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미끄럼틀 삼아 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취미가 있다. 서핑처럼 서서 타는 것이 아니라, 크기가 더 작은 보디보드 혹은 부기보드에 엎드린 채 몰려오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몸을 맡기는 방식이다. 이우일 작가의 <파도수집노트>는 평생 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살다가 쉰살이 넘어 어쩌다 파도타기에 푹 빠진 이야기다.
파도를 타려면 일단 보드와 슈트, 서핑 장갑, 오리발이 필요하고 보드에 바를 왁스, 보드와 발을 연결하는 리시도 있어야 한다. 각종 장비를 갖추고 바다를 향해 차를 몰고 간 다음, 날씨 앱으로 바닷가 날씨를 확인하고 풍랑주의보가 뜨면 해경에 입수 신고도 해야 한다. 또 바다에 들어가서는 적절한 높이와 세기를 갖춘 괜찮은 파도를 찾는 한편 다른 서퍼들의 위치나 우선 순서도 눈치껏 확인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했다가는 충돌 사고가 나는 등 위험할 수 있다. 저자는 파도타기를 위해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에도 운전해보았고, 세탁기 속에서 빙글빙글 돌듯이 거센 파도에 빨려 들어가 죽을 뻔한 적도 있 었단다.
파도타기가 대체 무엇이길래 이 모든 번거로움이며 위험을 감수하며 온몸으로 뛰어들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 보면 보드 타기란, 삼면이 바다인 이 나라의 수많은 바다를 온몸으로 알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속에서 바라보는 파도는 살아 있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동물 같다고 한다. 그리고 악천후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며 비구름 속 거대한 생명체를 상상하는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빠지지 않는다는 동해의 겨울 파도, 해녀들과 교대로 바닷물에 들어간다는 제주 바다, 북극의 한기가 내려와 손끝이 꽁꽁 얼어붙었던 만리포 해변의 기억. 새롭게 장소를 감각하는 여행만큼 매혹적인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30년이나 멀리했던 운전대도 잡게 되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평생을 서핑에 바친 삶을 담은 <바바리안 데이즈> 같은 책도 떠오르는 한편 이 책은 서핑이나 보디보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편히 집어들 수 있다. 중간중간 삽입된, 압도적인 바다의 풍경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힘을 뺀 선으로 쓱쓱 그린 일러스트도 아름답다.
바다에서 생긴 일
“바다는 어제는 미동도 없이 납작 엎드린 가자미를 닮았다가 오늘은 크라켄이 날뛰는 용광로처럼 변한다.”(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