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영화는 모닥불이 만든 그림자였을 것이다. 흔들리는 불과 그 불이 만드는 흔들리는 그림자는 인류 최초의 동영상이 되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보면서 이야기를 상상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서 이야기를 설명했다.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곳은 흙으로 된 땅바닥이었다. 그런데 비가 오면 땅에 그려놓은 그림이 지워지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인공적으로 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횃불로 어디든 밝힐 수 있었다. 동굴은 자연이 만든 실내공간이지만 햇볕이 안 들고 어두워서 음파로 공간을 파악하는 박쥐 외에는 사용하는 동물이 없었다. 박쥐 외에 최초로 인간은 횃불을 이용해서 동굴을 밝히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동굴의 벽과 천장에 그림을 그리면 비가 와도 그림이 지워지지 않고 유지되었고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와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횃불을 비추며 걸어 들어가면서 보는 그림들은 연속적인 그림이 된다. 이것은 인류가 만든 2세대 동영상이다. 이렇게 최초의 극장이 탄생했다. 최초의 극장은 그림이 그려진 동굴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가상의 이야기 속 공간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기술은 상상 속의 공간과 현실 속의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시대가 발전해서 인간은 ‘유리’라는 새로운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알타미라동굴의 그림은 고딕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되었다. 영사기가 발명되자 극장 스크린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대체했다. 20세기 이후 사람들은 커다란 스크린이 있는 극장에 가서 스크린 속 가상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1990년대에 인터넷이 발명되자 인간은 ‘인터넷 가상공간’을 창조했다. 우주 공간을 만든 최초의 빅뱅이 있은 후 137억년이 지나서 인간은 두 번째 빅뱅을 만든 것이다.
연결은 공간을 창조한다
인터넷이 공간이 된 비결은 ‘연결’에 있다. ‘연결’은 공간을 창조한다.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줌을 통해 화상회의를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렇게 모니터 속 스크린은 공간이 된다. 온라인 쇼핑을 하면서 물건을 구경하면 스크린은 나와 정보가 연결되는 장이 되고 그곳은 공간이 된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같은 초기 가상공간에는 사진과 동영상을 올렸다. 이들은 과거 시점의 정보일 뿐이다. 실시간 대화는 채팅창에서 문자로만 하는 수준이었다. 통신 기술과 컴퓨터그래픽 카드의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원시적 인터넷 공간은 점점 더 오프라인 실제 공간과 비슷한 공간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가상공간은 아바타라는 인격체들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고 아바타를 통해 실시간 움직임과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최초의 메타버스는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RPG 게임)에서 시작했다. 초기에는 제한된 게임 캐릭터 중에서 선택하고 제한된 전투 행위를 하는 수준에서 시작했다가 이제는 사용자가 직접 캐릭터를 만들고 상거래를 하는 등 점점 더 다양한 행위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수준이 되었다. 메타버스 공간의 진화다. 과거에 우리는 영화 스크린 속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해서 영화 속 공간을 체험했다. 이제는 나의 분신인 아바타 캐릭터를 통해 메타버스 공간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아바타 기술이 발전할수록 영화배우의 인기는 줄어들 것이다. 내가 직접 이야기 속 배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가 나오기 오래전부터 영화에서는 메타버스 가상공간과 오프라인 현실이 오버랩되는 사회를 예언해왔다. 1982년 디즈니가 만든 <트론>부터 시작해서 1999년 <매트릭스>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알타미라동굴부터 이집트인의 사후세계 개념, 플라톤의 이데아, 장자의 호접지몽을 거쳐 지금의 메타버스까지, 인간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믿어오고 꿈꿔왔다. 이제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을 현실처럼 창조하고 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새롭게 열린 세상은 장단점이 있다. 우선 단점을 살펴보면 가상공간 기술은 공간의 양극화를 만든다. 일반적인 오프라인 공간은 가격이 비싸다. 반면 가상공간은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이 들어가게 된다.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10억원에 육박한다. 이러한 집을 소유하지 못하는 젊은 사회초년생은 이 도시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수천만원을 들여 자동차를 산다. 그러면 자동차 실내공간만큼은 내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럴 돈이 없는 대학생은 5천원 내고 커피숍을 간다. 시간당 돈을 지불하고 커피숍을 거실처럼 사용한다. 그보다 돈이 없는 고등학생은 3천원 내고 PC방을 간다. 그보다 돈이 없는 중학생은 천원 내고 편의점을 간다. 그보다 돈이 없는 초등학생은 공짜 공간인 메타버스에 가서 ‘로블록스’를 한다. 돈이 없을수록 온라인 공간에서 보내고, 돈이 많을수록 오프라인 공간에서 보낸다. 중산층은 온라인 쇼핑을 할 때 부자들은 오프라인 공간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산다.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서 해외의 공간도 소비한다. 스마트폰 사용시간 포함해서 내가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자신이 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영화 <기생충>이다. 영화 초반에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주인공들은 와이파이를 찾아 헤맨다. 자신들의 오프라인 공간이 초라하기 때문에 가상공간에 로그인을 해야 했다. 하지만 영화 중반에 부잣집을 누릴 수 있게 되자 주인공은 마당에 누워서 책을 본다. 보통 사람들의 집에 가면 거실에 앉으면 TV가 보인다. 영화 속 부잣집 거실에서 소파에 앉으면 자연이 있는 마당이 보인다. 그 거실에는 아예 TV가 없다. 이 집 막내아들은 놀 때도 그림을 그리거나 마당에 인디언 텐트를 치고 논다.
가난할수록 가상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영화는 <레디 플레이어 원>이다. 이 영화에서 가난한 주인공 계층은 최소한의 공간에 거주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메타버스 가상공간인 ‘오아시스’에 가서 부캐인 아바타로 생활한다. 사막 같은 척박한 현실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메타버스 공간은 사막 속에 유일하게 물과 나무가 있는 공간인 오아시스다. 그렇다고 메타버스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회의 땅
가상공간의 장점은 기존의 경제적 약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기술혁명에 의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역사에서 예를 찾아보면 신분 사회가 심하게 정체되어 있던 유럽 사회에서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두달 만에 건너갈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되자 유럽 사회의 하층민들은 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무한대에 가까운 공짜 공간을 이용해 이민자들은 부를 축적하고 미국을 건설했다. 미국 동부에서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서부까지 기찻길이 뚫리자 기차를 타고 캘리포니아에 건너가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를 건설하고 부를 축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에서 자신의 땅이 없이 소작농으로 살던 사람들이 1970년대에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자 도시로 가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수 있었다. 이때 돈을 번 사람들은 도시인의 생활에 필요한 아파트, 자동차, 전자제품을 만들어서 공급하던 사람들이다. 현대, 삼성, LG가 만들어졌다. 이들 재벌이 대한민국 경제를 장악하던 시대에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젊은 세대들은 90년대 들어서 인터넷 공간이 만들어지자 그곳으로 들어가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기업을 만들어서 돈을 벌었다. 지금은 주식 시가총액 10위 안에 2개의 회사가 들어가서 기존 재벌들과 경쟁을 하고 있다.
얼마 전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추월하여 국내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기존에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아주 저렴한 공간이라는 자본을 제공한다. 이 공간자본을 이용해서 돈을 벌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이곳에서도 돈을 버는 자는 기술을 가진 자라는 점이다. 기술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이 가상공간은 그저 소비의 공간이다. 물론 그 공간에 뛰어들기 전에는 내가 창의적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니 일단은 뛰어드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내가 뛰어난 프로그래머는 아니어도 ‘배달의민족’ 같은 재치 있는 마케팅 기술이 있다면 그 공간에서 성공할 수도 있다.
우리는 메타버스를 통해 계층간 이동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을까? 메타버스가 활성화된 세상에서도 사회의 계층은 나누어져 있을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 슈트 가격에 따라 촉감을 느끼는 기능의 유무 등 각종 수준 차이가 있었다.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사용하는 자가 그 공간에서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그런 제품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부를 가진 사람만이 구입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의 등장은 사회의 변화도 가져온다. 인류가 사는 동안 완전한 평등의 사회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계층간의 이동 사다리가 많아서 계층이 고착되지 않고 이동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내일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영화가 좋은 것은 우리의 암울한 현실과 미래를 직시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미래를 개선해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핵전쟁과 인공지능의 위험을 <터미네이터>만큼 잘 가르쳐주는 매체는 없었다. 영화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의 교훈을 가르치는 매체는 없다. 영화 속 메타버스와 사회의 모습을 엿보면서 더 나은 미래를 구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밝은 미래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