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메타버스 심야상영회 참관기, 현실 같다가 완전히 낯설다가
2021-08-24
글 : 배동미
[BIFAN x KOFA x SK ifland] 메타버스 심야상영회 참관기
메타버스 심야상영회가 열리는 이프랜드의 영화관 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7월 6일, 김영덕·남종석·모은영·박진형 프로그래머를 만나 인터뷰했다. 유혈이 낭자하는 장르영화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에 한참 동안 빠졌던 우리는 영화제와 영화잡지의 안녕을 기하는 덕담까지 주고받은 뒤 자리를 파했다. 영화제를 앞두고 바쁜 프로그래머들은 인터뷰 장소인 카페를 먼저 빠져나갔고, 나는 노트북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인터뷰 내내 진지했던 남종석 프로그래머가 못다 한 말이 있는 듯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그는 불쑥 메타버스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제가 온라인으로도 열리니까 오프라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게더타운이라는 버추얼 플랫폼을 사용하는데 재밌어요. 들어와보세요.” 게더타운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유명한 버추얼 플랫폼이다. 가상공간을 한국의 ‘제페토’나 ‘이프랜드’처럼 3D로 구현한 건 아니고 2D 가상공간인데, 도트로 표현된 작고 귀여운 아바타를 움직여 사람들끼리 만나고 소통할 수 있다.

최근 선댄스영화제와 베를린국제영화제,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에서 영화인들이 게더타운을 이용해 만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이용해본 적 없는 플랫폼이었다. 개인적으로 SNS보다 전화를, 화상회의보다 실제 회의를 선호하는 데다, 게더타운을 한국 영화제에서 도입한 건 부천영화제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선호도와 상관없이 이미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가고 있었다. 남종석 프로그래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 감독들은 국내 영화제에 오지 못하니까 게더타운에서 만나 네트워킹할 수 있도록 큰 이벤트들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네트워킹하고 미팅룸에서 미팅도 하고 댄스 플로어에서 춤도 출 수 있어요.” 댄스라니! 영화인들이 아바타로 만나서 춤을 춘다니. 메타버스의 빠른 성장에 대한 놀라움은 약간의 저항도 동반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에서 벽면 하나를 임대해서 영화 혹은 영화제를 홍보하는 광고를 노출하려면 꽤 고가의 광고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방탄소년단이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에서 아예 자체적으로 단편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메타버스는 이미 마케팅의 수단이 되었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부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손잡고 SK가 출시한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에서 영화상영회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전 한국영화의 필름을 수집·발굴하는 한국영상자료원까지 메타버스에 올라탔다니 어떤 형태의 상영회일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부천영화제 괴담 단편제작 지원작 <딩크족>과 <안아줘, 독바로 안아줘!>를 연달아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GV) 행사가 열리는 8월 6일 금요일 밤 10시에 메타버스 상영회에 접속했다.

상영● 메타버스만의 영화적인 경험을

<딩크족>을 보는 모습.

밤 10시면 극장 문을 모두 닫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되는 요즘 같을 때 심야영화를 본다니 조금 들떴다. 평소 하지도 않는 스모키 화장으로 아바타를 꾸민 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메타버스 심야상영회에 들어갔다. 어두운 3D 공간에 스크린이 걸려 있었고 맞은편에는 C열까지 세줄로 총 22개의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아직 상영시간이 되지 않아 스크린에서는 한국 고전 공포영화인 이형표 감독의 <관속의 드라큐라>(1982)와 강범구 감독의 <괴시>(1980) 예고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관속의 드라큐라>는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드라큐라82>라는 시나리오 제목을 가지고 실제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주한미군을 드라큘라 백작으로 기용해 완성한 공포영화였고, <괴시>는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로 꼽히는 작품이다.

두편의 80년대 컬러공포영화가 보여주는 이색적이고 독특한 비주얼에 빠져 있을 때쯤 행사를 알리는 이프랜드측 진행자의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매일 밤 10시에 진행하고 있는 메타버스 심야상영회의 11번째 상영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연출하신 감독님들을 모시고 게스트톡을 진행할 예정이고요. 박수 부탁드려요.” 관객은 아바타의 박수 동작 아이콘을 눌러 박수를 쳤다. 한 관객이 “무야호”라고 환호하자 좌중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말까지 더할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나 역시 열심히 박수를 쳤다.

이프랜드에서는 자유롭게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는데, 상영회는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의 마이크 기능을 꺼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꾸려졌다. 대신 박수나 하트 등 아바타의 동작 아이콘을 눌러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늘 영화는 모두 15세이상관람가입니다. 15세 이하 어린이가 시청하기에는 부적절할 수 있으니 다른 방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끝으로 김승민 감독의 <딩크족> 상영이 시작했다. 가상공간에서 360도로 움직일 수 있는 아바타들은 스크린을 향해 몸을 돌려 박수를 치면서 영화에 화답했다. 131명까지 동시 접속이 가능한 메타버스 영화관 맵에서 이날 이용자 수는 62명까지 올라갔다. C열 우측 끝자리에 앉은 ID 씨네리의 아바타는 영화의 타이틀 로고를 급히 캡처해 몇장 남긴 뒤, 전체 화면 탭을 눌러서 영화가 아바타 없이 휴대전화 액정에 꽉 차도록 설정한 다음, 본격적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딩크족>은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허위진단서를 제출해서 LH 분양 아파트에 당첨된 신혼부부가 실제로 임신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35분짜리 영화다. 딩크족을 지향했던 부부에게 찾아온 태아는 진단서와 달리 쌍둥이가 아니기 때문에 부부는 LH에 적발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렇게 되면 이번 당첨이 취소되는 건 물론 앞으로도 불이익을 받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딩크족>에는 배우 곽민규와 하정민 등 영화 팬들에게 익숙한 배우들이 등장해 청년 세대와 부동산 문제를 더한 이야기에 힘을 싣는다. 그러면서도 부천 괴담 프로젝트 지원작답게 신혼부부의 눈앞에 쌍둥이의 환각을 등장시키며 죄의식과 현실 속 어려움을 포갰다.

<안아줘, 독바로 안아줘!>를 보는 모습.

이지안 감독의 <안아줘, 독바로 안아줘!>는 근미래로 보이는 척박한 환경을 배경으로 한다. 단발이, 앞머리, 은발이라는 이름의 버려진 세 아이는 외계인처럼 보이는 성인 남성에게 쫓기는데, 영화 후반부에 작품 전체를 뒤흔드는 반전이 등장한다. <안아줘, 독바로 안아줘!>의 러닝타임은 17분으로, 두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메터버스에서 머문 시간은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메타버스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아바타를 제외하면 OTT 플랫폼이나 스마트TV로 영화를 보는 것과 어떤 점이 다를까 궁금해질 것이다. 메타버스를 통해 영화를 본다는 것은 확실히 OTT나 VOD 시청과는 다른 영화적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OTT로 영화를 감상할 경우 앞서 놓친 부분을 되돌려보거나 결말로 점프할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 상영회에서는 영화의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게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에 정해진 방향대로 흐르는 영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관객으로서는 극장에 앉아 있는 것처럼 집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창을 꺼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극장에서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가버릴 수 있는 자유 수준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스크린의 크기는 모바일 액정 사이즈로 협소하다는 점도 단점이다.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들이 의자에 앉아서 스크린을 대면하더라도, 현실 속 관객은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편안한 침대에 눕거나 소파에 기대앉아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하지만 관객 개인이 영화를 제어할 수 없고 정해진 시간에 영화가 상영되기에 메타버스는 OTT와 다른 영화적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GV● 메타버스는 인지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김승민, 이지안 감독과 인터뷰를 마친 후 메타버스 공원 맵에서 만나 인증숏을 찍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스크린에서 극장이란 현실이 눈에 들어오듯, 전체 화면 탭을 눌러 아바타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실제 GV 현장에서 감독과 모더레이터가 앉을 책상과 의자 등을 놓는 자투리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감독과 모더레이터의 아바타가 스크린 앞으로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붕 뜬 시간 동안 아바타의 사용법을 익히다가 춤 동작을 시도했다. 남종석 프로그래머가 말한 댄스파티와 다름없는 행동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었는데 생각처럼 이상하거나 머쓱하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이라도 메타버스에 접속한다면 한번은 춤추지 않고 못 배길 것이다.

메타버스 상영회에서 가장 현실 GV 같았던 순간은 감독이 인사말을 할 때 벌어졌다. 이지안 감독이 인사를 하자 그의 목소리가 극장에서 무선 마이크끼리 혼선이 일어나는 것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휴대전화 인터넷 연결을 다시 설정하고 현실 속에서 장소를 옮겨다닌 끝에 하울링 현상이 멈출 수 있었지만 실제와 같은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이후 GV는 감독에게 질문하고 싶은 관객은 하트 동작으로 의사를 표시했고 모더레이터가 질문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 반전에 대한 설명, 두 영화 모두 아역배우가 등장하는데 아역배우 기용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했는지 등 질문이 쏟아졌다. 때때로 질문자가 없어서 뜨문뜨문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모더레이터가 질문을 더했는데 이 역시 실제 GV 현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약 30분이 흐르자 GV를 마무리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모더레이터는 마지막 질문자를 찾았다. 메타버스 상영회를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관객으로서 질문도 던져야 할 것 같아 조금은 용기를 내어 하트를 보냈다. GV에 참여해서 질문해본 사람은 누구나 이 기분을 알 것이다. 모더레이터가 질문하려고 하는 나를 발견하지 못할까봐 약간의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눈 밝은 모더레이터가 아바타를 발견했고, 나는 영화 바깥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총 몇 회차로 촬영을 마무리했는지, 당시 코로나19 상황은 어땠는지 물을 수 있었다.

김승민 감독은 차분한 목소리로 “5회차 촬영했고 4회차까지 실내 신을 찍었고 마지막 하루는 야외에서 찍었어요”라면서 “올해 4월경 촬영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코로나가 잠잠할 때여서 조심해서 찍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승민 감독은 답변을 할 때마다 질문자 아바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바로 앞에서 답변을 들려줬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언컨대 메타버스는 실제 우리의 인지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확실히 미친다.

처음 경험한 메타버스 상영회는 유쾌했고 또 순조로웠다. 어떤 때에는 실제 GV와 같은 미묘한 순간들도 만들어냈다. 메타버스 상영회는 앞으로의 극장과 GV의 풍경까지 바꿔놓을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메타버스는 일시적인 소통방식으로 머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영화를 보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채비하고 영화와 마주하는 관객의 마음만큼은 메타버스 상영회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날 밤 메타버스 상영회 덕에 두편의 영화를 만났고 두 연출자를 알게 됐으며 잠들기 전까지 두편의 영화가 보여준 세계에 대해 곱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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