 사회경제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사용자들끼리 관계망을 형성할 때, 가상현실은 드디어 데이터를 초월해 또 하나의 현실-메타버스가 된다.

현실의 대체인가, 새로운 기회와 확장인가

사실 가상공간, 사회적 연결, 경제성 등 각각의 요소는 진즉에 활용되고 있었다. 3D 아바타를 이용한 가상세계는 게임에서는 익숙한 무대다. 엄밀히 말해 가상공간이 꼭 3D로 만들어져야 할 필요도 없다. 핵심은 관계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PC통신과 싸이월드 등 가깝게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도 메타버스적인 사회관계망의 속성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유행하는 메타버스의 차이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해 각각 구현되었던 요소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플랫폼으로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 메타버스의 진가다. 그제야 현실과 가상의 연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은 가상공간, 사회적 연결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만 이는 메타버스라기보다는 폐쇄적인 또 하나의 작은 세상, 즉 마이크로버스(microverse)에 가깝다. 메타버스의 결정적 요소는 가상공간과 현실이 겹쳐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운영성에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플랫폼의 개방성, 별개로 떨어져 있던 각 기능들의 결합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가상공간에서 물건을 사면 내 집 앞으로 배달된다거나 내가 아닌 아바타가 영화나 공연을 관람하는 이벤트처럼 말이다.

영화 업계에도 메타버스 열풍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간판만 내걸고 아직 실체나 결과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으론 당연하다. 메타버스는 여전히 확립되고 고정된 개념이라기보다 넓은 스펙트럼으로 타진하고 있는, 가능성에 가깝다. 영화가 메타버스라는 생소한 개념을 받아들이는 단계는 바로 그 씨앗에서 출발한다. 기본적으로 극장이라는 오프라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메타버스와 다른 축에 놓인 콘텐츠다. 그럼에도 영화는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여러 방식으로 구현하는 중인데 크게는 두 가지 갈래로 접근 가능하다. 하나는 배급과 상영, 다른 하나는 제작방식에 대한 시도다.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 제작방식에 대한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는 곳은 3D영상제작업체 비브스튜디오스, 시각특수효과업체 위지웍스튜디오를 예로 들 수 있다(이는 뒤에서 인터뷰를 통해 좀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비브스튜디오스는 영화 <더 브레이브 뉴월드>(The Brave New World)를 통해 제작단계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선보였다. 비브스튜디오스의 버추얼 프로덕션은 가상환경을 구현하여 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가상, 증강, 확장현실 등 여러 용어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핵심은 현실(카메라)과 실시간으로 관계를 맺는 상호작용에 있다. 가상의 무대를 창조하는 것을 넘어 만들어진 공간이 자연광, 조명광, 카메라의 움직임과 호응하여 정교한 배경 구현이 가능한 것이다. 기존의 CG 작업이 이미 작업된 이미지에 덧씌우는 후반작업 방식이었다면 최근 선보이는 기술들은 현장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해 제작기간을 줄이고 작품의 완성도까지 높일 수 있다.

배급, 상영 차원에서의 적용은 좀더 개방, 범용적인 측면에서 이뤄진다. 관건은 오프라인 공간의 속성을 어떻게 온라인을 통해 구현할 것인지에 달렸는데, 최근 페이스북이 선보인 영화 한편이 좋은 사례가 되겠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는 이제 당연한 현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OTT는 여전히 극장과 구분되는 별개의 배급통로, 경쟁상대로 인식된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 영화를 개봉한다면? 최근 페이스북은 다큐멘터리 <디 아웃사이더>를 온라인 유료 이벤트를 통해 개봉하기로 했다. 비유하자면 가상공간에 극장을 세우는 작업. 게임 <포트나이트>에서도 최근 단편영화제를 개최, 가상공간에서 영화감상의 체험을 제공했다. 가상의 공간을 실제의 삶과 연결시키는 에너지, 소통의 촉매는 결국 재미와 즐거움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메타버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페이스북은 아마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를 시작으로 메타버스를 구축하고 싶을 것이다(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메타버스화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건 또 다른 확장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인 영화 플랫폼의 축소와 소멸로 이어질 것인가. 오래된 미래는 아직 온전히 당도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현실과 가상을 구분된 별개의 경쟁상대로 인식했던 과거와 달리 메타버스의 세계는 장벽을 철거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무한히 개방된 세계에서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것인지, <트론>이나 <레디 플레이어 원>이 꿈꿨던 오래된 미래가 현실이 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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