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나나>
2021-10-19
글 : 이다혜
사진 : 백종헌
이희영 지음/창비 펴냄

고등학교 2학년 한수리는 어느 날 저승사자, 아니 선령의 방문을 받는다. 살아 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존재다. 죽은 영혼을 데려오는 저승사자와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한다. 그래서일까, 옷차림도 찢어진 청바지에 검은 후드 티. 수리는 몸과 영혼이 분리되었는데, 자신의 몸은 멀쩡한 듯 하루 일과를 계속하고 있다. 수리는 자신의 몸이 등교 준비를 하는 뒷모습을 생중계로 보며 선령에게 묻는다. “선령씨, 그런데 그럼 나, 아니 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살긴, 그냥 영혼 없이 사는 거지.”

흔히 하는 농반진반의 말 중에 ‘영혼 없이 산다’는 말이 있다. <나나>의 정의에 따르면 “상대의 무심함을 장난스레 말하거나, 무언가를 힘들게 해냈다는 우회적 표현”이다. 대충 산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유령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수리는 다시 몸을 찾을 수가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흘이 지나면 수리는 선령을 따라 세상을 떠나고, 수리의 몸은 영혼 없이 살아가게 된다. 한편 류는 자신의 육체를 되찾는 데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착한 아이였던 류는 몸에서 빠져나온 뒤 오히려 홀가분해 보인다.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페인트>를 쓴 이희영 작가의 신작 <나나>는 ‘영혼이 없다’는 유행어에 상상력을 더한 소설이다. 영혼이 없다는 말은 자조적으로 쓰일 때가 많은데, 매사에 열심이었다가는 실패의 상처도 크고 좌절하게 되기 때문에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영혼 없이’ 하는 편이 낫다는 근면함의 주문이다. 아픈 동생을 위해 완벽한 형을 연기해야 했던 류는 더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다. 중년, 노년의 고민이 지금 10대가 경험하는 이 짙은 피로감을, <나나>는 따뜻하게 다루고 있다.

“영혼이 사라진 육체가 불안하지 않다는 건, 원래는 불안 덩어리였다는 뜻인가?” 수리와 류 또래의 독자에게 <나나> 속 이 문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불안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잘’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건강하고 좋은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나를 잘 돌보는 일이야말로, 내 영혼이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비극을 좋아하세요?

사람들에게 비극적 결말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데에는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그 마지막이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안도 때문이었다.(88쪽)